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에 있을 때였다. 모 결혼정보회사에 회원으로 가입했다는 한 동료의 불평을 들을 수 있었다. 자기 주변의 잘 나가는 의사나 변호사 같은 전문직 종사자들은 회사에서 앞다투어 가입을 요청하며 회비도 상당부분 면제해 주는데 자기는 제값 다 내고 가입한 게 억울하다는 것이다. 그들은 소위 VIP회원으로 따로 관리되어 온갖 이벤트는 물론 소개시켜 주는 이성의 ‘질’이나 횟수가 자기에 대한 것과는 비교도 안 된다고 털어 놓았다.
별 비전없는 이공계 대학원생이 사회적으로 찬밥신세라는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결혼정보회사에서마저 더 많은 이성을 만날 기회를 원천적으로 줄여 버린다면 이 친구가 아무리 재주를 부려본들 연애와 결혼에 이르기는 쉽지 않을 게 분명하다.
영화나 문화산업에 대해 문외한인 내가 요즘 논란이 되고 있는 스크린쿼터 축소를 이해하는 방식은 예전의 그 억울해하던 대학원 동료의 경우에 견주어 보는 것이다. 당시 그 친구에게 문제가 되었던 것은 이성에 대한 매너나 피부 관리, 잘 차려입은 옷, 운동, 고상한 취미, 미래에 대한 확신 등등이 아니듯이 스크린쿼터를 둘러싼 논란에서 지금 중요한 문제는 한국 영화의 완성도나 질, 흥행성 등등은 아닐 것이다. 이런 항목들은 언제나 중요하다. 그러나, 가련한 그 친구에게 “헬스라도 좀 열심히 다녀”라는 충고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듯이 지금 한국영화에 대고 양극화의 문제나 예술영화의 문제, 스탭들 처우개선의 문제를 충고하는 것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결혼정보회사(극장주)가 VIP회원(헐리웃 직배영화)에만 온갖 신경을 쏟은 나머지 충실하게 회비 내는 보통 회원들(한국영화)에게는 좀 더 많은 만남의 기회(극장상영)를 보장해 주지 못한다는 점이다. 기초과학에 대한 뜨거운 열정밖에 없는 이 친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만남의 횟수가 납득할만한 수준으로 보장되는 것이다. 회사 입장에서야 집안 좋고 학벌 좋고 전도유망한 전문직 회원들을 특급대우해 주는 것이 영업상 큰 이득이 될 게 뻔하니까 별 볼일없는 이공계 대학원생의 딱한 처지야 안중에도 없는 게 당연하다.
그런데, 스크린쿼터 축소에 대한 여론이 80% 정도의 찬성을 보인다는 기사들을 보면 언뜻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 있다.
아직도 그 실체가 다 규명되지 않은 황우석 교수의 줄기세포 조작 논란이 한창일 때 여론의 90% 이상이 미국으로의 기술유출을 우려했고 국익을 이유로 황우석 교수의 계속된 연구를 지지했었다. 당시에 횡행했던 음모론 가운데 하나를 보자면, 미국 내 유태인 조직들이 중심이 되어 장차 큰 부가가치를 만들어 낼 줄기세포 기술을 자기들만의 독보적인 기술로 확보하기 위해 황우석 교수 죽이기에 나섰다는 것이다. 평소에 필자 또한 갖가지 음모론을 즐기는 편이긴 하지만, 부시정부가 한반도에서 전쟁을 일으키려고 한다는 일각의 주장을 철부지 반미주의자의 헛된 ‘음모론’이라고 치부하던 많은 주위 사람들이 황우석 사건 만큼은 확고하게 ‘미국 음모론’으로 믿는 모습을 이해하기가 참으로 어려웠다.
불과 한두 달 사이에 새롭게 불거진 스크린쿼터 축소 문제에 대해서는 왜 '국익‘의 광풍이 불지 않을까. 마침 한류는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며 아시아는 물론 미국까지 내달을 기세이고 문화산업의 중요성을 귀에 못이 박히게 들어 온 터인데 말이다. 난자연구를 다른 나라보다 훨씬 더 자유롭게 허용한 법과 제도는 일종의 ’스크린쿼터‘가 아니던가. 황우석 교수의 ‘스크린쿼터’는 문제제기조차 용납되지 않은 신성불가침이었던 반면 한국영화의 스크린쿼터는 국민 대부분이 외면하는 걸레조각처럼 된 이유가 무엇일까. 실체도 없는 미국 유태인의 황우석 죽이기 음모론은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 반면, 너무나 적나라하게 다 드러나서 이제는 더 이상 ‘음모’라고 말할 수조차 없는 미 행정부와 헐리웃의 한국시장 장악 ‘음모’는 “한국영화 안 망한다”는 말로 간단하게 무시되는 이유가 무엇일까.
