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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지옥을 보는 눈

등록 2016-11-07 15:04수정 2016-11-07 21:45

[권여선의 인간발견]
<마터스: 천국을 보는 눈>. 판씨네마 제공
<마터스: 천국을 보는 눈>. 판씨네마 제공
10월20일 개봉한 미국 공포영화 <마터스>는 2008년 프랑스 호러 <마터스: 천국을 보는 눈>을 리메이크한 것이다. 리메이크 영화는 보지 않았지만 7년 전 원작 <마터스: 천국을 보는 눈>에서 늙은 교주 마드모아젤을 만난 것으로 충분하다. 아니, 만났다는 표현은 적절하지 않다. 나로서는 결코 만나고 싶지 않았고 앞으로도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을 괴물과의 섬뜩한 조우였다.

마드모아젤의 대척점에 서 있는 소녀 루시의 이야기부터 하자. 그는 어릴 때 정체불명의 집단에 납치돼 지속적인 폭행을 당하다 탈출하는데, 그때 자기처럼 잡혀와 고통을 겪는 여자를 보고 그 간절한 구조 요청을 외면했다는 죄의식에 시달린다. 사실 여자를 도우려 했어도 그럴 수 없는 상황이었으니 외면했다 보기 어렵지만, 루시는 그 후 자책과 고문의 트라우마에 시달리다 끝내 환각 속에 자살한다.

루시를 사랑했지만 그의 말을 믿지 않았던 친구 안나가 있다. 루시가 죽고 나서야 그는 이상한 밀교 집단이 있다는 친구의 말을 믿게 된다. 그 집단은 인간이 극한적 고통을 겪다 죽기 직전의 상태에 사후세계인 천국을 볼 수 있다고 믿는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천국의 ‘말’(승마용 말이 아닌 언어의 말)이므로, 납치한 인간들을 견딜 수 없는 고통 속에 몰아넣되 살아서 말은 할 수 있도록 고문의 기술을 날로 발전시킨다. 그들은 유구한 역사를 가진 부유층의 결사체로 세상에 드러나지 않는 촘촘한 조직과 납치 및 고문기술자들을 고용할 자금력을 갖추고 있다.

불행히도 안나 역시 그들의 희생양이 된다. 여기서 그들이 행한 기상천외한 폭력과 고문의 기술을 열거할 생각은 없다. 고문기술자 부부는 고통의 극에 달한 안나를 보고 드디어 때가 왔다는 것을 감지하고 교주인 마드모아젤에게 연락한다. 검은 터번과 검은 옷을 입은 마드모아젤이 차에서 내려 살찐 까마귀처럼 서둘며 걷던 걸음과, 피투성이가 된 안나에게 무엇을 보았느냐고 물을 때 떨리던 음성, 안나의 반응에 반짝 빛나며 커지던 눈, 안나의 입에 귀를 갖다 대던 호기심 가득 찬 표정을 잊을 수 없다.

권여선 소설가
권여선 소설가
안나를 접견한 마드모아젤에게서 사후세계를 전해 듣고자 각지에 은신하던 부유한 신도들이 몰려든다. 그 늙은 군단은 산 제물을 공양하여 순교자라 추앙하는 위선적인 연극 속에서 자기들이 천국의 진리를 알게 되리라는 기대에 차 있다. ‘농단’이라는 말이 깎아지른 벼랑처럼 높은 곳에서 인간의 개미 같은 삶을 내려다보며 좌지우지하는 것을 뜻한다면, 부와 권력을 틀어쥔 그들은 법과 윤리의 틀 너머에서 무수한 인간의 육체와 생명을 농단해왔다. 그러나 인간에게서 너무 멀어지는 그만큼 잡신들에게 너무 가까워진 그들 역시 해괴한 인형에 불과할 뿐이다.

같은 배에 탔다가 혼자 살아왔다는 이유로 죄의식에 떠는 루시가 있고, 사경을 헤매는 안나에게 무엇을 보았느냐고 묻는 늙은 마드모아젤의 해맑은 비정이 있다. 그들이 안나의 눈을 통해 무엇을 보았든, 지금 내 마음은 지옥을 본다. 고문과 밀교와 농단의 유구한 역사가 출발하는 한국의 70년대, 그곳의 섬뜩한 인형들이 여기 다 모여 있다.

권여선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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