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경제 경제일반

발음도 어려운 ‘CPTPP’ 둘러싼 궁금증 4가지

등록 2021-12-14 15:16수정 2021-12-15 02:34

미, 국내 정치 일정 때문에 미뤄뒀나
중, ‘못 먹는 감’ 찔러본 것인가
일, 한국 가입 반대하고 나설까
한, 미·중 사이에 끼이는 것일까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3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226차 대외경제장관회의에서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 추진 의사를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3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226차 대외경제장관회의에서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 추진 의사를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쓸 때마다 너무 성가셔 화가 날 지경이다. 어쩌자고 이렇게나 긴 이름으로 지었을까.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이라니. 영문 약자를 우리말로 옮겨놓고 보면 아주 가관이다. 시피티피피. 글꼴이나 발음 모두 해괴하다는 얘기를 들을 판이다.

어처구니없이 장대한 이름만큼이나 기이한 점이 있다. 협정의 모태인 옛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주도했던 미국은 여기서 탈퇴한 뒤 복귀에 부정적인 태도를 유지하고 있는 반면, 티피피의 ‘가상 적국’으로 여겨졌던 중국이 협정에 가입하겠다고 머리를 들이밀었다. 이 엉뚱한 일이 벌어진 게 벌써 지난 9월이다.

여기에 한국도 가입 신청서를 준비하겠다고 13일 공식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협정 담장 안에는 한국에 냉랭한 일본이 회원국으로 버티고 서 있다. 중국이든 한국이든 협정에 가입하려면 일본을 비롯한 기존 11개 회원국 전원 찬성이란 장애물을 넘어야 한다. 한·일 간 싸늘한 관계를 고려할 때 가입을 추진하는 한국 정부 당국으로선 적지않이 신경 쓰일 수밖에 없는 의사결정 방식이다.

미국, 국내 정치 일정 때문에 미뤄뒀나

국내에서 정부 당국이나 재계를 중심으로 시피티피피 찬성 기류가 일찌감치 형성된 중에도 틈이 있었다. 미국의 협정 복귀 뒤에 하는 게 낫다는 의견과, 그와 무관하게 추진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쪽으로 갈렸다. 미·중 갈등, 한·미 간 특수관계라는 맥락 속에서 생긴 간극이었는데, 양쪽 모두에 공통적이었던 건 미국의 협정 복귀를 당연지사처럼 여겼다는 점이다.

지금도 이런 시각이 남아 있다. 미국이 내년 중간선거라는 정치 일정을 앞두고 있어 잠시 미뤄둔 것일 뿐 협정에 가입하는 쪽으로 발길을 돌릴 것이란 식의 관측이다. 국내 정치 일정은 시피티피피 같은 국제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을 벌이기에 불리한 여건이다. 개방의 폭이 넓어지는 데 따라 손해를 입는 이해관계자들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미국이 바쁜 정치 일정 탓에 의사결정을 못하고 있을 뿐 여전히 미련을 갖고 있다는 해석과 연결돼 있는 지점이다.

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의 박천일 원장은 이런 ‘미국 미련론’에 회의적이다. 시피티피피에는 이미 관심을 껐고, 그보다는 인도·태평양 국가 중심으로 중국의 헤게모니를 억누를 협의체를 만드는 쪽으로 가고 있다고 분석한다. 오커스(AUKUS, 미국·영국·호주 3개국 안보 협의체) 출범, 파이브아이스(Five Eyes, 미국·영국·캐나다·호주·뉴질랜드 5개국 군사 동맹) 확대 논의 같은 게 그런 예다.

여기에 미국으로선 시피티피피 같은 다자간 무역협정에 기대지 않더라도 양자 간 협상을 통한 각개 격파로 뜻한 바를 이룰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다는 점이 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개정하고,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미국-멕시코-캐나다협정(USMCA)으로 탈바꿈시킨 건 단적인 예다.

