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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융 소설 | 여러분, 이거 다 거짓말인 거 아시죠?] 2회

등록 2013-09-24 10:04수정 2013-09-26 09:57

강병융 소설 <2화>


광화문

아침 7시에 아주버니에게 전화가 옴. 딸은 옆에서 자고 있고, 남편이 밤새 들어오지 않아 비몽사몽으로 밤을 새운 상태임.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아주버니의 목소리는 평소와 달리 무척 어색함. 무언가 상당히 잘못되었다는 느낌이 듦. 아주버니는 남편과 함께 병원에 있다고 함. 옷을 대충 걸치고, 딸을 깨워 옆집에 맡기고, 택시를 탐.

출근 시간이라 병원까지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림. 가는 동안 택시 안에서 안절부절못하자 기사가 괜찮으냐고 물음. 대답 안 함.

응급실로 뜀. 남편이 응급실 구석 침대에 누워 있음. 양쪽 눈에 커다란 안대를 함. 다가가는 것을 모름. 괜찮으냐고 묻자, 남편은 웃으면서 미안하다고 말함. 곧 괜찮아질 거니까 걱정 말라고 함. 딸 학교는 어떻게 하고 여기 왔느냐고 물음. 미안하다는 남편의 말에 아무런 대꾸를 못 하고, 괜찮아질 것 같지 않아 걱정이 계속됨. 눈물도 조금 남. 딸은 옆집에 맡겼으니 걱정 말라는 대답만 간신히 함. 억지로 웃는 남편의 입술이 심하게 부풀어 있는 것이 보임. 피도 많이 났던 것 같아 보임. 발음이 어눌함. 아주버니는 옆에서 아무 말도 못 하고 고개를 푹 숙인 채 서 있음. 아주버니가 계속 자기 탓이라고 함.

전날, 남편은 퇴근하자마자 아주버니와 함께 광화문에 좀 나가봐야겠다고 했음. 같이 가고 싶었지만, 딸 때문에 그럴 수 없었음. 남편은 절대 우리 딸이 그런 소고기를 먹게 내버려두지 않겠다고 큰소리를 치고 나갔음. 위험하다는 생각도 조금 했지만, 많은 사람들이 함께 있을 테니 별일은 없을 거라고 나름 자위했음. 올바른 일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남편을 말리지 않았음.

자정이 넘었는데도 연락이 되지 않아 텔레비전을 틀어봤음. 뉴스에서 시내에 대규모 폭력 사태가 발생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걱정을 많이 했음. 촛불집회 참여자들과 경찰 간의 무력 충돌이 보도됨. 남편도, 아주버니도 전화를 받지 않았음. 하지만 손쓸 방법이 전혀 없었음. 자는 딸을 두고, 직접 나가볼까, 생각도 함. 그리고 아침에 아주버니의 전화를 받음.

이웃에게 딸은 학교에 잘 갔으니 걱정 말라는 문자메시지가 옴. 문자를 읽으며 냉정함을 잃고, 순간 울 뻔함. 뭔가 복잡해지고 있다는 느낌이 듦. 출근을 못 할 것 같아 점장에게 전화를 함. 점장은 갑자기 안 온다고 하면, 누가 배달을 하느냐고 소리를 지름. 오후에라도 나오라고 함. 남편이 많이 아파서 병원에 왔다고 했으나, 점장은 대꾸도 안 함. 미안하다고 했는데, 대답도 없이 전화를 끊어버림. 남편이 통화 내용을 다 들음. 팀장에게 미안하다는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보냄. 다 보내지 않았는데, 남편이 말없이 손을 꼭 잡음. 아주버니가 남편 회사에 전화를 해 자초지종을 설명함.

남편은 시위 현장에서 눈에 물대포를 맞았다고 함. 경찰들이 갑자기 가까운 거리에서 물대포를 쐈고, 원래 여고생을 향해 쏘던 물대포를 남편이 막아주려고 하자, 여러 대가 동시에 남편을 집중적으로 쐈다고 함. 경찰들이 직사가 안 되는 원칙을 지키지 않았다고 함. 그중 한 대가 남편의 얼굴을 향했고, 남편이 고통을 호소했음에도 물대포는 남편을 계속적으로 공격했다고 함. 물대포가 눈을 강타했고, 남편이 의식을 잃고 나서야 발사가 멈췄다고 함. 믿을 수가 없음. 설명을 다 듣고, 다리의 힘이 빠짐. 누군가가 삶을 위한 공기를 삽시간에 모두 앗아간 기분이 듦.

1시간쯤 뒤 의사가 옴. 의사는 남편의 안대를 풀고, 몇 가지 검사를 함. 진지한 얼굴로 망막의 출혈이 몹시 심하다고 함. 실명의 가능성을 언급함. 수술에 동의를 하고, 1시간 뒤에 수술받기로 함.

수술 이야기를 들은 남편은 미안하다는 말을 계속함. 괜찮다는 말이 도저히 입에서 나오지 않음. 수술실로 들어가는 남편의 손을 꼭 잡음. 남편이 수술실로 들어감. 앞으로 딸을 보지 못할지도 모르는 남편을 보니 눈물이 멈추지 않음.

수술이 끝날 무렵, 기자 세 명이 찾아옴. 기자들이 무언가를 계속 물어봤지만, 대답하기 두려워 화장실로 도망침. 화장실에 앉아 많은 생각을 함. 도대체 뭘 잘못했기에 남편이 저렇게 되었나 생각해봄. 도무지 답을 찾지 못함. 숨이 막힘. 인생의 가장 밑바닥에 털썩 주저앉은 기분이 듦.

수술을 끝낸 의사가 며칠 더 입원해야 한다고 말함. 수술 결과에 대해선 별말이 없음. 아주버니에게 집에 잠시 다녀오겠다고 말함.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감. 병원에서 며칠 지내며 필요할 것 같은 물건들을 챙김. 기운이 없으면 안 될 것 같아 냉수에 밥을 맒. 억지로 먹어보려고 해도 잘 넘어가지 않음. 물에 말은 밥 위로 자꾸 눈물이 떨어짐. 그래도 숟가락을 들어 계속 먹음. 딸을 생각하니 앞이 깜깜함. 남편과 함께 시력을 잃어가는 느낌이 듦. 앞이 뿌옇게 보임.

그때, 어디선가 쥐가 찍찍거리는 소리가 들림. 마치 세상의 착한 이들을 모두 비웃는 것 같은 소리가 남. 갑자기 너무 화가 치밂. 모든 것이 쥐 때문인 것 같은 생각이 듦. 숨이 막힘. 쥐를 잡고 싶은 생각이 간절함. 잡아서 가죽을 싹 벗기면 속이 후련할 것 같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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