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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명랑국토부] 오늘도 액셀을 밟고 있는가/우석훈

등록 2006-10-19 19:14

우석훈/성공회대 외래교수
우석훈/성공회대 외래교수
아파트, 자동차도 통장 예금도 커야 한다. 빠르고 커지는 것이 ‘생존의 법칙’이 됐지만
과속중독과 과대망상 위에 세울 행복은 없다. 파랑새는 과속하는 주인이 잠깐 서길 기다릴테니
여기는 명랑국토부

1.

낯선 도시에 가면 골목길 건널목에 꼭 서 본다. 사람이 서 있으면 차들이 더 빨리 달리는 건 한국의 도시들 밖에는 없다. 쮜리히나 본 혹은 파리나 밀라노, 이 모든 도시들의 자동차는 사람이 서 있으면 건널목에서 서지만, 우리나라의 도시들은 사람이 서면 차들이 더 속도를 낸다. 우리나라에서 많은 경우 사람이 건너가라고 차를 세우는 것은 운전연수 중인 차량이거나 여성들이 운전하는 경우이다. 택시나 트럭이 건널목에서 사람이 건너갈 수 있도록 세우는 것은 별로 본 적이 없고, 이건 에쿠스 같은 고급승용차나 일곱 명이나 아홉명이 탈 수 있는 ‘떡대’ 같은 승합차형 승용차도 마찬가지이다. 사람에게 상해를 입혀봐야 자신만 피곤하지만 그래도 골목길 건널목에서 우리나라 승용차들은 죽어라고 달려나간다.

2.

서해대교에서 29중 추돌사고가 생겼고 사람이 11명이 죽었다. 그 세 시간 전에 나도 아내를 옆자리에 태우고 서해대교를 통과했었다. 서해안 고속도로의 서해대교와 대진고속도로의 지리산 구간은 어지간해서는 가고 싶지 않은 길이다. 바람도 많이 불고, 겨울철에는 결빙이기 일쑤라서 어지간히 조심해도 속도를 조금만 높이면 차가 흔들리고 직진성을 잃어버리게 된다. 게다가 “빨라야한다”는 대한민국의 과속중독이 산도 뚫고 바다도 건너는, 마치 성경의 한 구절을 보는 것 같아 왠지 마음이 편하지가 않다. 내가 서해대교를 지날 때에 앞이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안개가 심했을 뿐더러, 다리 앞에 세워놓은 풍향기가 만만치 않은 바람이 불고 있음을 알리고 있었다. 이 악천후에 차들은 홀린듯이 달리고 있었는데, 그 흐름 속에서 어느 개인도 자신의 속도를 통제하기가 쉽지가 않다. 조심해서 늦춘 나의 속도도 시속 70킬로미터 정도였다. 다행히 운이 좋아서 사고를 면한 것일 뿐이다.


3.

우리나라의 박정희 시대는 과대망상증인 메갈로매니아의 시대였다. 개인들은 아직 가난해도 정부는 ‘동양 최대의 폭포’를 추구하던 시대였다. 마지막 메갈로매니아 대통령은 김영삼 대통령이었다. 아침에 조깅하면서 하나회 청산과 금융실명제를 도입하고, OECD 가입을 추진하던 그는 메갈로매니아로는 마지막 대통령이었던 셈이다. 그 후의 대통령들은 ‘규모’ 보다는 ‘속도’를 강조했고, 김대중 대통령이나 노무현 대통령은 변화를 강조하고, 그 변화의 속도를 강조했다. “권력은 이미 시장에 넘어갔다”고 말한 노무현 대통령은 확실히 메갈로매니아는 아니다.

4.

문제는 국민들에게 생겨났다. 박정희를 회상하며 규모를 사랑하는 메갈로매니아가 되었고,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서 속도를 숭배하는 속도중독에 걸렸다. 비정규직이나 그 이하의 국민들과는 상관없는 일이라도 이미 삶의 안정권에 들어간 일부 국민들은 규모와 속도를 동시에 추구하는 공룡들이 되었다. 아파트, 자동차도 커야 하고, 키도 커야 하고, 통장 예금액도 커야 한다. 그리고도 빨라야 한다. 보다 빠르고 보다 커지는 것이 ‘생존의 법칙’이 된 이 나라에서 양극화는 작고 느리게 된 도태된 사람들과, 크고 빠르게 된 ‘성공한 인생’ 사이에서 벌어지는 현상이다.

5.

속도중독자들은 느리게 사는 이들은 망하거나 도태될 것 같지만, 늘 그렇지는 않다. 진짜로 성공한 학자, 행복한 자영업, 평온한 가정, 마음의 평화, 모두 느린 인생들이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그게 ‘지혜’의 속성이다. 쮜리히에는 요즘 일주일에 이틀 일하는 삶이 늘어난다. 월급은 줄더라도 그들은 행복해보인다. 억울한 것은 일주일에 이틀 노는 우리나라 국민들이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학문이나 기술이나 예술에서 절대로 스위스를 따라갈 수 없다는 점이다. 게다가 국민소득도 말이다. 느리고 작은 것의 시대가 오는데, 우리나라 국민은 100층짜리 건물로 승부하던 1세기 전 메갈로매니아의 시대로 돌아가고 있다. 국민들은 과속하지만, 국가는 ‘공회전’하는 것이 현 상황이다.

6.

서해대교의 참사를 보도하는 TV 리포터 등 뒤로 다시 질주하는 자동차들을 보았다. 잠시 희생자의 목에 애도하고 대한민국 국민들은 액셀을 지그시 밟는다. 속도감, 그것은 쾌감이지만, 인생은 쾌감으로 행복해지지는 않는다. 프로이드가 마지막 저서 <문명의 병> 첫 장에서 지적한 말이다. 국토를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파들어가고, 온 국민이 질주할 ‘인프라’를 구축해도, 위험만 늘어나지 행복은 찾아오지 않는다. 틸틸과 밀틸이 찾아헤맨 ‘파랑새’를 눈 앞에 두고 “내가 제일 커야해”라는 박정희의 남근주의는 이제 국민들의 남근주의로 국토와 국민을 새 장으로 밀어넣고 있는 셈이다. 중형차와 승합차를 사기 위해 할부금을 붓지만, 할부금이 끝나자마자 새 차를 사도록 유혹하는 것이 대한민국이다.

속도와 크기 위에 세울 수 있는 개인의 행복은 존재하지 않는다. 대통령과 정부는 늘상 더 빠르고 더 큰 것을 추구하는 권력의 속성을 따르지만, 개인의 행복은 권력의 속성과 비례하지 않는다. 큰 차를 탄 사람보다는 빚 없는 사람이 더 행복한 사람이다. 돈을 빌려오는 ‘선대’로 이윤을 만드는 것은 자본의 법칙이지만, 개인의 행복도 선대로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 ‘프로젝트 파이낸싱’으로 개인의 행복을 디자인할 수는 없다.

잠깐 눈을 감고 서해대교의 희생자들을 위해 묵도하자. 자신이 과속 중인가? 죽음으로 질주하는 중이라는 것이 느껴지면 브레이크를 살짝 밟도록 하자. 그러면 늦추어진 속도만큼 삶이 안전해지고, 그만큼 삶이 풍요로워질 것이다. 돈은 ‘돌고 도는 것’이기 때문에 뛰어다녀봐야 자신에게 돌아오지 않는다. 당신의 행복의 파랑새는 과속하는 주인이 잠깐 서기를 애타게 날개짓하며 기다리는 중인지도 모른다. 진정한 사랑은 남근주의 위에 세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석훈/성공회대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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