업적? 황우석 교수의 논문이 사이언스를 장식하기 이전부터 한국영화는 칸에서, 베니스에서, 베를린에서 주요 상들을 수상해 왔다. 미래가치? 줄기세포 기술의 상용화는 적어도 수십 년이 걸리는 반면 한국영화는 지금 당장에도 많은 돈을 벌어들이고 있다. 지도력? 월화수목금금금에 라면으로 연구원들 연명시키는 황우석 교수는 한국인의 능력을 잘 이끌어내는 탁월한 지도자라면서 제때 월급도 못 받는 스탭들 꾸려 나가는 영화 제작사는 악덕업주에 불과하다면, 이건 너무 불공평하지 않은가.
메이저 방송사마저도 휘청거리게 만들었던 우리의 그 뜨거운 ‘애국주의’는 도대체 어디로 가 버렸단 말인가. 그리고 왜? 더구나 지금은 훨씬 더 명확하게 ‘맞장’ 뜨고 있는 상황인데 말이다.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나는 아직 찾을 수가 없다. 다만, 황우석 교수는 본인의 표현대로 “고지에 태극기를 꽂”은 데 비해 한국영화는 아직 헐리웃에 태극기를 꽂지 못한 점이 하나의 이유가 되지 않을까 싶다. 즉, 논문조작이 드러나기 이전까지 황우석 교수는 당시 세계 최고였다. 반면에 한국영화는 아무리 날고 긴다고 해 봐야 동네 골목대장 수준밖에는 안 된다. 2등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는 얘기를 오래도록 들어 온 우리로서는 지금 다소 뒤처지는 사람들을 좀 더 보살펴 주고 관심과 애정을 북돋워 주기보다는 눈앞의 1등만을 숭배하고 경외시하는 게 당연한지도 모른다. 비슷한 상황, 비슷한 처지에 놓이게 되었을 때 1등은 뭐든지 좋고 미화되고 감싸지지만, 약자들에게는 흠이 되고 비난의 계기가 되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렇게 한번 올라선 1등에 대한 숭배는 그 생명이 참으로 길다. 가장 힘센 미국에 대한 숭배는 그래서 차라리 당연해 보인다. 조중동을 비롯한 각종 언론에서는 곧 시작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장밋빛 미래를 전달하기에 급급하다. 그러면서, 동북아 최초로 미국과 FTA 협정을 체결하게 된 것을 마치 미국의 ‘성은’인 양 보도하면서 달라질 한국의 위상을 점치기도 한다. 그러나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아도 이것은 미국이 향후 중국이나 일본과 FTA를 체결할 때 좋은 지렛대로 쓰기 위해 동북아에서 가장 만만한 한국을 처음 상대로 지목한 것에 불과하다. 일종의 스파링 파트너인 셈이다. 여러 가지 면에서 미국은 한국을 굴복시키기가 쉽다. 국력이 우리의 열 배쯤 되는 일본을 굴복시키기는 그만큼 더 어렵다. 만일 미국이 일본이나 중국과 먼저 FTA 협상을 한다면 그들을 상대로 양보할 수밖에 없는 것들을 나중에 한국에게 양보하지 않을 명분이 없어진다. 그러나 협상의 순서를 한국부터 시작하는 것으로 바꾸면 그럴 염려가 없다. 뿐만 아니라, 중국이나 일본에 대해 한국에게도 이런 것들은 양보하지 않았다는 명분을 만들기 위해서라도 훨씬 더 우리에게 가혹한 협상 조건을 내걸 것이 분명하다. 결론적으로, 한국이 동북아의 첫 번째 협상국이 된 것은 큰 형님의 은총이 아니라 ‘재앙’이다. 보수 언론의 힘에 대한 숭배는 이미 ‘국익’을 심하게 훼손하는 단계에까지 이른 듯하다. 그러고 보면 그런 미국에게마저 보수언론과 온 국민이 대들게 만든 황우석 교수의 능력이 참으로 대단해 보인다. 역설적이게도 영상문화산업을 선도하는 영화업계 전체의 미디어나 대중에 대한 설득력이 황우석 개인의 언론플레이만도 못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어찌되었든 정말로 그놈의 ‘애국주의’가 필요한 곳은 사기와 조작으로 얼룩진 짝퉁 1등이 아니라 힘겹게 골리앗에 맞서고 있는 다윗이 아닐는지.