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병융 소설 <6화>
인간은 쥐를 잡았습니다. 한 손으로는 쥐를 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박피기의 노란색 안전 열쇠를 오른쪽으로 비틀어 돌렸습니다. 그리고 빨간 손잡이를 힘껏 잡아당긴 후, 녹색 버튼을 살며시 눌렀습니다. 소음을 토하며 박피기가 작동하기 시작했습니다. 기계 돌아가는 소리를 들은 쥐는 바로 기절했습니다. 인간은 쥐를 흔들어 깨웠습니다. 쥐는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인간은 쥐를 싱크대로 들고 가 콸콸콸 물이 쏟아지는 수도꼭지 밑에 머리를 밀어 넣었습니다. 물대포1)를 맞은 쥐는 놀라 눈을 떴습니다. 정신이 번쩍 든 모양이었습니다.
인간은 다시 박피기로 쥐를 들고 갔습니다. 고기 껍질을 제거하기 위해 날카로운 칼날이 정신없이 돌고 있었습니다. 여전히 쥐가 즐겨 들었다던 노래가 들렸습니다. 인간은 온몸이 물에 홀딱 젖은 쥐를 껍질 제거대 위에 올렸습니다.
3월이었지만, 봄이라고 말하기엔 꽤 쌀쌀한 날씨였습니다. 벙커 안은 더더욱 추웠습니다. 추위와 공포에 떨고 있던 쥐의 몸에 날카로운 칼날이 박혔습니다. 박힌 칼날들이 빠르게 돌며 가죽을 벗겨냈습니다. 가장 먼저 칼날이 만난 곳은 쥐의 배였습니다. 기계는 시끄러운 소리를 쏟아내며, 쥐의 뱃가죽을 사정없이 벗겨냈습니다. 쥐가 소리를 질렀지만, 기계 소리에 묻혀, 음악 소리에 묻혀, 물소리에 묻혀 들리지 않았습니다. 피가 사방으로 찍찍 터져나갔습니다. 뱃가죽이 반도 벗겨지기 전에 쥐는 정신을 잃었습니다. 인간은 무덤덤하게 박피 작업을 계속 이어갔습니다. 쥐의 배 껍질이 홀랑 다 벗겨졌습니다. 깔끔하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나쁘지 않았습니다. 인간은 쥐를 뒤로 돌려 다시 제거대에 올렸습니다. 순식간에 등가죽도 홀라당 벗겨졌습니다. 인간은 벗겨진 쥐의 뱃가죽과 등가죽을 싱크대에 휙 던져버렸습니다. 그리고 쥐를 흔들어 깨웠습니다. 쥐는 아주 가늘게 눈을 떴습니다. 가죽 대신 피가 온몸을 덮고 있는 것을 보고 다시 기절했습니다.
인간은 껍질이 싹 벗겨진 쥐를 물로 한번 씻었습니다. 처음에는 깨끗해지는 듯했지만, 피가 완전히 씻겨나가진 않았습니다. 몇 번을 반복하다 인간은 포기하고, 피가 뚝뚝 떨어지는 쥐를 탈탈 털어낸 후, 골절기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골절기의 날카롭고 가는 톱에 살이 닿자, 의식을 잃었던 쥐가 몸을 부르르 떨었습니다. 하지만 제대로 한번 떨기도 전에 다리 하나가 쑥 잘려나갔습니다. 다리 하나가 몸에서 떨어져나가는 데는 1초도 채 걸리지 않았습니다. 인간은 쥐의 몸에서 떨어진 첫 번째 다리를 싱크대에 집어 던졌습니다. 작고 가늘고 볼품없었습니다. 인간은 아무리 생각해도 그 과정이 너무 싱겁게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나머지 세 다리는 천천히 자르기로 결심했습니다. 인간은 쥐의 몸에서 가장 먼 부분부터 순차적으로 잘라나갔습니다. 다리 전체를 대략 7등분하여 차근차근 잘라버렸습니다. 한 번 자르고, 정신 잃은 쥐를 깨우고, 두 번 자르고, 정신 잃은 쥐를 또 깨우고, 이런 식으로 이어갔습니다. 쥐는 지옥과 더 잔인한 지옥을 오가는 기분이었습니다. 결국 골절기를 통해 네 다리가 다 잘려나갔습니다. 쥐에게도, 인간에게도 불쾌한 시간이었습니다.
몸통만 남은 쥐는 운동회 때나 볼 수 있는 콩주머니와 같았습니다. 인간은 쥐의 꼬리를 잡아 빙글빙글 돌리다가 콩주머니 모양의 쥐를 싱크대로 던졌습니다. 콩주머니가 박 대신 벽에 부딪쳤고, 원바운드로 싱크대에 골인했습니다. 인간은 콩주머니를 물로 한번 대충 씻었습니다. 콩주머니를 한번 꽉 짜자, 피와 물이 섞인 선홍빛 물이 뚝뚝 떨어졌습니다. 인간은 알고 있었습니다. 아직도 쥐는 죽지 않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쥐는 참 대단한 생명력의 존재였던 것입니다.
인간은 쥐를 바로 슬라이서에 올리려다 말고, 다시 연육 망치를 들었습니다. 왼손으로 쥐의 몸통을 단단히 잡고, 흔들어 깨웠습니다. 쥐는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인간이 쥐의 귀에 대고 무지막지하게 큰 소리2)를 질렀습니다. 그제야 쥐는 몸을 부르르 떨며, 눈을 떴습니다. 인간이 다시 한 번 쥐의 귀에 소리를 질렀습니다. 하지만 쥐는 아무것도 못 알아들은 듯 몇 차례 눈을 깜빡거렸습니다.
