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석의 종횡사해
김지석의 종횡사해 /
조류 인플루엔자(AI)와 광우병은 사람과 동물이 함께 걸리는 인수공통 전염병(zoonosis)이다. 맹독성 식중독균인 ‘이콜라이 O157:H7’과 에이즈 바이러스도 애초 동물을 숙주로 했다. 오랜 역사를 지닌 디프테리아와 홍역, 천연두 등도 동물으로부터 왔다지만, 현대로 올수록 인수공통 전염병이 많아지는 것은 분명하다.
원인은 여러 가지다. 우선 인간과 야생동물의 접촉이 크게 늘었다. 지금처럼 많은 인간이 애완동물과 침식을 함께하는 것도 역사상 유례가 없다. 도시인구 급증도 중요하다. 밀집된 인구는 그전 같았으면 끊겼을 전염병 확산 고리를 쉽게 잇는다. 자연에 대한 인간의 작용이 병원체 변종을 유발하는 것도 심상찮다. 인간은 자연 변화를 따라잡기도 전에 새로운 많은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소광희 서울대 명예교수는 <자연 존재론>(문예출판사 펴냄)에서, 인류의 주요 지적 활동을 자연 존재론과 사회·역사 존재론, 자아 존재론 등 셋으로 나눈다. 존재론이란 ‘인간에 의한 가치 부여 이전의 존재에 대한 연구’다. 자연을 대상으로 하는 자연 존재론은 객관적 진리를 탐구한다. 사회·역사적 실체로서 인간을 연구하는 사회·역사 존재론은 행위의 원리를 모색하며, 자아 존재론은 구원의 문제를 성찰한다. 철학은 각 영역에서 일차 과학이 거둔 성과에 대한 이차적 성찰로, 자연 존재론에서는 자연과학을 위한 방법론을 개발하는 구실을 한다.
자연 존재론은 인류가 눈부신 성취를 이룬 영역이다. 근대는 우주론과 수학, 역학을 기초로 하는 자연 존재론의 발전과 함께 시작됐다. 인류는 이를 과학혁명이라고 일컫는다. 자연에 대한 과학적 접근과 이를 뒷받침하는 방법론, 곧 합리론과 경험론이 모두 이 시기에 정립됐다. 이후 물리학·화학·전기학·열역학·의학·생물학 등 모든 분야에서 눈부신 발전이 일어나 현대 문명의 토대를 이뤘다. 다시 20세기 이후에는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을 비롯한 물리학 혁명, 세포학·생화학·유전학을 기반으로 하는 생명과학 혁명, 환경과의 관련 속에서 생명체를 보는 생태학적 사고의 확산 등이 일어났다. 철학은 이에 대응해 기호논리학과 분석철학, 유기체철학 등을 발전시켰다.
하지만 이제까지 온 것보다 가야 할 길이 더 멀다. 우선 모르는 게 많다. 인류는 아직 지구온난화가 어떤 영향을 줄지 잘 모르고, 조류 인플루엔자가 어디서 어떻게 나타날지도 모른다. 많은 목숨을 앗아간 중국 쓰촨성 대지진과 미얀마 사이클론에 대비하지도 못했다. 또한 인간은 자연 존재론을 발전시키면서도 그 지식을 사용하는 윤리에서는 그다지 나아가지 못했다. 인간은 자신의 활동이 어떤 영향을 주는지 잘 알지 못한 채 자연을 학대한다. 인수공통 전염병 증가는 그 결과의 하나다.
산업혁명이 시작되던 18세기 중반에 인류의 1인당 총생산 규모는 180달러 수준이었으나 이제 인구 규모는 7배, 총생산은 40배에 가까운 7천달러까지 늘어났다. 인간 활동의 이런 팽창은 자연과 실시간으로 상호작용하면서 변화를 가속화한다. 새로운 접근방법이 나오지 않으면 인간과 자연 모두 이런 변화를 감당하기 어렵다. 자연 존재론은 새 출발을 요구받고 있다. 김지석 논설위원 j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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