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병융 소설 <여러분, 이거 다 거짓말인 거 아시죠?> ⓒ전지은
강병융 소설 <1화>
쥐2)
미니마우스 유리병은 인간의 생각대로 어디론가 흘러가기 시작했습니다. 흘러, 흘러, 흘러 멀리, 멀리로 갔습니다. 강을 지나 바다로, 작은 바다에서 더 큰 바다로, 천천히 하지만 꾸준히 계속 움직였습니다.
결국, 미니마우스는 밝게 웃으며 오랫동안 전 세계의 바다를 싹 다 구경하고 아프리카 대륙의 북쪽 섬나라 스카리니아(Skarinia)3)에 도착했습니다. 미니마우스가 얼마나 기나긴 여행을 했는지 아무도 모를 겁니다.
유리병 안에 고이 들어 있던 쥐포도 썩었는지 먹을 만한지 아무도 알 수 없었습니다. 아무튼 미니마우스 병은 여전히 방끗 생쥐 미소를 짓고 있었습니다. 그 안의 쥐포도 본연의 형체를 그럭저럭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해안은 무인도라고 부르면 딱 좋을 법한 풍경이었습니다. 바다와 바위 언덕과 야자수가 어우러져 있었습니다. 오염과는 너무 거리가 먼, 태초의 모습을 그대로 잘 간직한 곳이었습니다. 원숭이를 닮은 종족들이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채 모래사장으로 갑자기 괴성을 마구마구 지르며 뛰어나온다 해도 전혀 어색할 것 같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인간이 구사하는 말을 전혀 못 한다고 하여도 역시 놀랍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미니마우스는 모래사장 위에 평화롭게 누워 있었습니다. 파도가 밀려올 때마다 바닷물이 슬쩍슬쩍 유리병을 쳤습니다. 아무도 없는, 참으로 고요한 바닷가였습니다.
밤이 되자, 차갑고 날카로운 바닷바람이 씽씽 불기 시작했습니다. 유리병은 물이 닿지 않는 뭍까지 올라왔고, 찬바람이 휭휭 불어와 병이 데굴데굴 뭍으로 굴러갔습니다. 그렇게 칠흑 같은 밤이 지나갔습니다. 병은 찬 바람을 맞고 또 맞았습니다. 바다의 노래가 쉬지 않고 들려왔습니다. 서서히 아침이 밀려왔습니다.
기나긴 밤 지새우고 풀잎마다 맺힌 진주보다 더욱더 고운 아침 이슬이 생겼을 무렵, 어디선가 쥐 떼가 나타났습니다.
병을 발견한 쥐 떼들은 무지하게 시끄럽게 찍찍거렸습니다. 몇몇 쥐들은 병뚜껑에 코까지 박고 킁킁거리면서 냄새를 맡았습니다. 무슨 중요한 토론이라도 하는 듯 한참을 시끄럽게 찍찍거리더니, 병을 바위 언덕까지 굴렸습니다. 그러더니 그 바위 위에서 유리병을 밑으로 떨어뜨렸습니다. 떨어진 미니마우스 병이 산산조각 났습니다. 박제처럼 굳어 있던 귀여운 미니마우스의 생쥐 미소도 와장창 작살이 났습니다. 쥐들은 일사불란하게 바위 언덕을 내려가 병 안에 있던 내용물에 코를 박고 킁킁거렸습니다.
잠시 뒤, 쥐들은 그것을 냠냠 쩝쩝 먹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우리가 먹지 않으면 누가 먹겠느냐는 표정으로, 그야말로 맛있게, 침까지 질질 흘려가며, 유리병 속에 들어 있던 내용물을 싹 다 먹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쥐는 잡식성이었습니다.
독자의 기호에 따라 주석에 밝힌 신문 기사들과 곁들여 읽으셔도 재미있습니다.
1) 〈MBC〉 2007년 8월 7일 자 <이명박-박근혜, 여론조사 중재안 거부>
2) 〈한겨레〉 2008년 6월 7일 자 <‘촌철살인’ 구호·풍자 놀이…‘유쾌한 민주주의’ 활짝 피다>
3) 〈한국일보〉 2005년 6월 17일 자 <상상인간 이야기>
강병융(소설가)
강병융
장편소설 《상상인간 이야기》, 《Y씨의 거세에 관한 잡스러운 기록지》, 《알루미늄 오이》, 단편집 《무진장》이 있다. 현재 슬로베니아 류블랴나 대학에서 한국 문학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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