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강수정, 유재석, 김용만, 신동엽, 박경림, 강호동
거대 연예기획사 예능프로 독식
‘방송사 주식 로비’ 의혹이 또다시 구설수에 올랐다. 국내 최대 연예기획사 팬텀엔터테인먼트그룹(이하 팬텀) 대주주가 탈세혐의로 검찰조사를 받으면서 방송계에 폭넓은 주식 로비설이 흘러나왔다. 그동안 방송사 로비 의혹은 2002년에 피디가 10여명 구속되는 등 고질병처럼 이어져 왔다. 이번 사건으로 언론의 주목을 받는 팬텀을 통해 거대 연예기획사의 권력화 문제와 외주제작 형태를 점검해 본다.
‘거대 공룡’ 팬텀은 어떤 회사? = 이번 의혹 사건은 예능프로그램에 대한 연예기획사의 영향력을 드러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이름을 밝히지 말아달라고 요청한 한 음악피디는 “앨범 홍보나 자사 연예인을 인기 프로그램에 출연시키기 위한 목적을 넘어 외주제작 요구 등 예능프로그램에서 연예기획사의 힘이 커지고 있음을 시사한다”고 했다.
팬텀은 현재 지상파 3사 예능프로그램의 60~70%를 소속 진행자로 채우고 있는 최대 연예전문기획사다. 1999년 골프공 제조업체로 시작해 2005년에 음반기획사, 영상회사, 매니지먼트사를 인수·합병하면서 연예산업에 뛰어들었다. 지난 3월에는 자회사인 도너츠미디어(옛 팝콘필름)를 통해 디와이(DY)엔터테인먼트의 경영권을 인수하면서 강수정, 유재석, 김용만, 신동엽, 박경림, 강호동, 이혁재, 윤정수, 신정환 등 스타 진행자들을 대거 보유하게 됐다. 이들은 <무한도전> <진실게임> <황금어장>같은 대부분의 인기 예능프로그램을 장악하고 있다. 누가 진행을 맡느냐가 중요해진 예능프로그램에서 잘 나가는 진행자 섭외경쟁이 치열해지다 보니 팬텀의 독식 체제는 여러 가지 문제를 불러왔다. 지상파 예능 프로그램을 맡고 있는 한 피디는 “팬텀 소속 진행자들과 프로그램을 제작할 땐 어쩔 수 없이 피디들이 약자가 된다”고 했다. 팬텀 소속 연예인들의 독식은 타 소속사 연예인들의 방송 출연 기회를 제약하기도 한다. 또 다른 피디는 “팬텀소속 에이급 진행자를 데려오기 위해 다른 연예인을 패키지로 끼워받는 거래는 흔하다”고 했다.
지상파 외주제작 대거 수주, 독과점은 이어진다=팬텀은 매니지먼트 사업뿐 아니라 <황금어장> <야심만만> <신동엽의 있다없다> 등 지상파 3사의 인기프로그램 제작도 맡고 있다. 팬텀은 최근 도너츠미디어가 제작을, 디와이가 매니지먼트를 맡고 팬텀이 이를 총괄하는 식으로 역할을 분담했다. 도너츠미디어는 현재 에스비에스로부터 89억원 규모의 프로그램 외주제작 계약을 수주했고, 한국방송, 문화방송과도 외주수주를 협상중이다. 팬텀전략기획팀 김호영 이사는 “5월말에 결론이 나겠지만 한국방송과 문화방송에서는 10~15개 프로그램을 맡게 될 것”으로 내다봤다. 케이블채널 티브이엔과도 두 프로그램에 대해 ‘전체외주’를 수주 받았다. 김 이사는 “뉴미디어쪽으로 진출할 수 있도록 2,3차 판권을 외주제작사가 갖는 관행을 만들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캐스팅과 제작에 두 팔 걷고 나선 팬텀의 영향력이 커질수록 군소 제작업체는 설 자리를 잃어간다. 현재 지상파를 중심으로 예능프로그램을 제작하는 군소업체는 15개 정도. 에스비에스 <잘살아보세>를 제작하는 캔디프로덕션, 한국방송 <해피선데이-불후의 명곡>을 만드는 코엔 등이 대표적이다. 한 군소제작업체 관계자는 “팬텀이 스타를 내세워 프라임 시간대 외주를 받아가는 것을 보면 우리도 매니지먼트를 해야하는가를 고민하게 된다”며 “기획력과 제작역량을 따져 좀더 많은 제작사에 기회가 주어줘야 다양하고 차별화된 프로그램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언론개혁시민연대도 4일 성명서를 내어 “힘의 불균형으로 인해 거대 연예기획사의 횡포 아닌 횡포가 판을 치고 있으며 그로 인해 영상 콘텐츠 제작 시장에 불합리한 관행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고 비판했다.
