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승림의무대X파일 - 살로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오페라로 인하여 <살로메>란 이름은 오늘날 팜므 파탈의 대명사로 각인되었다. 자신의 유혹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의붓아버지 헤로데 왕 앞에서 매혹적인 춤을 추어주고 그 댓가로 요한의 목을 요구하는 <살로메>의 줄거리는 본래 영국 작가 오스카 와일드의 희곡을 바탕으로 작곡되었다. 슈트라우스와 와일드 이전에도 살로메는 여러 예술가들의 관능적인 경외의 대상이었다. 루벤스, 뒤러, 모로, 스탄치오니, 티티안과 같은 화가들이 그녀의 자태를 화폭에 표현하고자 노력했고, 플로베르, 하이네, 말라르메, 헤이우드는 글로써 그녀가 저지른 치명적인 유혹을 증명하고자 했다.
이 이야기는 마태복음을 근간으로 하고 있다지만 신약성서 그 어디를 뒤져보아도 ‘살로메’란 이름은 등장하지 않는다. 성서에는 다만 ‘헤로디아의 딸’이라고만 나와 있으며 실제 내용도 일반적인 문학 작품들과 다르다. 성서에는, 요한의 처형을 사주한 것은 살로메가 아닌 살로메의 어머니 헤로디아이며, 헤로디아는 당시 요한이 남편과 이혼하고 그 이복형과 재혼한 자신을 비난한 데 앙심을 품고 딸을 내세워 이와 같은 일을 저질렀다고 적혀 있다.
이후 여러 작가 및 화가들의 입을 거친 이 처형 사건에서 ‘살로메’라는 이름은 당대 역사가 플라비우스 요제푸스의 저서에 처음 등장한다. 하지만 요제푸스조차 요한의 처형에는 살로메나 헤로디아나 모두 관계가 없으며 다만 민중의 폭동을 우려한 헤로데 왕의 명령에 의한 것이라고 적고 있다. 어쨌거나 이는 당시 민중의 지도자였던 요한이 집권자의 손에 처형된 정치적 사건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집권자의 아내와 딸이 아름다웠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요한은 정치적인 희생물이 아닌 여성의 관능적인 매혹과 편집증적인 욕망에 의한 희생양으로 탈바꿈되어버리고 말았다.
19세기말 보헤미안의 자유를 만끽하며 파리에 체류하고 있던 오스카 와일드에게 이러한 사실의 변용은 그리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는 당시 흠모의 대상이었던 여배우 사라 베르나르를 위하여 이 작품을 하루 반 만에 완성하였고 더군다나 모국어인 영어가 아닌 프랑스어로 집필했다. 여기에도 여러 가지 설이 존재하는데, 영어를 몰랐던 베르나르에 대한 작가의 배려라는 이야기와 당시 성서 속 이야기를 무대에서 상연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던 영국의 법령을 피하기 위한 작은 조처였다는 소리도 있다. 희곡은 1893년에 완성되었지만 프랑스어로 쓴 보람도 없이 연극 <살로메>는 내용이 ‘변태적’이라는 이유로 런던에서 상연금지 처분을 당해 1931년까지 공연되지 못했다.
실상 살로메(Salome)는 유태계 여성 사이에서 흔한 이름 중 하나이다. 히브리어로 ‘평화’를 뜻하는 ‘샬롬’(Salome)이란 단어가 자신에게 매혹되지 않는 남자의 목을 베어 잔인하게 복수를 하는 팜므 파탈의 대명사가 되어버린 것 자체가 실은 아이러니인 셈이다.
노승림/공연칼럼니스트 alephia@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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