인간이 쥐의 꼬리를 연육 망치로 내려치자, 쥐가 다시 살짝 정신을 차렸습니다. 인간은 쥐의 몸통에서 꼬리를 뜯어냈습니다. 고통에 정신을 잃었던 쥐가 잠시 눈을 떴을 때, 연육 망치로 머리를 사정없이 내려쳤습니다. 망치가 쥐의 머리에 빗겨 맞았습니다. 픽 하는 소리와 함께 쥐의 머리 반이 날아갔습니다. 머리에서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습니다. 마치 쥐의 뚜껑이 열린 것 같았습니다. 뇌가 두피 바깥으로 애벌레처럼 스멀스멀 흘러나왔습니다. 뇌에 작은 구멍들이 보였습니다. 마치 뇌가 스펀지 같았습니다.3) 인간은 스펀지 모양의 구멍 난 뇌를 보고, 다시 연육 망치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힘차게 내려쳤습니다. 바둑판 모양의 망치 자국이 선명하게 쥐의 머리에 새겨졌습니다. 물론, 머리는 쥐포처럼 납작해졌습니다.
머리가 터져 뇌수와 피가 줄줄 흐르는 쥐를 슬라이서에 살포시 올렸습니다. 작동 버튼과 함께 기계가 움직였습니다. 인간은 규칙적으로 손잡이를 좌우로 움직였습니다. 쓱싹쓱싹 기계에서 대패질 소리가 날 줄 알았는데, 기계는 굉음을 토해냈습니다. 슬라이서의 칼날이 쥐를 얇게 썰어내지 못했습니다. 생각보다 단단한 쥐의 뼈 때문이었습니다. 쥐의 뼈 안은 무언가 딱딱한 것들이 가득 차4) 있었습니다.
인간은 골절기를 다시 켜고, 쥐의 몸통을 세워 실톱에 통과시켰습니다. 위쪽 옆구리로 들어갔던 톱이 오른쪽 옆구리로 나왔습니다. 쥐는 그렇게 댕강 두 토막 났습니다. 피가 제법 많이 흘러나왔습니다. 인간은 장갑을 낀 손으로 쥐의 몸속 장기들을 마구 뜯어냈습니다. 툭툭 소리를 내며 장기들이 힘없이 몸에서 분리되었습니다. 뼈도 발라냈습니다. 발라냈다기보다 뼈도 몸에서 뜯어냈습니다.
뜯어낸 장기와 뼛조각들을 싱크대에 던지고, 다시 슬라이서로 갔습니다. 속이 비고, 뼈가 없는 쥐 몸통을 슬라이서에 올리고, 전원을 켰습니다. 기계가 움직이자 인간이 손잡이를 좌우로 움직였습니다. 드디어 1mm 두께로 얇게 잘린 첫 번째 쥐고기 슬라이스가 나왔습니다. 기계가 이상 없이 잘 돌아갔습니다. 인간이 손잡이를 좌에서 우로 움직일 때마다 쓱싹쓱싹 쥐 슬라이스 미트가 나왔습니다. 슬라이스는 차곡차곡 기계 하단에 쌓이기 시작했습니다. 대패 삼겹살, 샤부샤부라는 단어가 절로 떠오를 만했습니다.
껍질을 벗기고 몇 차례 씻은 뒤 머리를 터뜨린 후, 속과 뼈를 발라서 얇게 자른 쥐 슬라이스 미트는 놀랍게도 전혀 쥐라는 느낌이 들지 않았습니다. 쥐의 형체는 온데간데없어졌습니다. 대신 슬라이스 치즈처럼 두께가 일정한 얇은 미트 슬라이스 여러 장이 생겼습니다.
인간은 벙커 바닥에 쥐고기 슬라이스를 잘 펴서 널었습니다. 그리고 주변을 정리했습니다. 문을 열어둔 채, 나왔습니다. 어디선가 시원한 바람이 솔솔 불었습니다.
며칠 뒤, 인간이 벙커에 다시 들어왔을 때, 안은 퀴퀴한 냄새가 가득했습니다. 하지만 쥐고기 슬라이스들은 잘 말라 있었습니다. 인간은 그것들을 유리병에 담았습니다. 대충 담은 것이 아니라, 한 장, 한 장 정성스럽게 펴서 차곡차곡 잘 담았습니다. 마치 거래처 사장님께 드릴 명절 선물을 포장하듯 정성을 담뿍 실어 미니마우스 모양의 유리병에 차곡차곡 넣었습니다. 미니마우스는 뭐가 그리도 좋은지 환하게 웃고 있었습니다. 입까지 헤벌리고 말입니다.
독자의 기호에 따라 주석에 밝힌 신문 기사들과 곁들여 읽으셔도 재미있습니다.
1) <노컷뉴스> 2008년 5월 18일 자 <미 쇠고기 반대시위 대비 5․18 기념식장에 ‘물대포’ 등장> 2) <프레시안> 2010년 10월 4일 자 <‘지옥의 소리’ 음향 대포, 시민의 귀가 위험하다!> 3) <노컷뉴스> 2011년 11월 29일 자 <우희종 교수 “CJD 사망자나 광우병소 뇌조직 사용했을 수도”> 4) <미디어오늘> 2012년 6월 28일 자 <“뼛속까지 친일·친미”는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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