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도강추] 민중가요패 ‘새벽’ 아해들, 중년되어 다시 만나다
[포커스] 흩어진지 13년…
지친 삶 하나씩 들쳐메고 ‘혹시…들리나요?’ 콘서트 노래가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1984년 대학 노래패 출신이 주축이 돼 만든 모임 ‘새벽’은 ‘민중가요’의 본격적인 새벽을 알렸다. 이 구성원들 중심으로 만든 앨범 <노래를 찾는 사람들> 1집은 대중의 사랑을 톡톡히 받았다. ‘이 산하에’, ‘광야에서’ ‘저 평등의 땅에’…. ‘새벽’의 노래들은 한 시대를 담았고, 달궜다. 1987년께부터 상대적으로 대중적인 길을 걷던 ‘노래를 찾는 사람들’과 거리를 유지하던 ‘새벽’은 음악적 완성도와 노동 현장의 목소리, 두 마리 토끼를 좇았다. 세상은 변했고 ‘새벽’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은 깊어져 결국 1993년 해체했다. 아직 하고 싶은 말이 남았나? 오는 28·29일 서울 백암아트홀에서 옛 ‘새벽’의 구성원 몇몇이 모인다. ‘혹시 내가 들리나요?-사랑 노래 15’ 콘서트다. 중년이 된 그들의 관심은 ‘타오르던 젊음의 시절’이 아니라 지금 여기의 삶과 자화상이다. “재결성 하자는 거 아니에요 그냥 재밌을 것 같아서
살아가는 모습 보여주고…조금 못부르면 또 어때요?” 해체 뒤 13년이 지나 왜 다시 모이나? ‘새벽’ 구성원들 사이에서도 말이 많았다. ‘저 평등의 땅에’를 만든 류형수(회사원)는 이렇게 답한다. “재결성하자는 거 아니에요. 특별한 주제나 목표도 없어요. 어떤 그림이 나올까, 재밌을 듯했어요.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 보여주고 싶었고요. 살아오며 받은 상처를 같이 작업하며 치유하고픈 바람이 있었죠.” 조이한(미술사가)은 “회고하는 공연엔 모두 결사 반대”라고 말했다. 그렇게 1983~85년에 대학에 입학한 21명이 뭉쳤다. 그러니 이번 공연에서 ‘그날이 오면’, ‘벗이여 해방이 온다’ 등 ‘새벽’의 ‘인기곡’을 기대하면 허망해진다. 추억에 젖고 싶다면 다른 7080 콘서트를 찾는 게 알맞다. 다만 마흔 줄에 선 평범한 사람들과 속 이야기를 나누는 데는 표값 3만5천원이 아깝지 않을 테다. 공연에서 부를 16곡 가운데 12곡은 새 노래다. 통기타, 어쿠스틱 피아노와 어울리는 발라드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솔직하기에 되레 공감을 사는 것들이다. 우물쭈물, 왈가왈부 끝에 막상 공연이 결정되니 한 달 만에 새 노래들이 나왔다. “노래에 대한 열정이나 할 말이 남아 있으니까요.”(조이한) 회사원, 작곡가, 미술가, 요가명상지도자…. 나온 배만큼 생활의 짐도 늘어 한번 모이는 것도 쉽지 않았다. 노래는 파일로 만들어 전자우편으로 돌려 들었다. 지난 1일 오후 6시께 서울 삼성동 백암아트홀 연습실 피아노 앞에 10여명이 둘러섰다. 늦게 온 사람들은 우산을 탈탈 털며 부산스러웠다. 누가 어떤 노래를 부를지 정하려고 모인 첫 연습 날이다. 발랄한 ‘내 이름을 불러봐’(작사·작곡 류형수)로 넘어가자 테너가수 임정현이 “어이, 앗싸” 추임세를 놓았다. “키득키득…” 휘파람도 엉켜들었다. 처연한 ‘귀천’(천상병 시·황란주 곡)이 끝난 뒤 연극배우 김묘진의 통통 튀는 목소리가 울렸다. “이 노래, 무조건 내가 할거야.” “그러다 잘린다”는 웃음 섞인 면박이 이어졌다. 이런저런 조합으로 노래가 이어지는 사이 류형수는 피아노와 통기타, 컴퓨터로 오고가며 반주를 맞췄다. 군것질거리 과자 봉지는 비어가고 중년의 얼굴엔 장난기가 어렸다. “옛 목소리는 안 나오죠. 배짱으로 밀고나가는 거예요.(웃음) 예전엔 너무 잘 부르려고 하다보니 경직됐던 것 같아요. 