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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아시아의 눈으로 아시아 영화제를!

등록 2006-11-30 19:24수정 2006-12-01 10:36

지난 25일 부산에서 만난 한국예술종합학교 김소영 교수와 싱가포르 국제영화제 조직가 필립 치아. “제국주의는 아시아인들이 자신의 이웃나라에 대해서는 무지하게 만들면서도 파리나 뉴욕, 베를린 등 서구 대도시의 거리들과 상점들 이름까지 기억하게 했다”는 김 교수. 이에 대해 치아는 “미래는 국제 영화제가 아니라 지역 영화제가 될 것”이라 화답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지난 25일 부산에서 만난 한국예술종합학교 김소영 교수와 싱가포르 국제영화제 조직가 필립 치아. “제국주의는 아시아인들이 자신의 이웃나라에 대해서는 무지하게 만들면서도 파리나 뉴욕, 베를린 등 서구 대도시의 거리들과 상점들 이름까지 기억하게 했다”는 김 교수. 이에 대해 치아는 “미래는 국제 영화제가 아니라 지역 영화제가 될 것”이라 화답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안과 밖 / 김소영 교수(한국예술종합학교)와 필립 치아(싱가포르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대담

아시아 영화가 새로운 기회를 맞고 있다. 1990년대 이후 한국 영화를 비롯해 중흥의 기미를 보여온 아시아 영화가 이제 자신의 목소리로 아시아를 읽는 단계로 진입할 수 있을 것인가. 서구-비서구의 이분법적 사고를 넘어, 아시아와 아시아인들이 서로 소통할 수 있는 영화 만들기가 숙제로 다가온 것이다.

지난 11월24일부터 이틀간 부산 해운대 누리마루 아펙하우스에서 ‘북핵실험 이후 동아시아의 평화실험’를 주제로 열린 제2회 한겨레-부산 국제심포지엄은 이틀째 행사로 ‘지역문화 교류를 통한 동사아시아 문화공감대의 확산’ 문제를 토론했다. 영화평론가인 김소영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영화제: 트랜스-로컬한 아시아 네트워크를 위해’라는 주제발표를 통해 서구의 틀과 시각에서 벗어나 아시아의 지역성에 입각한 영화만들기로 아시아의 네트워크와 연대하자고 제안했다. 그는 “제국주의는 아시아인들이 자신의 이웃나라에 대해서는 무지하게 만들면서도 파리나 뉴욕, 베를린 등 서구 대도시의 거리들과 상점들 이름까지 기억하게 했다”며 아시아인들이 거기서 탈출할 수 있도록 영화가 도울 수 있다고 말했다.

87년부터 싱가포르국제영화제를 조직하며 ‘아시아 영화’를 논한 선구자 중의 하나인 필립 치아도 “미래는 국제 영화제가 아니라 지역 영화제가 될 것”이라며 아시아인들의 눈으로 보는 영화의 중요성에 대한 강조로 화답했다. 그는 동남아시아 독립영화 등을 국제사회에 소개하며 ‘아시아 영화’라는 장르 확립에 큰 기여를 한 싱가포르인이다. 심포지엄 뒤 한국예술종합학교 김소영 교수와 필립 치아가 만나 아시아 영화의 경향과 가능성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필립 치아=지금은 많은 아시아 영화들이 아시아라는 자신을 인식하기 시작한 시기다. 87년 처음 싱가포르영화제를 시작했을 때 나는 “영화제를 제대로 하려면 아시아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는 실제로 2회부터 프로그램의 초점을 아시아로 옮겨와, 91년에는 아시아 영화만을 대상으로 한 경쟁부문을 갖춘 세계 최초의 영화제가 됐다. 그때까지 아시아 영화는 그만큼 주목받지 못했다. ‘자신에게 가장 가까운 것을 보지 못한다’는 인생의 진실처럼, 싱가포르는 아시아 중심에 있으면서도 아시아를 보지 못했다. 우리는 위대한 필리핀 감독인 리나 브로카나 위대한 인도네시아인 감독 우스마 이스마일을 알아보지 못했다. 2000년이 돼서야 비로소 아시아 지역의 감독들이 공동체를 형성하고, 동남아 단편영화들의 네크워크가 이뤄지기 시작했다.

