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승동의 동서횡단
얼마 전에 북한 중국 미국이 베이징에서 6자회담을 재개하기로 합의했다고 발표하자, 한국이 왕따당하게 만든 정부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예의 성토론이 또 한번 거세게 일었다. 주권국가 기본 요건인 전시작전통제권도 갖고 있지 못한 나라여서 그런가?
그런데 6자회담 재개합의 때 왕따당한(그게 사실이든 아니든 무슨 상관 있으랴!) 한국정부 성토에 앞장 선 것은 언제나 그랬듯 전시작전통제권을 지금 돌려 받아서는 절대 안된다고 소리소리쳐온 세력들이었다.
만약 6자회담이 아니라 북-미 양자협상에 이어 북-미 수교쪽으로 직행해버린다면? 지금 같은 어정쩡한 남북관계로서는 진짜 왕따를 당할지 모른다. 속수무책으로 구경이나 하다가 미국에 이어 일본까지 평양으로 우루루 몰려들어가 판을 벌이고 진을 치고 난 뒤에야 그들에게 다리나 놔달라고 애걸하게 될 수도 있다.
2000년 말 미국 대선이 이해하기 어려운 과정을 거쳐 부시 정권 탄생으로 이어졌을 때, 공화당이든 민주당이든 무슨 중대한 차이가 있겠나, 설사 다소 차이가 있다한들 한반도정책에서 본질적으로 달라질 게 뭐겠는가 하는 소리들이 적지 않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는 걸 깨닫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북핵위기에 이은 1994년 10월의 제네바 합의로 북-미관계가 새로운 차원으로 나아가는가 싶었으나 바로 그 뒤에 치러진 미국 중간선거에서 상·하 양원을 공화당이 지배하게 된 ‘뉴트 깅그리치 혁명’은 빌 클린턴 정권의 그런 대북정책 전환을 내버려두지 않았다. 공화당의 견제로 삐걱대던 북-미관계는 6년이 지나 깅그리치 혁명이 시들해진 2000년 10월에야 북한 조명록 차수가 워싱턴으로 날아가서 북-미 공동선언을 발표하고 뒤이어 매들린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이 평양으로 날아가는 경천동지할 사태로 급진전됐다. 적대 관계의 전면 수정을 목표로 핵과 미사일, 테러문제 해결을 위한 방안까지 의제에 올렸던 당시의 북-미 접근이 예정대로 진행됐다면 북-미 수교, 북-일 수교로 이어져 냉전붕괴와 함께 이뤄졌어야 할 ‘남북한 교차승인’이 10년 늦게나마 완수되고 한반도와 동북아는 바로 그해의 6.15 남북 정상회담 성과와 어울려 지금과는 전혀 다른 길을 걷게 됐을지도 모른다. 한반도 1백년 비운이 그 순간 씻겨나갔을까.
그러나 그때 고어를 낙선자로 밀어낸 플로리다주 재개표 사태가 벌어졌고 얄궂게도 운명은 한민족 편이 아니었다. 얼마 뒤 미국에 간 한국 대통령은 무시당했고 9.11과 함께 북한은 ‘악의 축’이 됐으며, 모든 북-미 관계는 다시 원점으로 되돌아갔고 남-북관계도 삐걱댔다. 그에 따라 북에는 강경파가 득세하고 남에는 남남분열이 튀겨내는 화약냄새가 자욱했다. 지난 6년 세월을 그렇게 허송하다시피 했다. ‘공화당 재앙’이었다.
이번 중간선거에선 12년간의 공화당 상·하 양원 지배가 끝장나는 사태가 벌어졌다. 주로 이라크 민중과 미군병사들이 무수히 흘린 피의 대가다. 민주당의 승리는 그들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한반도에도 엄청난 변화를 몰고 올 수 있다. 민주당과 공화당 사이엔 근본적인 노선차이가 없을지 모르지만, 민주당이 지금의 승세를 굳히고 2년 뒤의 대선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공화당 정권의 약점들을 물고 늘어져야 한다. 이라크 정책을 바꿔야 하고 대북정책 역시 부시 정권이나 네오콘들이 고집해온 방식을 비판하면서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공화당조차 ‘이라크 스터디 그룹’을 앞세워 기존의 네오콘적 대외정책 노선을 수정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몰렸다. 어쩌면 향후 2년간, 그리고 그 뒤 적어도 4년간 그런 과정이 가속적으로 진행될지도 모른다. 위기는 언제나 기회이기도 하다. 다시 온 기회를 살리려면 남북이 6년 전과는 달리 신속하고 지혜롭게 대처해야 한다.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이번 중간선거에선 12년간의 공화당 상·하 양원 지배가 끝장나는 사태가 벌어졌다. 주로 이라크 민중과 미군병사들이 무수히 흘린 피의 대가다. 민주당의 승리는 그들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한반도에도 엄청난 변화를 몰고 올 수 있다. 민주당과 공화당 사이엔 근본적인 노선차이가 없을지 모르지만, 민주당이 지금의 승세를 굳히고 2년 뒤의 대선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공화당 정권의 약점들을 물고 늘어져야 한다. 이라크 정책을 바꿔야 하고 대북정책 역시 부시 정권이나 네오콘들이 고집해온 방식을 비판하면서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공화당조차 ‘이라크 스터디 그룹’을 앞세워 기존의 네오콘적 대외정책 노선을 수정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몰렸다. 어쩌면 향후 2년간, 그리고 그 뒤 적어도 4년간 그런 과정이 가속적으로 진행될지도 모른다. 위기는 언제나 기회이기도 하다. 다시 온 기회를 살리려면 남북이 6년 전과는 달리 신속하고 지혜롭게 대처해야 한다.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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