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수 삼성 구조조정본부장(가운데 안경 쓴 사람) 등 그룹 주요 사장들이 지난 7일 오전 서울 태평로 삼성 본관에서 ‘8천억원의 기금을 사회에 헌납하겠다’는 내용의 대국민 발표를 하고 있다.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삼성 인사·재무권 일부 이양
총수 지배구조 유지기능 ‘태생적 한계’
계열사 직접관여 대신 외곽지원 변화
총수 지배구조 유지기능 ‘태생적 한계’
계열사 직접관여 대신 외곽지원 변화
‘삼성공화국의 친위대’, ‘그룹 총수의 방패막이’…. 삼성 구조조정본부를 일컫는 수식어들이다. 법적 실체도 없이 이건희 회장을 보좌하며 삼성그룹 안팎에서 막강한 권한을 행사해온 삼성 구조본이 수술대에 올랐다. 지난 7일 삼성이 ‘반삼성’ 기류를 누그러뜨릴 카드 중 하나로 내민 것이 바로 구조본의 기능 조정이다. 삼성이 추진 중인 구조본 개편의 요체는 법무실을 분리 운영하고, 인력도 현재의 150여명에서 100명 미만으로 줄인다는 것이다. 삼성 구조본은 실제 변할 것인가? 이에 대한 답을 찾기는 쉽지 않다. 삼성 구조본의 존재는 오너를 정점으로 하는 재벌그룹의 지배구조와 이재용 상무로 이어지는 경영권 승계 작업 등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구조본의 일부 규모를 줄이거나 편제를 조금 바꾸는 식으로는 본질적인 역할과 위상이 달라지지 않는다는 얘기다. 권한에 상응하는 책임은 지지 않고, 실체도 베일에 가려져 있는 특수지위에 근본적인 재편이 이뤄질지도 불투명하다. 그럼에도 당장은 기능 축소와 위상 약화가 불가피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법대로’를 외치면서도 실제론 삼성에 관련된 각종 불법행위의 사법적 해결사 구실을 맡다가 여론의 역풍을 몰고 온 법무실을 구조본에서 떼어내고, 전체 인력의 3분의 1을 줄이는 개편안은 큰 변화임에는 분명하다. 삼성은 내부적으로 인력 축소에 따른 업무조정 범위를 놓고 고심 중이다. 이학수 구조조정본부장이 구체적으로 밝히지는 않았지만, 현재 구조본의 3대 핵심부서의 권한을 일부 떼어내 계열사로 과감히 이관하는 방안이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 구조본 관계자는 “경영진단팀의 현장감사 업무와 인사팀의 일부 임원 인사권을 계열사에 넘겨주고, 경영 현안에 직접 관여해온 재무팀은 중요한 신규사업 개발이나 투자에 대한 의사결정을 지원하는 데 역점을 두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삼성 계열사 사장들까지 구조본에 머리를 낮췄던 점을 감안하면 변화가 예상되는 대목이다.
구조본의 축소 운영 방침에도 불구하고 큰 의미를 두지 않는 시각도 있다. 총수 일가가 적은 지분과 순환출자 구조로 그룹을 지배하는 상황에서 ‘컨트롤 타워’(주조정) 기능을 해온 구조본이 여전히 절대적인 힘을 지닐 수밖에 없는 태생적 이유가 이런 부정적인 시각의 근거로 작용하고 있다. 김선웅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장(변호사)은 “여러 계열사에서 인력을 파견받고 자금을 끌어다 쓰는 지금의 구조본을 공식화(공조직화)하거나 지주회사 형태로 투명화하지 않는 다음에야 조직 자체 개편은 큰 의미가 없다”고 지적했다. ‘삼성 문제’에 대해 이 회장이 사과하고 여론 무마용으로 특별 조처까지 내놓은 마당에, 구조본에 대한 문책 인사가 없었던 점도 곱씹어봐야 할 대목으로 지적된다. 연초 삼성 인사 때 부사장급 이상으로 이뤄진 구조본 팀장들은 전부 자리를 지켰다. 구조본이 마련한 구조본 개편안의 한계다. 국민 정서와 여론에 밀려 ‘비대해진’ 조직의 군살을 빼고 몸을 낮출 수는 있으나, 틀을 바꿀 수는 없다는 취지로 읽힌다.
일각에서는 분리 운영될 법무실의 경우 덩치가 오히려 더 커질 것으로 보고 있다. 계열사 법무팀을 총괄하면서 국외 경영활동에 대한 법률 자문을 빌미로 조직 확대를 꾀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삼성 관계자는 “글로벌 비즈니스를 하다 보면 법률 자문을 할 일이 많이 생긴다”며 “긍정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 본부장도 “법무실이 비대해졌다는 지적이 있으나, 미국 제너럴일렉트릭(GE)의 경우 변호사가 1천명이 넘는다”며 확대 필요성을 내비쳤다. 홍대선 기자 hongd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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