다음에 이런 움직임이 일어날 곳은 중동 등 서남아라고 생각한다. 미셸 칼리키가 말했듯이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영화를 문화로서 먼저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무기로 사고했다. 실제로 영화는 소프트한, 무형의, 그러나 매우 효과적인 무기다. 영화를 제작하지 않던 사우디아라비아 등에서도 새로운 영화제가 생겨나고 있다. 중동 영화는 실체에 견줘 너무나 과소평가돼 있다.

김소영 교수(한국예술종합학교)
김소영 교수(한국예술종합학교)
“한국 폐쇄적 공간 상상력 깨고 아시아 네트워크 연대 힘써야”

2000년 이후 아시아 감독 교류

김소영=한국 영화계의 아시아 지역에 대한 인식 전환은 민주화의 연장선상에 있다. 대만의 영화운동 역시 90년대 원주민운동 발전과 떼어놓을 수 없다. 싱가포르에서도 아시아 영화에 대한 성찰을 불러일으킬만한 계기가 있었는지 궁금하다. 당신의 관심사는 록과 하부문화가 한 축이라면, 다른 한 축은 사실주의적인 다큐와 현실정치다. 실제 정치와 영화 프로그래밍을 어떻게 연결할 수 있나?

치아=나는 중국계지만 중국말을 하지 못하는 퓨전형, 하이브리드형 인간이다. 부분으로가 아니라 함께 했을 때만 존재할 수 있는 것에 관심이 많다. 젊은이들의 문화에도 관심이 많다. 싱가포르영화제에서도 고전보다는 록앤롤 같은 젊은 감각을 찾는다. 태국의 아피트 찻퐁 감독에 주목하는 것은 그의 영화가 항상 젊은이들과 작은 것들에 끝임없는 관심을 기울이기 때문이다. 제임스 리, 오유환 같은 아시아 지역의 신인들에게도 끊임없는 관심을 기울인다. 97년 칸느영화제에서 데뷔한 싱가포르의 에릭 쿠 감독에 대해 우리는 90년 초부터 그의 단편을 보며 어린이같은, 장난기어린 기운을 느꼈다. 우리는 이런 종류의 젊은 감각을 찾는다.


싱가포르에서는 현실정치 문제에 대해 솔직히 말할 수 없다(웃음). 철학자 발터 벤야민은 “과거에는 예술이 관습과 종교에 복무했다면, 오늘날 예술은 정치에 복무하게 됐다”며, 소련과 나치가 영화를 선전목적으로 이용한 것을 비판했다. 세계 많은 곳에서 예술은 그대로 존재할 수 없고, 항상 상품이나 선전 수단 등으로 존재한다. 9·11테러 2년이 지난 2004년 내가 베를린 세계문화의 집 영화 프로그래밍에 참가했을 때 나는 “테러리즘의 뿌리가 항상 국가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동남아시아의 영화로 인도네시아 수하르토, 미얀마 군부 등을 보여주며 누가 진짜 테러리스트인지 말하고 싶었다. 과거 이런 국가들의 테러에 우리는 어떻게 대응했던가?

=시리아, 카자흐스탄 등을 방문하면서 관객의 적극적 참여를 봤을 것이다. 아시아 지역 전체에서 볼 수 있는 지역주의의 부흥과 영화에 대한 인기는 어떻게 연관이 되는가?

치아=오늘날 전세계 갈등의 대부분은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싸움이다. 핵문제도 그렇고 지적재산권의 문제도 그렇다. 내가 지역주의가 중요하다고 보는 이유는 국제영화제가 돈에 좌우되기 때문이다. 주요 국제영화제의 예산이 커지면서, 영화냄새를 맡기는 더욱 힘들어지고 있다. 우리는 아시아영화진흥기구(넷팩) 차원에서 올해 인도네시아 족자카르타에서 영화제를 처음 개최했다. 아시아 변방에도 영화가 존재해야 하고 더 다가갈 곳이 있다는 고민을 실현하기 위해서였다. 큰 지진 피해에도 불구하고 영화제에는 엄청 많은 이들이 찾아왔다.

=할리우드의 영향력은 독립적인 영화 성장을 여전히 방해하고 있다.

