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10.30 08:56
수정 : 2019.10.30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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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준환 감독의 데뷔작인 <지구를 지켜라>는 한국영화 르네상스기에 출현해 장르영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준 작품이다. 상업적 성공과는 무관하게 이 작품은 정교한 ‘비(B)급 정서’를 바탕으로 현실의 불평등과 부조리를 판타지의 틀로 절묘하게 풀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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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CJ문화재단 공동기획]
82)지구를 지켜라
감독 장준환(200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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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준환 감독의 데뷔작인 <지구를 지켜라>는 한국영화 르네상스기에 출현해 장르영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준 작품이다. 상업적 성공과는 무관하게 이 작품은 정교한 ‘비(B)급 정서’를 바탕으로 현실의 불평등과 부조리를 판타지의 틀로 절묘하게 풀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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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의 르네상스기에 속하는 2003년은 작품성과 다양성이 폭발한 해로, <지구를 지켜라>는 그 틈에서도 보석처럼 빛나는 전대미문의 장르 데뷔작이라 할 수 있다. <살인의 추억>과 <바람난 가족> <올드보이>가 작가주의의 본격화를 알렸고, <장화, 홍련>과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 <싱글즈> <황산벌> 등이 충무로식 상업영화의 가능성을 더욱 공고히 했으며, 그해 말 개봉한 <실미도>는 마침내 한국영화가 상업적으로 가본 적이 없는 곳까지 도달했다. 이 틈에서 상업적 실패작인 <지구를 지켜라>가 역설적이게도 장르영화로서 그 진가를 발휘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정교하게 의도된 ‘비(B)급 정서’에 기인한다.
조만간 외계인에 의해 지구가 멸망할 것이라 믿는 병구(신하균)는 평소 안드로메다 왕자로 의심하던 강 사장(백윤식)을 납치하여 머리털 밀기, 생채기에 물파스 바르기 등 기상천외한 고문을 가한다. 병구의 광기가 극단으로 흐르던 찰나 다행히 강 사장은 경찰의 도움으로 구출되지만, 상황이 종료됐다고 안도하는 순간 예측 불가한 사건이 발생하며 그야말로 모든 것이 ‘끝장’난다.
그동안 한국 상업영화에서는 불평등과 부조리로 인한 울분과 염세주의를 주로 고통받던 약자의 승리로 해결해왔고, 관객은 그들을 통해 대리만족을 느껴왔다. 이런 문화 소비 정서에서 강자가 최후 승자로 남는 이야기는 새롭다기보다 부자연스럽게 느껴지기 마련이지만, 우리가 처한 현실을 돌아본다면 이보다 더 현실적인 이야기는 없을 것이다.
<지구를 지켜라>는 ‘병든 지구’의 모습을 한 병구와 과거 정·재계 권력자들의 형상을 조합한 듯 우스꽝스러운 모습의 외계인을 통해 망상을 현실로, 바꿔 말해 판타지를 리얼리티로 전복하며 꼬집는다. 이는 결과적으로 진부한 주제와 미덕에 기괴함을 끌어들여 오히려 그것을 ‘낯설게 하기’에 이른다. 장준환 감독의 이러한 영화적 세계관은 인간성을 둘러싼 현실의 잔혹함을 더욱 극명하게 드러냈고, 결국 그동안 상상력을 유보당했던 충무로식 장르영화에서 새로운 성취를 이룩한다.
윤필립/영화평론가
※한겨레·CJ문화재단 공동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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