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10.31 09:47
수정 : 2019.11.04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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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지슬>은 현대사의 가장 큰 비극인 ‘제주 4·3’을 내부자의 눈으로, 마치 제사를 집전하는 입장으로 다룬다. 어떤 역사적 평가도 온전히 이뤄지지 않은 4·3을 최초로 조명한 이 작품은 카메라로 해낼 수 있는 최고의 씻김굿이며 눈물과 피로 쓴 위령제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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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CJ문화재단 공동기획]
83)<지슬: 끝나지 않은 세월 2>
감독 오멸(201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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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지슬>은 현대사의 가장 큰 비극인 ‘제주 4·3’을 내부자의 눈으로, 마치 제사를 집전하는 입장으로 다룬다. 어떤 역사적 평가도 온전히 이뤄지지 않은 4·3을 최초로 조명한 이 작품은 카메라로 해낼 수 있는 최고의 씻김굿이며 눈물과 피로 쓴 위령제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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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멸 감독의 <지슬: 끝나지 않은 세월 2>(이하 <지슬>)는 제주 4·3을 정면으로 다룬 첫 한국영화다. 좌우익 대립 과정에서 엄청난 수의 무고한 양민이 희생당한 이 현대사의 비극은 본토인 제주도에서도 오랫동안 발설하는 것조차 금기시된 역사적 비극이었다. 오멸 감독은 이 비극을 연대기적으로 나열하는 대신 일종의 제사를 집전하는 입장으로 다룬다.
영화는 ‘1948년 제주도에 소개령이 내려졌고 해안선으로부터 5㎞ 바깥의 사람들은 폭도로 간주하고 사살에 들어갔다’는 간단한 자막으로 시작한다. 사람들은 군인들을 피해 산속으로 피난해 공포에 떨고 있고 그들을 잡으러 다니는 군인들은 피로에 시달리며 광기를 보인다. 덩어리로 제시된 이야기의 구멍을 메우는 것은 흑백 화면에 장엄하게 담긴 제주도의 산하다. 겨울을 배경으로 제주도의 검은 돌로 덮인 무뚝뚝한 대지와 거친 파도의 하얀 포말과 슬픈 기색의 먹구름과 순백으로 빛나는 눈밭 등이 인물들의 배경에 보인다. 예민한 관객은 이 화면들에 제주도 사람들이 모시는 1800여 신령의 기운이 서려 있다는 착각을 느낀다.
오멸 감독은 제주도 내부 사람의 시선으로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땅의 선조들에게 진한 눈물을 담은 영화 제사를 지낸다. 군인들의 먹이로 도살당하는 돼지를 찍은 장면은 그게 장엄한 부감의 시점으로 보이기 때문에 다소 위안이 된다. 그 장면이 끔찍한 것은 꽥꽥거리는 돼지라는 생명체의 마지막 모습, 인간의 먹거리를 위해 치러지는 무심한 일상이 영화 속 양민 학살의 광경과 겹치기 때문이다. 그러나 누군가는 보고 있다. 죽은 듯 잠잠한 제주도 삼라만상이 깨어나고 신령들이 인간들의 사건을 보고 있다는 느낌은 카메라를 제사 도구로 이용한 오멸 감독이 해낸 최고의 성취다.
영화 속 부당한 이념적 학살극의 피해자들은 변변한 항변도 하지 못하고 당했다. 오멸 감독은 그들의 죽음에 다가가는 카메라를 신중하게 연출함으로써 한국 사회가 아직도 답해주지 않았고 어떤 역사적 평가도 온전히 이뤄지지 않은 4·3을 초월적 신령의 기운이거나 아니면 모든 것을 지켜본 제주도 산하의 기운으로 감싸 안는다. 카메라로 해낼 수 있는 씻김굿이며 눈물과 피로 쓴 위령제라 할 수 있다.
김영진/영화평론가·명지대 교수
※한겨레·CJ문화재단 공동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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