권력이동? 아직은 시기상조=팬텀으로 시작한 거대 연예기획사의 권력이 방송계 지형을 흔드는 것은 아닌지도 관심을 모은다. 지금까지 예능 프로그램에서 ‘거드는’ 역할을 해왔던 연예기획사들이 자사 연예인들을 앞세워 프로그램 기획, 제작, 수익배분 등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방송계에서는 아직은 시기상조라는 의견이다. 팬텀을 비롯한 군소 외주제작사들의 제작능력이 현재 지상파를 넘어서지 못하는데다 방송사는 여전히 편성권을 쥐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외주제작이란 허울이 팬텀 같은 거대 연예기획사의 몸집불리기에 이용됐다는 곱지 않은 시선도 있다. 한 예능 피디는 “팬텀은 스타진행자를 데리고 있다는 것 때문에 무늬만 외주인 상황이다. 방송사에서 인건비 등의 제작비를 팬텀 쪽에 입금하면 팬텀 쪽에서 돈을 지불하는 형식으로 제작이 이뤄지면서 팬텀의 전체 매출이 올라간다”고 했다. 한국방송영상진흥원 하윤금 박사는 “연예기획사들이 금융화, 대형화되면서 내실 없이 몸집만 커지는 기형적인 구조가 문제”라며 “연예기획사의 독점 문제, 수익모델의 왜곡, 불합리한 계약 관행 등이 개선되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남지은 김미영 기자 myviollet@hani.co.kr 사진 각사 제공
권력이동? 아직은 시기상조=팬텀으로 시작한 거대 연예기획사의 권력이 방송계 지형을 흔드는 것은 아닌지도 관심을 모은다. 지금까지 예능 프로그램에서 ‘거드는’ 역할을 해왔던 연예기획사들이 자사 연예인들을 앞세워 프로그램 기획, 제작, 수익배분 등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방송계에서는 아직은 시기상조라는 의견이다. 팬텀을 비롯한 군소 외주제작사들의 제작능력이 현재 지상파를 넘어서지 못하는데다 방송사는 여전히 편성권을 쥐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외주제작이란 허울이 팬텀 같은 거대 연예기획사의 몸집불리기에 이용됐다는 곱지 않은 시선도 있다. 한 예능 피디는 “팬텀은 스타진행자를 데리고 있다는 것 때문에 무늬만 외주인 상황이다. 방송사에서 인건비 등의 제작비를 팬텀 쪽에 입금하면 팬텀 쪽에서 돈을 지불하는 형식으로 제작이 이뤄지면서 팬텀의 전체 매출이 올라간다”고 했다. 한국방송영상진흥원 하윤금 박사는 “연예기획사들이 금융화, 대형화되면서 내실 없이 몸집만 커지는 기형적인 구조가 문제”라며 “연예기획사의 독점 문제, 수익모델의 왜곡, 불합리한 계약 관행 등이 개선되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남지은 김미영 기자 myviollet@hani.co.kr 사진 각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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