치아=필리핀은 동남아에서 규모있는 자체 영화산업을 보유한 마지막 나라였는데, <쥬라기 공원>이 오면서 무너졌다. 앞으로 동남아 영화의 부흥은 디지털에 달려 있는 것 같다. 디지털 기술로 할리우드보다 훨씬 모자란 자금과 마케팅, 홍보 능력을 상당부분 만회할 수 있다.

=오늘날 영화보기는 다운로드 등을 통해 더욱 개인적인 행위가 되고 있다. 디지털 영화만들기야 여전히 집단적인 행위지만 관객은 더욱 개인화된다. 개인화되는 영화보기를 통해 영화의 정치학이 바뀌지 않겠는가?

치아=나는 한 번도 그런 변화를 두려워한 적이 없다. 시디가 나왔을 때 엘피판의 종말이 예언됐지만, 힙합문화가 엘피를 다시 살려냈다. 나는 아이포드 나노에서 영화를 보는 것이 우리의 미래를 앗아가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 컴퓨터에서 영화를 보는 것은 값이 싸고 편하지만 영화관의 즐거움을 아는 이는 계속 영화관에 찾아갈 것이다.

=영화 평론가 스티븐 티오는 말레이어, 광둥어, 베이징어, 영어를 다 구사하면서도 그 어떤 것도 자신의 모국어로 간주하지 않는다. 나는 특히 한국인들이 더 열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동질적으로 간주하며 아시아로 다가간다. 이는 일종의 헤게모니적 사고다.

치아=동질적인 사고의 다음 단계는 권력 소유다. 최근 필리핀 영화제에서는 타갈로그어를 써야 한다는 규정 때문에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섬 출신의 영화인들은 경쟁에 참여할 수가 없다. 족자카르타 영화제에서 <오페라 자바>를 상영하기 한달 전에 감독이 전화해서 영화 자막을 어떤 언어로 할지 물어보길래 그 지역언어인 바사어로 하라고 권했다. 다가가려는 지역사회에 맞추라는 것이다.

필립 치아(싱가포르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필립 치아(싱가포르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돈에 좌우 국제영화제 미래없어 중동영화, 실체 견줘 과소평가”

하부문화와 교류 더 촘촘하게

=나는 지금을 ‘한국 관객에게 아시아 영화의 제2 시기’라고 말하고 싶다. 지금까지 동아시아에서 우리가 아는 영화나 문화는 그 누구라도 인정하는 명작에 한정됐다. 그러나 앞으로는 다양한 하부문화를 다루는 영화로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중학생들, 동성애자들 등 다양한 이들과 네트워크를 형성해 이런 하부문화와의 교류를 촘촘히 강화해야 한다. 그게 족자카르타나 카자흐스탄 등 아시아의 다른 지역과 진정한 네트워크를 짜는 길이다. 한국에서나 싱가포르에서나 아시아 각국은 서로에 대한 두려움이 크다. 영화를 통해 기존 민족국가와 대조되는 모습으로 상상의 공동체를 제안해 보고 싶기도 하다. 영화에는 배경이 보이고, 빌딩이 보이고 항상 아이콘적인 지리적 재현이 있다. 아시아 영화는 현존하는 민족국가와 다른 지정학적 판타지를 보여주기 시작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런 인식을 가능케 하는 인지적인 지도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중국감독 로우 예의 영화 <여름궁전>은 이런 지도를 펼쳐 중국영화의 다른 면을 보여준다. 베이징이나 상하이같은 도시나 외진 시골로 가는 것이 아니다. 북한 근처의 국경도시에서 도시, 시골을 다 거쳐 베를린으로 간다. 그 영화에서는 다른 지도를 보여준다. 반면 봉준호 감독의 <괴물>에서 괴물은 한강 밖을 나가지 않는다. 한국의 공간적 상상력은 아직도 폐쇄적이다.

치아=중요한 것은 다른 아시아인들이 동질감을 느끼는 것이다. 나는 대만 영화를 볼 때마다 불이 얼마나 밝은지 놀라워한다. 직접 가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대만 영화에서 봤던 어떤 리듬을 대만에서 직접 느꼈다. 오늘날 사람들이 보는 장면의 대부분은 강요된 장면이다. 이미 존재하는 뉴욕과 파리 등의 질서다. 그래서 어떤 것을 보는지 결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탈냉전적인 사고로 아시아를 보는 것은 즐거울 뿐만 아니라 많은 보상이 주어질 것이다.

서수민 정의길 기자 wikk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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