조금 못 부르면 또 어때요.”(김묘진) 1993년 ‘새벽’의 마지막 공연엔 ‘모색’이란 제목이 걸렸다. 팜플렛엔 이렇게 썼다. “모든 것이 흘러갔다. 우리는 이런 현실을 인정하고 현실 속에서 새로운 희망의 언어를 찾아 각주하려 한다.” 동유럽과 소련의 사회주의 정권이 무너진 뒤 ‘새벽’도 정체성에 대한 고민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민중가요에 대한 대중의 지지도 뚝 떨어졌다. 포크(‘그날이 오면’ 등), 행진곡(‘해방을 향한 진군’, ‘다시 또 다시’), 유럽의 진보적인 가요에 대한 연구와 90년대 ‘작은 음악회’에서 선보였던 노래들(‘러시아에 대한 명상’)…. ‘새벽’의 음악적 실험은 마침표를 찍었다. 사회를 바꾸려는 도구로서 음악과 예술로서 음악 사이 10년간 고민은 흘러갔다. 하지만 ‘새벽’이 민중가요에 낸 물길은 깊고 구성원의 삶은 계속 됐다. 이번 공연은 “각주한 세월”의 단면을 보여줄지 모른다. 예를 들면 “아름다운 가을 하늘 난 보고 싶었는데, 이제 난 구름 되어 가을 하늘에 떠있네”(가을)처럼 과거와 현재를 넉넉하게 끌어안는 노래로 말이다.
백암아트홀의 송혁규 실장이 이 돈 안 되는 공연을 제안한 데도 궁금증이 한몫했다. 학창 시절 즐겨 불렀던 노래의 주인공들이 어떤 모습으로 돌아올지 보고 싶었다고 한다. 그는 또 “‘새벽’은 민중가요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 모임”이라며 “문화의 다양성을 위해서라도 이런 음악가들에게 공연할 기회를 주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번 공연 연출은 영화 <모두들, 괜찮아요?>의 남선호 감독이 맡는다. (02)559-1333. 글 김소민 기자 prettyso@hani.co.kr 사진 옛 새벽 구성원들 제공
지친 삶 하나씩 들쳐메고 ‘혹시…들리나요?’ 콘서트 노래가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1984년 대학 노래패 출신이 주축이 돼 만든 모임 ‘새벽’은 ‘민중가요’의 본격적인 새벽을 알렸다. 이 구성원들 중심으로 만든 앨범 <노래를 찾는 사람들> 1집은 대중의 사랑을 톡톡히 받았다. ‘이 산하에’, ‘광야에서’ ‘저 평등의 땅에’…. ‘새벽’의 노래들은 한 시대를 담았고, 달궜다. 1987년께부터 상대적으로 대중적인 길을 걷던 ‘노래를 찾는 사람들’과 거리를 유지하던 ‘새벽’은 음악적 완성도와 노동 현장의 목소리, 두 마리 토끼를 좇았다. 세상은 변했고 ‘새벽’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은 깊어져 결국 1993년 해체했다. 아직 하고 싶은 말이 남았나? 오는 28·29일 서울 백암아트홀에서 옛 ‘새벽’의 구성원 몇몇이 모인다. ‘혹시 내가 들리나요?-사랑 노래 15’ 콘서트다. 중년이 된 그들의 관심은 ‘타오르던 젊음의 시절’이 아니라 지금 여기의 삶과 자화상이다. “재결성 하자는 거 아니에요 그냥 재밌을 것 같아서
살아가는 모습 보여주고…조금 못부르면 또 어때요?” 해체 뒤 13년이 지나 왜 다시 모이나? ‘새벽’ 구성원들 사이에서도 말이 많았다. ‘저 평등의 땅에’를 만든 류형수(회사원)는 이렇게 답한다. “재결성하자는 거 아니에요. 특별한 주제나 목표도 없어요. 어떤 그림이 나올까, 재밌을 듯했어요.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 보여주고 싶었고요. 살아오며 받은 상처를 같이 작업하며 치유하고픈 바람이 있었죠.” 조이한(미술사가)은 “회고하는 공연엔 모두 결사 반대”라고 말했다. 그렇게 1983~85년에 대학에 입학한 21명이 뭉쳤다. 