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12.04 10:53
수정 : 2019.12.04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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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만들어진 이만희 감독의 <휴일>은 어느 날 사라졌다 2005년 한국영상자료원 수장고에서 발견됐다. <휴일>은 특별히 큰 사건 없이 1968년 겨울 서울의 을씨년스러운 공기와 남산에 불어닥친 바람을 그려내는 데 집중한다. 이 작품은 결국 한국영화가 모더니즘으로 도약하는 신호탄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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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CJ 문화재단 공동기획]
(99) <휴일>
감독 이만희(19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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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만들어진 이만희 감독의 <휴일>은 어느 날 사라졌다 2005년 한국영상자료원 수장고에서 발견됐다. <휴일>은 특별히 큰 사건 없이 1968년 겨울 서울의 을씨년스러운 공기와 남산에 불어닥친 바람을 그려내는 데 집중한다. 이 작품은 결국 한국영화가 모더니즘으로 도약하는 신호탄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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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마디로 위대한 걸작. 이 영화를 달리 뭐라고 할 수 있을까. 이만희의 <휴일>은 한국영화사에 존재한 적이 없었다. 1968년에 만들어진 다음 창고에 갔고 어떤 기록에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런 다음 세기가 바뀌었고 2005년 한국영상자료원 수장고에서 문득 발견되었다. 이 기적 같은 기쁨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휴일>은 걸작들이 그러하듯 이야기랄 것이 없다. 그저 어느 추운 겨울날 일요일, 돈이 없어 다방에 가서 커피 한잔 마시지 못하는 연인 허욱과 지연이 만나 서울 시내를 하릴없이 거니는 게 전부다. 지연은 임신을 했고 허욱은 돈을 빌려야 한다. 텅 빈 장소들, 그 장소를 간신히 연결하는 세상의 고통스러운 표면들. 이만희는 별사건이 없는데도 1968년 서울의 겨울 거리만으로 가난한 풍경과 을씨년스러운 공기를 미장센으로 삼아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듯이 두 연인을 자기들이 주어진 세상이라는 사건과 계속해서 마주치게 만든다. 그리고, 그리고 굉장한 사건과 마주친다. 두 연인이 남산에 올라갔을 때, 서울 시내가 내려다보이는 남산 끝자락에 섰을 때, 마치 두 연인을 날려버릴 듯이, 세상의 형상을 부숴버릴 듯이, 아니 영화의 화면 자체가 지워져버릴 듯이 그렇게 바람이 분다. 바람이라는 사건. 이만희는 오직 영화만이 가능한 사건을 찍었다. 모두가 주인공이 세상과 어떻게 만날 것인가를 찍고 있을 때 이만희는 영화가 세상과 어떻게 만날 것인가, 를 찍었다. 그 순간 한국영화는 마침내 모더니즘의 문제로 도약하듯이 점핑하였다.
이만희는 이 기이하고, 우울하고, 느리고, 종종 멈춰 서면서, 가끔 사랑하는 사람을 잊어버린 듯 이야기의 바깥으로 나갔다가 되돌아오기를 반복하면서, 그것 자체가 하나의 리듬이 되어 바로 그것에 이끌려 넋을 잃은 듯이 진행한다. 마치 모든 시청각 기호들을 내버려두고 그저 세상을 산책하는 것만으로도 그저 충분해질 때 <휴일>은 걸어가는 육체의 피로와 가난한 영혼의 도덕을 물어보기 시작한다. 이만희의 <휴일>은 유현목의 <오발탄>, 김기영의 <하녀>와 함께 한국영화의 진수다. 이 영화는 점점 더 위대해질 것이다. 용기를 내서 이렇게 말하고 싶다. 훗날 <만추>가 발견되었을 때 정말 <휴일>만큼 좋을까.
정성일/영화평론가
※한겨레·CJ 문화재단 공동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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