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개의 ‘연례보고서’ 미술계 흐름 한눈에
고든 마타 클락·한스 하케 설치 ‘볼거리’
국내 최대의 미술잔치인 광주비엔날레가 5일 막을 올린다. ‘신정아 파동’이란 불명예를 잘 극복해낼 것인지, 특별한 주제를 두지 않고 세계 미술의 흐름을 폭넓게 보여주겠다는 기획 의도를 얼마나 잘 살려낼 수 있을지 등에 특별한 관심이 쏠린다.
이번 광주비엔날레는 11월9일까지 66일 동안 광주비엔날레 전시관, 광주시립미술관, 의재미술관, 대인시장, 광주극장 등에서 개최된다. 이번 비엔날레의 제목은 ‘연례보고서’. 2007~2008년 세계 곳곳에서 열린 주목할 만한 전시 38개를 끌어와 재구성한 것이 전시 뼈대여서 붙인 이름이다. 덕분에 2년 동안의 해외 미술계 흐름을 한자리에서 만나볼 기회다. 전시 규모가 커서 편한 신발에 안내책자를 챙기고 보는 게 좋을 듯하다. 관람 순서는 5개 갤러리로 짜인 비엔날레전시관을 먼저 돌아본 뒤 걸어서 광주시립미술관으로 옮겨가고, 그 다음 의재미술관, 대인시장 등으로 이동하면 좋다.
주목되는 전시는 광주시립미술관 1층을 채운 고든 마타 클락. 지난해 뉴욕 휘트니미술관과 로스앤젤레스 현대미술관에서 열린 회고전이 한국으로 옮겨왔다. 건물의 일부를 잘라낸 설치조각(오른쪽 사진)을 전시한다. 고든은 건축물을 이용한 작업으로 유명하다. 파리 퐁피두센터를 짓기 위해 헐 예정인 빈 아파트 두 동에 구멍을 내어 연결하기도 하고, 뉴욕 허드슨 강변에 버려진 창고의 벽에 구멍을 뚫은 뒤 컴컴한 내부에 빛을 끌어들여 기하학적인 빛의 무늬를 만드는 작업 등을 해왔다.
비엔날레 전시관에 마련되는 한스 하케의 전시(왼쪽 사진)도 볼거리로 꼽힌다. 하케는 1993년 백남준과 함께 베니스비엔날레 독일관 작가로 참여한 바 있는데, 이번 전시는 뉴욕 첼시의 폴라 쿠퍼 갤러리에서 열렸던 개인전을 가져왔다. 흑백사진, 종이 위에 한 염색 작업, 낡은 소파와 베개를 이용한 설치작품 등 독특하고 다양한 작품세계를 선보인다.
국내 작가 박진아씨도 주최 쪽이 권하는 주목할 만한 작가다. 밤에 플래시를 터뜨려 찍은 스냅사진을 참고로 그린 회화 연작 <문탠> 시리즈는 야간 사진이 눈으로 본 모습과 다른 점에 착안해 기계를 통과한 풍경의 낯섦을 보여준다.
끈기있는 관객이라면 20세기 독일을 대표하는 영화 흐름이었던 ‘뉴 저먼 시네마’의 대표적 감독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의 작품 <베를린 알렉산더 광장>에 도전할 만하다. 알프레트 되블린의 소설을 영화화했는데 무려 14부작에 전체 상영시간이 15시간30분에 이른다. 매주 금·토·일 광주극장에서 하루 2~3부씩 상영해 다 보려면 한 달이 걸린다. 파시즘이 권력을 잡기 직전, 광기와 무정부주의로 들끓던 1920년대 말 베를린의 표정을 담았다.
시장에서 열리는 전시도 있다. 대인시장에 마련된 <복덕방 프로젝트>다. 대형마트가 들어서면서 파리 날리는 재래시장에 작가들이 입주해 그래피티, 조각, 설치, 영상작업을 하거나 아예 술집과 채소가게를 차려 판매를 하기도 한다.
이밖에 의재미술관에서도 비엔날레를 맞아 허백련 작품의 진수를 소개하는 전시를 연다.
9일까지는 비엔날레 전시장 주변에서 하루 3시간씩 특별 라디오방송을 하는데, 모로코 작가 압델라 카룸이 만든 <라디오 아파트 22>란 작품이다. 인터뷰와 토론, 음악과 각종 사운드를 이용한 일종의 퍼포먼스 작업이다.
임종업 선임기자
blitz@hani.co.kr
사진 광주비엔날레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