미국으로선 글로벌 가치사슬(밸류체인), 반도체·배터리를 비롯한 미래산업에서 중국을 효율적으로 견제하는 협력체제를 강화하는 데 더 관심을 두고 있다는 분석으로 이어지는 실마리다. 그렇다면 시피티피피에 힘을 쏟을 이유나 여유가 없다. 캐서린 타이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가 지난달 한국 방문에 앞서 일본 <NHK>와 한 인터뷰에서 “(CPTPP는) 5년 전에 논의된 것”이라며 “그보다 지금 직면한 과제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발언한 것은 이를 반영한다.

중국, ‘못 먹는 감’ 찔러본 것일까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9월15일(현지시각) 백악관에서 미국, 영국, 오스트레일리아의 새 안보 파트너십인 ‘오커스’(AUKUS) 창설을 알리는 기자회견을 다른 두 정상이 화상으로 참여한 가운데 하고 있다. 왼쪽 화면은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 오른쪽은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 워싱턴/EPA 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9월15일(현지시각) 백악관에서 미국, 영국, 오스트레일리아의 새 안보 파트너십인 ‘오커스’(AUKUS) 창설을 알리는 기자회견을 다른 두 정상이 화상으로 참여한 가운데 하고 있다. 왼쪽 화면은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 오른쪽은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 워싱턴/EPA 연합뉴스

중국이 시피티피티에 가입하겠다고 전격 발표한 것은 지난 9월16일 밤이었다. 돌이켜보면 매우 공교로운 날이었다. 미국과 영국, 호주가 9월15일(현지시각) 오커스 출범에 합의한 직후였다는 점에서다. 오커스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첨단 방위 기술을 공유하는 ‘3자 안보 파트너십’ 성격이다.

중국의 당시 움직임은 반사적으로 국제정치적 맥락에서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여겨질 법했다. 중국에 뒤이어 대만이 곧바로 협정 가입을 신청하고 나선 것도 이와 얽혀 해석할 대목이다. 이런 미묘한 상황은 시피티피피의 높은 개방도, 독특한 의사결정 방식과 맞물려 중국이 협정 가입에 진심일까라는 의문을 불러일으켰다.

시피티피티는 알셉(RCEP,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에 버금가는 거대 규모에, 관세철폐율 96%로 개방도 최고 수위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정부 보조금, 디지털 통상, 노동, 인권 분야에서도 까다로운 조건을 붙이고 있다. 중국으로선 감당하기 어려운 조건일 수 있다. 11개국 중 한 나라라도 반대하면 가입할 수 없도록 단단한 그물을 쳐놓고 있는 터에 일본은 중국의 가입 신청에 뜨악해 하고 있다. 호주와 중국이 험악한 관계라는 사실은 장애물의 높이를 더한다.

중국의 속내는 아직 명확히 알기 어렵지만, 시피티피피에서 내건 조건을 맞출 수 없을 것이라는 식의 예단은 섣부를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서방 진영 쪽에서 후진적이라 여길 정치 체제가 이 조건을 충족하는 데는 오히려 유리한 여건이라는 점에서다. 당이 결정하면 따라가는 구조이니, 기존 회원국들에서 요구하는 바를 훨씬 빠르게 준비해나갈 수도 있는 상황임을 일컫는다. 회원국 중 말레이시아, 싱가포르는 중국의 참여를 환영하는 태도를 보인다는 사정이 여기에 덧붙는다. 미국이 빠져나간 경제 협의체여서 중국으로선 일정 정도 매력을 느낄 수 있다는 점까지 아울러 고려하면 못 먹는 감 찔러 보는 것이라고만 여길 수 없다.

일본, 한국 가입 반대하고 나설까

가입 신청서를 준비하겠다고 공언한 한국이 시피티피피 쪽에서 내건 조건에 미달해 참여하지 못하는 사태는 예상하기 어렵다. 무역 대국으로 성장했고 어느 나라 못지않게 개방 수준에서 높은 자리에 있기 때문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이 발효된 지 내년으로 10주년을 맞는다는 사실은 이를 뒷받침하는 단적인 예다.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은 올해 이미 10주년을 맞았다.

