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영화제 ‘스크린쿼터 지키기 1인 시위’ 박찬욱 감독

“절박한 한국영화 현실 알리려 나섰다”

스산한 베를린의 겨울이 일순간 뜨겁게 달아올랐다. 14일 오후 3시(현지시각) 베를린 영화제의 메인 상영관인 팔라스트 앞 광장에선 박찬욱 감독의 스크린쿼터 축소 반대 1인시위가 벌어지고 있었다. 박 감독은 영상 1, 2도를 오가는 쌀쌀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앞뒤로 ‘한국영화는 위기에 처해 있다’, ‘스크린쿼터 없이는 올드보이도 없다’고 적힌 피켓을 들고 1시간 반 가량 시위를 펼쳤다. 팔라스트 광장에는 주로 아시아계로 구성된 30여 외국 영화담당 기자들과 영화제에 참석한 한국 영화인들이 모여 박 감독에게 질문하거나 무언의 지지를 보냈다.

박 감독은 한국영화가 이제 할리우드에 대항하기에 경쟁력이 충분하지 않으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아직까지 한국영화가 스크린쿼터제 없이 버텨낼 수 있는 산업적 체력에 도달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며 “한국영화의 성장은 최근 몇년 간의 일”이라고 설명했다. 그는“여전히 불안하다. 특히 한국영화 산업의 기초가 되어온 자본은 상황이 나빠지면 언제든지 빠져나갈 수 있는 종류의 돈”이라고 덧붙였다. 이런 시위 만으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를 철회를 유도하고 스크린쿼터를 유지할 수 있을지 염려스럽다는 물음에는 “효과가 어느 정도 있을지 재보며 벌이는 시위가 아니다. 절박한 문제이기 때문에 이렇게 나선 것”이라고 말했다.

영하 날씨 속 외국기자 30여명 취재 관심
독일 영화학도들 대화에서도 지지 호소

박 감독은 시위 전날 베를린 탤런트 캠퍼스가 주최한 일반인과의 대화에서도 스크린쿼터 축소와 관련된 발언에 30여분 할애했다. 그는 스크린쿼터에 대한 지식이 전무한 젊은 독일 영화학도들이 주로 모인 이 자리에서 스크린쿼터제의 의미와 현재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영화인들의 시위를 소개하며, “정부는 영화를 육성하겠다고 입으로는 말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미국의 시장 개방 요구에 호응해 영화를 희생양으로 삼는 이중정책을 펼치고 있다. 우리가 반대활동을 벌이는 것도 그 때문”이라고 역설하며 독일인들의 지지를 호소했다.

1인 시위를 취재하기 위해 모인 외국 기자들은 대체로 한국 영화인들의 행동을 지지한다는 의견이다. 대만 <애플 데일리 퍼블리케이션> 제시카 기자는 “같은 아시아인으로서, 한국 감독과 배우들이 해외 영화제에서 이런 식의 발언을 하는 것이 매우 용감한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 감독은 “베를린 영화제에서 만난 다양한 국적의 영화인과 기자들이 미국에 의한 스크린쿼터 축소에 우려를 보이고, 한국 영화인들의 행동을 지지하고 있다"며 1인 시위 성과를 희망적으로 보았다.

베를린/글·사진 김도훈 <씨네21>기자 [e-ma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