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병융 소설 <7화>
의사는 딸의 병이 SvCJD라고 말함.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해 눈만 깜빡거림.
운동회를 하고 돌아온 딸이 제대로 걷지를 못함. 똑바로 걸으라고 하자, 딸이 다리가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다고 말함. 운동회 때 너무 열심히 해서 그런 것이라고 걱정하지 말라고 말해줌. 남편은 딸의 아픈 다리를 주물러줌. 그 모습에서 작은 평화를 느낌.
다음 날, 딸이 학교에서 쓰러졌다는 연락이 옴. 보건실에서 딸이 억지로 웃고 있는 것을 봄. 누워 있던 딸이 침대에서 일어나려다 쓰러짐. 딸을 부축해서 간신히 집에 옴. 지친 딸은 잠이 듦.
딸이 깨어나면, 모든 것이 좋아질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함. 일어난 딸은 앞이 보이지 않는다고 말함. 피곤해서 그럴지도 모른다고 대답함. 딸은 여전히 제대로 걷지 못함. 딸의 눈이 안 보인다는 말에 남편이 가장 놀람. 딸과 함께 병원에 감. 안과에서는 이상 징후가 없다고 함. 뇌에 문제가 생기면, 시력이 나빠질 수 있다고 함. MRI를 찍기로 함. 병원을 옮겨 MRI를 찍음. 결과를 본 의사가 종합병원으로 가보는 것이 좋겠다고 함.
종합병원에서 SvCJD라는 진단을 들음.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자, 의사는 슈퍼 변종 크로이츠펠트 야콥병이라고 길게 설명함. 그때, 광우병임을 알게 됨. 의사는 일반적으로 변종 크로이츠펠트 야콥병이 광우병인데, 슈퍼 변종의 경우는 최근 캐나다에서 발견된 신종 광우병의 일종이라고 부연함. 광우병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남편이 의사에게 화를 냄. 오진이면 죽여 버리겠다고 소리를 지름. 허공에 주먹질을 하는 남편의 모습을 보고, 딸이 움.
딸은 입원, 계속 병원에 누워 있음. 점점 걷기가 더 어려워지고, 발음이 부정확해짐. 의사는 조만간에 엄마, 아빠를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으니 마음의 준비를 하는 편이 나을 거라고 함. 뇌에 구멍이 생겨 스펀지 모양으로 변하는 과정이라고 말함. 그 후엔 쥐가 갉아 먹은 것처럼 흉하게 변할 것이라고 함. 일반적인 광우병의 경우는 잠복기가 5~10년이지만, 슈퍼 변종의 경우 잠복기가 특별히 정해져 있지 않다고 함.
미국산 수입 소고기를 먹은 적이 없는데, 어떻게 광우병에 걸릴 수 있느냐고 남편이 말하자, 의사는 집에서 먹지 않았다고 해도, 급식이나 조미료, 라면 수프 등을 통해 섭취는 가능하다고 함.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일반 광우병은 발병 후 거의 즉사하는 반면, 슈퍼 변종은 그렇지는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고 함. 하지만 그 죽음이 언제일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함. 그 말에 더욱 절망함.
어느 한 곳이 부러진 사람처럼 몸을 비틀고 앞도 보지 못하고 누워 있는 딸을 보니, 순간 차라리라는 생각이 듦. 그런 생각을 한 스스로를 자책함. 누워 있는 딸보다 몸이 모두 부서진 아빠와 세상을 보지 못하는 남편이 더 낫다는 생각을 하자 한없이 절망스러워짐.
남편은 모두 자기 탓이라며 딸의 손을 잡고 큰 소리를 내며 욺. 답답해짐. 남편의 울음도, 병원의 공기도 싫어짐. 차라리 지구의 모든 공기가 다 없어져 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함. 우는 남편과 딸을 병실에 두고, 병원 밖으로 나옴. 병원 앞에서 기자 한 명이 취재를 하고 싶다고 말함. 기자를 피해 뜀.
병원 옆에 있는 대학 캠퍼스를 목적 없이 걸음. 사람이 없는 곳을 찾아, 병원이 보이지 않는 곳을 찾아 걸음. 사람들을 피해 걷다 보니, 아무도 없는 한적한 건물 뒤에 도착함. 캠퍼스 안에 있는 길이라고 하기엔 너무 좁다는 생각을 함. 좁고 긴 골목을 걸음.
거기서 쥐를 만남. 하늘에서 떨어진 듯 쥐가 갑자기 눈앞에 등장함. 쥐는 도망가거나 피하지 않음. 찍찍거리기도 하고 키득거리기도 함. 입에 무언가를 물고, 눈앞에서 어슬렁거림. 비웃고 있음이 명확하게 느껴짐. 숨이 막히면서 화가 치밂. 마치 쥐가 주변의 공기를 모두 갉아 먹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음. 쥐가 야비한 눈빛으로 바라봄. 그 눈빛이 너무 마음에 안 듦. 당장 쫓아가 잡아버리고 싶지만, 쥐의 당당함에 다소 주눅이 듦. 그때, 인생에서 쥐를 만났던 몇몇 순간이 떠오름. 남편이 눈을 잃은 날 찍찍거렸던 쥐, 아빠가 몸을 잃은 날 떠올랐던 쥐가 생각남.
쥐와 눈이 마주침.
바로 그 순간, 살의가 생김. 쥐를 잡아 가죽을 벗기고, 토막을 내고, 살을 발라 들짐승에게 뿌려버리고 싶은 욕구가 생김. 그러면 조금 평안해질 수 있을 것 같음. 쥐는 살의를 느꼈는지 슬슬 뒤로 물러남. 그리고 이상한 냄새를 풍기며 뒤돌아 빠르게 사라져 버림. 숨을 못 쉴 정도로 공기가 탁해짐. 골목을 뛰어 나옴.
반드시 쥐를 잡겠다고 결심함. 쥐를 잡아 가죽을 다 벗기고, 토막을 내서, 살을 발라버리겠다고 다짐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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