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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강병융 소설 | 여러분, 이거 다 거짓말인 거 아시죠?] 4회

등록 2013-09-26 09:50수정 2013-10-02 10:26

강병융 소설 <4화>


용산

아빠가 하늘에서 내려옴. 분명히 순식간에 일어난 일인데, 슬로비디오를 보는 착각이 듦. 여명을 배경으로 아빠가 천천히 떨어짐. 바닥으로 떨어진 아빠는 고통을 호소했지만, 아무도 들어주지 않음. 달려가 아빠를 부축하려 시도함. 불가능함을 깨달음. 표정에서, 목소리에서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고통이 느껴짐.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응급차로 뛰어감. 응급대원들이 들것에 아빠를 실어 구급차에 태움. 아빠는 괜찮다고 말함. 전혀 괜찮아 보이진 않음. 그을음 가득한 아빠의 얼굴 사이로 엷은 미소가 보임.

아빠는 그렇게 불과 경찰로부터 자신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용산의 남일당 건물에서 뛰어내림.

옥상 위 망루에서는 불과 연기가 여전함. 여기저기서 비명이 쏟아지고, 거리엔 아침의 생동이 조금씩 느껴짐. 건물 앞에서 토하는 경찰관이 보이고, 구급대원들의 숫자도 점점 많아짐. 구경하는 행인도 보이고, 불만을 토로하는 행인도 보임. 어둠과 밝음이 뒤섞여 생경한 모습이 눈앞에 펼쳐짐. 이것이 지옥일지도 모른다는 기시감마저 생김.

천천히 하늘에서 떨어지던 아빠의 모습, 구급차에 실리면서 괜찮다고 말하던 그 모습을 잊을 수 없음. 아빠를 따라 병원으로 감.

처음에는 아빠가 전국철거민연합회에 왜 가입했는지 이해할 수 없었음. 당시 아빠가 살던 남양주 지금동은 재개발 논의가 활발했음. 동네에서 정육점을 하던 아빠는 재개발에 큰 관심이 없어 보였음. 하지만 재개발 설명회를 한 차례 다녀온 후 투사로 변했음.

나중에 엄마에게 들은 바에 의하면, 설명회에서 말한 보상금은 생각보다 컸고, 그 정도 돈이면 사위의 개안수술 비용도 마련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고 함. 결국, 아빠는 정육점은 엄마에게 맡기고, 자신은 남양주시 지금동 철거대책위원장을 맡음. 전국철거민연합회는 말 그대로 전국을 돌아다니며, 철거민들을 위해 일하는 단체이므로 아빠는 정육점을 할 때보다 훨씬 바빠짐. 주말이면, 정육점에서 혼자 일하는 엄마를 도우러 남양주에 갔음. 그전까지 이름도 들어보지 못했던 고기 자르는 기계들과 씨름함. 아빠는 밤낮, 주일, 주말도 없이 전국의 재개발 지역을 돌아다니며 활동함. 가끔 신문에서 아빠의 얼굴을 보기도 함. 그렇게 전국을 돌아다니며 많은 사람들과 시위를 하게 되면서, 사위의 고통을 이해하고, 더욱 가슴 아파함. 평생 여당만 정당이라고 믿었던 아빠의 입에서 여당에 관한 욕이 나오기 시작함.

병원에 도착한 아빠의 얼굴엔 여전히 그을음이 잔뜩 묻어 있음. 의사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듦. 발목과 손목뼈가 가루가 되었으며, 척추에도 문제가 있고, 얼굴과 손에는 심한 화상을 입었다고 함.

남편의 실명을 통보받은 날, 인생의 바닥이 오늘이라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남. 인생의 내리막에는 끝도, 브레이크도 없다는 생각을 함. 수술이 잘되어도 평생 고생할 수 있다는 의사의 말이 무척 야속함.

기자 두 명이 병원으로 찾아옴. 기자들이 인터뷰를 요청함. 아무 말도 없이 병원 밖으로 나왔더니 따라 나옴. 도망치고 싶지만, 그럴 힘조차 없음. 벤치에 앉아 길게 한숨을 내뱉음. 기자 둘은 나무처럼 옆에 서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함.

그 순간, 눈앞으로 지나가는 쥐를 봄. 쥐는 빠르게 도망가며 웃음. 입을 히죽거리는 것이 무언가를 맛있게 먹고 있는 것 같음. 입에도 무언가를 물고 있는 것처럼 보임. 쥐를 잡고 싶어짐. 하지만 쥐는 이미 사라짐. 불행의 원인이 쥐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함. 하지만 이미 오래전에 불행은 시작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듦.

쥐가 눈앞에서 계속 아른거림. 남편이 실명한 날 들었던 쥐 울음소리가 귓가를 맴돎. 다시는 쥐가 눈앞에 나타나지 않길 바람. 다시 쥐를 보지 않는다면, 조금 숨통이 트일 것도 같음. 혹시 다시 쥐가 나타나면, 반드시 잡아야겠다고 결심함. 갑자기 쥐를 잡아 목을 확 비틀고 몸뚱이를 토막 내고 싶은 욕구가 치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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