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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7.04 07:03 수정 : 2019.10.10 10:26

강원도 탄광촌의 다방 종업원 영숙(심혜진)은 자신을 따뜻하게 대해주는 운동권 출신 기영(문성근)에게 호감을 느끼고 티켓 파는 일을 그만두고자 한다.

[한겨레-CJ문화재단 공동기획]
24)그들도 우리처럼
감독 박광수(1990년)

강원도 탄광촌의 다방 종업원 영숙(심혜진)은 자신을 따뜻하게 대해주는 운동권 출신 기영(문성근)에게 호감을 느끼고 티켓 파는 일을 그만두고자 한다.
데뷔작 <칠수와 만수>(1988)에 이어 두번째 작품 <그들도 우리처럼>(1990)으로 박광수 감독은 당시 한국영화계의 낡은 어법을 혁파했다. 그의 영화는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공간에 연출의 방점을 두고, 사건만큼이나 현실의 활력을 포착한다고 하는 현대영화의 명제를 거침없이 추구했다. 이 영화는 운동권 대학생 한태훈이 김기영(문성근)이라는 가명으로 강원도 탄광촌에 숨어들어오는 것으로 시작한다. 도입부에서부터 탄가루와 먼지가 휘날리는 마을의 풍경은, 지식인의 관념성이 현실의 육체성과 부딪치는 생생한 광경으로 비친다.

다방을 그만두겠다고 말하는 영숙(심혜진)에게 연탄공장 아들인 성철(박중훈)은 함께 떠나자고 말한다. 영숙이 이를 거절하자 화가 난 성철은 폭력을 휘두르고 영숙은 칼을 빼앗아 자신을 내버려두라고 소리친다.
막장이라 불리는 탄광들조차 대다수가 문을 닫는 마을에서 연탄공장에 취업한 기영은 착취의 고리에 묶여 있는 민중의 구체적인 삶을 같이 겪는다. 고된 노동에 종사하는 공장 직원들은 월급을 제때 주지 않는 사장의 만행에 시달리고, 엽색 행각을 일삼는 공장 사장 아들 성철(박중훈)의 기행도 지켜만 본다. 생활고로 고리대금에 내몰린 마을 사람들은 파멸의 나락에서 폐광 반대 시위를 벌이지만 수배 중인 김기영은 이 모든 상황을 무기력하게 방관할 수밖에 없다. 더 곤란하게도 자신을 연모하는 다방 종업원 송영숙(심혜진)의 마음을 거부할 수 없다.

운동권 출신으로 탄광촌에 들어온 기영(문성근)은 다방에서 행패를 부리는 연탄공장 외아들 성철을 말리다 폭행사건에 휘말린다. 평소 신원이 불확실한 기영을 주시하던 경찰은 강도 높은 취조를 한다.
모든 것이 잿빛투성이인 탄광촌의 현실에서 김기영과 송영숙의 허약한 러브스토리는 가냘픈 생기를 낸다. 영숙은 기영과 소풍을 간 어느 일요일 저녁 컴컴한 항구의 배들 저편 그림자에 숨어서 진짜 이름을 고백한다. “전 송영숙이 아니에요. 이금란, 그게 제 진짜 이름이에요…. 그 여자가 누굴 좋아하게요?” 그런 영숙 앞에서 김기영이 자기 정체를 밝히는 것은 그로부터 한참 뒤 자기 정체가 탄로 나고 마을을 떠나야 할 때다. 개봉 당시 <그들도 우리처럼>은 검열제도에 정면으로 도전하지 못하고 민중적 리얼리즘을 멜로드라마의 관습으로 보완하려 했다는 비판도 받았지만 세월이 흐른 지금 다시 보는 <그들도 우리처럼>은 현실의 전형을 드러낸 우뚝한 이미지들로 사람의 체온을 느끼게 하는 감동을 준다.

김영진/영화평론가·명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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