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콘&콜라
일요일이었던 지난 23일. 저녁을 먹으러 광화문에 갔다가 교보빌딩 앞에서 손팻말을 들고 서 있는 젊은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문화침략 저지 및 스크린쿼터 사수’. 영화인대책위에서 나온 1인 시위대로, 중부대학교 연극영화과 학생회장 최승완씨였다. 일면식도 없는 사이지만, 두달 전 연예인 전문 사진작가 김중만씨의 1인 시위를 끝으로 영화인대책위 1인 시위 취재를 잠정적으로 접은 터라 미안한 마음에 움찔하며 눈길을 피했다.
영화인대책위는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빌미로 문화 침략을 노골화하고 있는 미 정부 규탄과 스크린쿼터 사수를 위해’ 지난 2월4일 영화배우 안성기를 필두로 1인 시위를 시작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촛불문화제나 대규모 장외집회가 있었던 2월8일과 17일, 4월1일과 15일을 제외하고 매일 1~2명의 영화인들이 광화문 교보빌딩 앞에서 시위를 계속하고 있다.
1인 시위 초반, 박중훈·장동건·최민식·전도연·강혜정·김주혁·이준기·문소리·박해일·황정민·김혜수·강성연·공형진 등 영화배우들이 시위대로 나서자 언론과 시민들의 관심이 일제히 쏠렸다. 장동건의 1인 시위가 있었던 2월6일에는 갑자기 몰려든 2천여명의 시민과 취재진들로 시위 장소가 바뀌기도 했다. 이준기 등 신세대 스타들의 시위가 있는 날에는 전경들과 팬들, 대책위 관계자들과 취재진의 신경전과 몸싸움이 육탄전을 방불케 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1인 시위 현장에서 스타들이 사라지고, 시위 기간이 길어지자 시민들과 언론의 관심도 시위대에서 멀어져 갔다.
78일째 1인 시위를 이어오고 있는 26일 현재, 짧은 통신 기사나 일부 인터넷 매체의 보도를 빼곤 1인 시위 기사를 보도하는 언론이 거의 없다. 대책위의 주장에 배치되는 논조 때문에 애초부터 1인 시위에 무게를 두지 않았던 언론사들은 당연히 관련 기사를 게재하지 않는다. 스크린 쿼터 축소 및 한-미 자유무역협정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는 언론사들의 경우도, 내용과 형식이 비슷한 시위 기사를 반복해서 보도할 수 없다는 현실적인 이유 때문에 초반 몇 차례 보도 뒤 기사를 싣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영화인 대책위는 영화감독, 제작자, 스태프, 영화학과 학생 등을 위주로 변함없이 1인 시위를 계속하고 있다. 시위자는 권영락 공동집행위원장이 당사자들과 협의해 결정한다. 일부에서는 초반 이후 스타들이 나서지 않는 것과 관련해 “더이상 시위에 참여할 스타가 없는 것 아니냐”는 의문도 제기하고 있다. 하지만 사정이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초반에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등 스타들이 이미 제 몫을 충분히 했을뿐더러, 스타들이 시위에 나설 경우 영화계 내부 양극화나 외제차 문제 등 ‘논리적으로 반박할 수는 있지만 불필요한’ 논란들이 다시 불거질 수 있기 때문에 대책위 쪽에서 스타들의 1인 시위 출정을 자제시키는 형편이기도 하다.
오기민 정책위원(아이필름 대표)은 “1인 시위를 통해 스크린쿼터 축소에 반대하는 영화인들의 목소리를 널리 알렸고, 한-미 에프티에이 저지 범국민운동본부의 발족도 앞당길 수 있었던 것 같다”고 78일 동안 이어온 1인 시위를 자평했다.
대책위는 이런 평가를 바탕으로 기존의 한국영화 의무상영일수를 의미하는‘146일’이 될 때까지 일단 1인 시위를 진행한 뒤 축소된 스크린쿼터가 시행되는 7월1일까지 연장 시위를 구상하고 있다. 또 지난 2월 베를린 영화제에 이어 다음달 칸영화제에서도 1인 시위나 좀 더 큰 규모의 시위를 벌이는 등 국외에서도 1인 시위를 이어간다는 계획이다.
전정윤 기자 ggu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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