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필자, 기자가 참여한 <필진네트워크>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메이저 방송사마저도 휘청거리게 만들었던 우리의 그 뜨거운 ‘애국주의’는 도대체 어디로 가 버렸단 말인가. 그리고 왜? 더구나 지금은 훨씬 더 명확하게 ‘맞장’ 뜨고 있는 상황인데 말이다.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나는 아직 찾을 수가 없다. 다만, 황우석 교수는 본인의 표현대로 “고지에 태극기를 꽂”은 데 비해 한국영화는 아직 헐리웃에 태극기를 꽂지 못한 점이 하나의 이유가 되지 않을까 싶다. 즉, 논문조작이 드러나기 이전까지 황우석 교수는 당시 세계 최고였다. 반면에 한국영화는 아무리 날고 긴다고 해 봐야 동네 골목대장 수준밖에는 안 된다. 2등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는 얘기를 오래도록 들어 온 우리로서는 지금 다소 뒤처지는 사람들을 좀 더 보살펴 주고 관심과 애정을 북돋워 주기보다는 눈앞의 1등만을 숭배하고 경외시하는 게 당연한지도 모른다. 비슷한 상황, 비슷한 처지에 놓이게 되었을 때 1등은 뭐든지 좋고 미화되고 감싸지지만, 약자들에게는 흠이 되고 비난의 계기가 되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렇게 한번 올라선 1등에 대한 숭배는 그 생명이 참으로 길다. 가장 힘센 미국에 대한 숭배는 그래서 차라리 당연해 보인다. 조중동을 비롯한 각종 언론에서는 곧 시작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장밋빛 미래를 전달하기에 급급하다. 그러면서, 동북아 최초로 미국과 FTA 협정을 체결하게 된 것을 마치 미국의 ‘성은’인 양 보도하면서 달라질 한국의 위상을 점치기도 한다. 그러나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아도 이것은 미국이 향후 중국이나 일본과 FTA를 체결할 때 좋은 지렛대로 쓰기 위해 동북아에서 가장 만만한 한국을 처음 상대로 지목한 것에 불과하다. 일종의 스파링 파트너인 셈이다. 여러 가지 면에서 미국은 한국을 굴복시키기가 쉽다. 국력이 우리의 열 배쯤 되는 일본을 굴복시키기는 그만큼 더 어렵다. 만일 미국이 일본이나 중국과 먼저 FTA 협상을 한다면 그들을 상대로 양보할 수밖에 없는 것들을 나중에 한국에게 양보하지 않을 명분이 없어진다. 그러나 협상의 순서를 한국부터 시작하는 것으로 바꾸면 그럴 염려가 없다. 뿐만 아니라, 중국이나 일본에 대해 한국에게도 이런 것들은 양보하지 않았다는 명분을 만들기 위해서라도 훨씬 더 우리에게 가혹한 협상 조건을 내걸 것이 분명하다. 결론적으로, 한국이 동북아의 첫 번째 협상국이 된 것은 큰 형님의 은총이 아니라 ‘재앙’이다. 보수 언론의 힘에 대한 숭배는 이미 ‘국익’을 심하게 훼손하는 단계에까지 이른 듯하다. 그러고 보면 그런 미국에게마저 보수언론과 온 국민이 대들게 만든 황우석 교수의 능력이 참으로 대단해 보인다. 역설적이게도 영상문화산업을 선도하는 영화업계 전체의 미디어나 대중에 대한 설득력이 황우석 개인의 언론플레이만도 못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어찌되었든 정말로 그놈의 ‘애국주의’가 필요한 곳은 사기와 조작으로 얼룩진 짝퉁 1등이 아니라 힘겹게 골리앗에 맞서고 있는 다윗이 아닐는지.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필자, 기자가 참여한 <필진네트워크>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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