그러니 이번 공연에서 ‘그날이 오면’, ‘벗이여 해방이 온다’ 등 ‘새벽’의 ‘인기곡’을 기대하면 허망해진다. 추억에 젖고 싶다면 다른 7080 콘서트를 찾는 게 알맞다. 다만 마흔 줄에 선 평범한 사람들과 속 이야기를 나누는 데는 표값 3만5천원이 아깝지 않을 테다. 공연에서 부를 16곡 가운데 12곡은 새 노래다. 통기타, 어쿠스틱 피아노와 어울리는 발라드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솔직하기에 되레 공감을 사는 것들이다. 우물쭈물, 왈가왈부 끝에 막상 공연이 결정되니 한 달 만에 새 노래들이 나왔다. “노래에 대한 열정이나 할 말이 남아 있으니까요.”(조이한) 회사원, 작곡가, 미술가, 요가명상지도자…. 나온 배만큼 생활의 짐도 늘어 한번 모이는 것도 쉽지 않았다. 노래는 파일로 만들어 전자우편으로 돌려 들었다. 지난 1일 오후 6시께 서울 삼성동 백암아트홀 연습실 피아노 앞에 10여명이 둘러섰다. 늦게 온 사람들은 우산을 탈탈 털며 부산스러웠다. 누가 어떤 노래를 부를지 정하려고 모인 첫 연습 날이다. 발랄한 ‘내 이름을 불러봐’(작사·작곡 류형수)로 넘어가자 테너가수 임정현이 “어이, 앗싸” 추임세를 놓았다. “키득키득…” 휘파람도 엉켜들었다. 처연한 ‘귀천’(천상병 시·황란주 곡)이 끝난 뒤 연극배우 김묘진의 통통 튀는 목소리가 울렸다. “이 노래, 무조건 내가 할거야.” “그러다 잘린다”는 웃음 섞인 면박이 이어졌다. 이런저런 조합으로 노래가 이어지는 사이 류형수는 피아노와 통기타, 컴퓨터로 오고가며 반주를 맞췄다. 군것질거리 과자 봉지는 비어가고 중년의 얼굴엔 장난기가 어렸다. “옛 목소리는 안 나오죠. 배짱으로 밀고나가는 거예요.(웃음) 예전엔 너무 잘 부르려고 하다보니 경직됐던 것 같아요. 조금 못 부르면 또 어때요.”(김묘진) 1993년 ‘새벽’의 마지막 공연엔 ‘모색’이란 제목이 걸렸다. 팜플렛엔 이렇게 썼다. “모든 것이 흘러갔다. 우리는 이런 현실을 인정하고 현실 속에서 새로운 희망의 언어를 찾아 각주하려 한다.” 동유럽과 소련의 사회주의 정권이 무너진 뒤 ‘새벽’도 정체성에 대한 고민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민중가요에 대한 대중의 지지도 뚝 떨어졌다. 포크(‘그날이 오면’ 등), 행진곡(‘해방을 향한 진군’, ‘다시 또 다시’), 유럽의 진보적인 가요에 대한 연구와 90년대 ‘작은 음악회’에서 선보였던 노래들(‘러시아에 대한 명상’)…. ‘새벽’의 음악적 실험은 마침표를 찍었다. 사회를 바꾸려는 도구로서 음악과 예술로서 음악 사이 10년간 고민은 흘러갔다. 하지만 ‘새벽’이 민중가요에 낸 물길은 깊고 구성원의 삶은 계속 됐다. 이번 공연은 “각주한 세월”의 단면을 보여줄지 모른다. 예를 들면 “아름다운 가을 하늘 난 보고 싶었는데, 이제 난 구름 되어 가을 하늘에 떠있네”(가을)처럼 과거와 현재를 넉넉하게 끌어안는 노래로 말이다.
백암아트홀의 송혁규 실장이 이 돈 안 되는 공연을 제안한 데도 궁금증이 한몫했다. 학창 시절 즐겨 불렀던 노래의 주인공들이 어떤 모습으로 돌아올지 보고 싶었다고 한다. 그는 또 “‘새벽’은 민중가요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 모임”이라며 “문화의 다양성을 위해서라도 이런 음악가들에게 공연할 기회를 주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번 공연 연출은 영화 <모두들, 괜찮아요?>의 남선호 감독이 맡는다. (02)559-1333. 글 김소민 기자 prettyso@hani.co.kr 사진 옛 새벽 구성원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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