문제는 회원국 전원 찬성을 조건으로 문을 열어주고 있다는 의사결정 방식에다 한·일 간 껄끄러운 외교 관계가 얽혀 있다는 점이다. 일본은 외교 관계에서 한국에 냉랭하다. 뿐만 아니라 일본 후쿠시마산 수산물 수입을 금지한 한국의 조처로 벌어진 두 나라 간 분쟁 건이 세계무역기구(WTO)에 계류돼 있다. 일본 쪽에서 한국의 시피티피피 참여를 가로막거나, 적지 않은 대가를 요구할 개연성이 높다. 일본 쪽에서 수산물 문제를 풀어야 한국의 참여에 협조할 수 있다는 뜻을 흘리고 있다는 후문이 통상당국 안팎에서 돌았던 것은 이런 배경을 깔고 있다.

한국, 미·중 사이에 끼이는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지 않다는 쪽이다. 시피티피피의 모태인 티피피 시절엔 그랬다. 미국 주도로 티피피 협상 타결에 이른 2015년 한국은 마침 중국과 자유무역협정 체결을 위한 협상을 벌이고 있었다. 티피피가 미국의 ‘중국 포위’ 전략임은 공공연한 사실이었다는 점을 고려할 때 티피피 가입은 한·중 자유무역협정 협상을 교착 상태에 빠뜨릴 수밖에 없었다. 재계나 통상 당국 쪽에서 가입 찬성 분위기가 높았고 기왕이면 ‘파운딩 멤버’(초기 멤버)로 참여해야 한다는 의견까지 나왔지만 힘을 얻지 못했던 배경이다.

개명된 새 협정에선 이런 성격이 크게 바뀌었다. 미국이 유보적이고 중국이 가입 신청서를 내민 국면이 그 상징 격이다. 이 대목이 한국엔 거꾸로 부담 아니냐는 해석도 있긴 하다. 미·중 갈등 국면에서 미국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겠느냐는 것인데, 그다지 큰 설득력은 갖지 못하는 것 같다. 여러 면에서 미국과 보조를 같이하는 일본, 호주가 회원국이라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의 하나다.

한국 통상당국에 지워진 부담은 미·중 갈등이라는 큰 구도의 국제정치적 맥락보다 시피티피피 회원국 하나하나가 이참에 한국과 얽혀 있는 숙제를 풀자고 나설 수 있다는 가능성이다. 시피티피피 가입의 의사결정 방식 탓에 현실로 나타날 수 있는 시나리오다. 이는 결국 국내 이해관계자들의 반발로 이어질 수 있는 사안이다. 예컨대 일본 수산물 문제를 풀자면 국내 어민들의 이익 훼손으로 연결된다. 산업계 안에서도 분야별로 이해관계를 달리하는 문제까지 있다. 한국의 시피티피피 가입에선 ‘국제 정치’보다는 이 ‘국내 정치’ 문제가 지금으로선 더 도드라져 보인다.

김영배 선임기자 kimyb@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경제 많이 보는 기사

음식점 폐업률 전국 1위는 이 도시…집값도 급락 직격탄 1.

음식점 폐업률 전국 1위는 이 도시…집값도 급락 직격탄

“그리 애썼던 식당 문 닫는 데 단 몇 분…” 폐업률 19년 만에 최고 2.

“그리 애썼던 식당 문 닫는 데 단 몇 분…” 폐업률 19년 만에 최고

90살까지 실손보험 가입 가능해진다…110살까지 보장 3.

90살까지 실손보험 가입 가능해진다…110살까지 보장

오세훈발 ‘토허제 해제’ 기대감…서울 아파트 또 오르나요? [집문집답] 4.

오세훈발 ‘토허제 해제’ 기대감…서울 아파트 또 오르나요? [집문집답]

한화 김동선, ‘급식업 2위’ 아워홈 인수한다 5.

한화 김동선, ‘급식업 2위’ 아워홈 인수한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