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기에 브뤼셀의 유럽연합 집행위원회 본부 건물에 ‘2006년 5월6일 시민들에게 본부 등을 개방한다’는 내용의 ‘오픈 데이’ 알림 펼침막이 걸려 있다. 유럽연합의 ‘오픈 데이’는 매년 연례행사로 열린다. 농협중앙회 유럽연합사무소 제공
협상문구 20% “대화·협력”…“부분개방도 좋다”
지원 함께 약속…멕시코에 680억·칠레에 417억
지원 함께 약속…멕시코에 680억·칠레에 417억
[한-미 FTA 집중탐구: 1부-다른 나라에서 배운다]
유럽연합 “우린 미국식과 달라”…‘협력정신’을 전면에 스위스 제네바에서 떼제베를 탔다. 프랑스를 경유해 벨기에의 수도 브뤼셀이 목적지였다. 스위스는 프랑스·벨기에와 달리 유럽연합 회원국이 아니다. 출입국 심사대를 통과할 때 버릇처럼 약간 긴장됐다. 하지만 여권을 보여주려고 손을 내미는 순간 동료와 잡담을 나누던 출입국 직원은 “그냥 통과하라”고 손짓했다. 브뤼셀에 도착해 보니 그곳은 아예 출입국 심사대도 없었다. 너무 쉽게 역을 빠져나오니 되레 허무했다. 미국과는 다른 점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유럽의 이런 자유로운 분위기는 유럽연합의 대외 무역정책이 미국과 다소 차이가 나는 것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유럽연합이 멕시코·칠레와 맺은 협정 역시 농업과 제조업의 관세 인하 뿐 아니라 서비스·투자·지적재산권까지 아우르고 있다. 여기까지는 미국이 이들 두 나라와 맺은 협정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2003년 발효된 유럽연합과 칠레간 협정문을 보면, 112쪽 가운데 첫 29쪽을 ‘정치적 대화’와 ‘협력’에 할애하고 있다. 정치적 대화 항목은 인권 존중과 개인의 자유, 법치주의 등 민주적 가치를 보호·강화하기 위해 당사국간 정례 정상회담과 주기적 장관급회담, 연례 고위급회담을 개최한다고 명시해 놓았다. 시민단체 모임 재정지원까지 협력 분야는 유럽연합식 자유무역협정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112쪽 가운데 20쪽이 협력 분야다. △중소기업의 발전을 위한 협력 △남녀 평등에 대한 협력 △고용창출 등 사회적 협력 △지속가능한 발전 등 환경 협력 △시민사회에 대한 협력 등이 포함돼 있다. 시민사회 조항에서는 엔지오(NGO) 등 당사국간 시민단체 대표자들의 정례모임을 촉진하며 이를 위해 재정 지원까지 할 수 있도록 명시했다. 유럽연합은 ‘협력기금’ 등으로 불리는 재정 지원을 통해 협정 체결 상대방을 돕기도 한다. 유럽연합과 멕시코간 협정은 2000년 10월 발효됐는데, 유럽연합은 2002년부터 올해까지 5620만유로(한화 약 680억원)를 멕시코에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미 2004년까지 법치주의 강화 프로그램에 1500만유로, 치아파스주(멕시코 남부에 있는 반군 거점)의 지속가능한 사회적 발전을 위해 1500만유로, 멕시코 중소기업 지원에 1200만유로를 내놓았다. 유럽연합은 칠레에도 경제협력, 기술혁신, 환경보호, 정부개혁 등을 돕기 위해 올해까지 모두 3440만유로(한화 약 417억원)를 지원했다. 피에르 데프레인 전 유럽연합 통상담당 차관은 “유럽연합은 체결 상대방의 시장이 강해지도록 준비를 시킨다”며 “이를 위해 어떤 산업들은 개방하지 않을 수 있도록 부분 개방을 허용하며 경제적인 지원이 흔히 뒤따른다”고 말했다. 그는 “반면에 미국은 부분 개방을 좋아하지 않고 전면 개방에 초점을 맞추며 체결 대상국에 전혀 돈을 지원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김양희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유럽연합 회원국들의 사회민주주의적 성향 △미국의 일방주의에 대한 견제 △1952년 유럽석탄철강공동체에서 지금의 유럽연합까지 발전하면서 몸에 밴 사회통합과 공동체 지향적 성향 등이 지금의 유럽연합식 자유무역협정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 분석했다. 어떤게 우월한지 판단은 시기상조 물론 미국식과 유럽연합식 가운데 어느 쪽이 우월하다고 속단하기는 힘들다. 지난 3년간 미국과 멕시코·칠레, 그리고 유럽연합과 멕시코·칠레간의 수출입 증가율 추이를 보더라도 어느 방식이 나은지 결론을 내리기는 쉽지 않다.(표1) 유럽연합은 지금까지 39개의 자유무역협정을 맺었지만 미국식처럼 서비스·투자·지적재산권까지 다룬 협정은 멕시코·칠레와 맺은 것 등 몇개에 그친다. 두 협정은 발효된 지 몇년도 채 안됐다. 유럽연합식은 시장 개방은 물론 시장의 기초를 다지는 데도 신경을 쓰므로 단기간에 가시적인 효과를 보기도 힘들다. 피에르 데프레인 전 차관은 “지금으로서는 이미 발효한 지 10년이 넘은 미국과 멕시코 간의 나프타 외에는 자유무역협정에 대한 평가가 성급할 수 있다”면서 “멕시코는 나프타 이후 경제성장이 있었지만 빈익빈 부익부도 심화됐다”고 진단했다. 그는 “자유무역협정은 경제정책과 사회정책의 발전과 맞물려야 플러스 요인이 될 뿐”이라면서 “자유무역협정이 결코 기적을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고 강조했다. <1부 끝> 브뤼셀/송창석 기자 number3@hani.co.kr
미국식…유럽식…남남식…
자유무역협정 방식 천차만별 자유무역협정(FTA)은 애초 당사국간 제조업 위주의 관세 인하와 철폐를 뜻했다. 여기에 더해 비회원국에 대해 공동관세를 물리면 ‘관세동맹’, 자본·노동 등 생산요소의 회원국간 자유로운 이동까지 아우르면 ‘공동시장’이라고 규정했다. 하지만 이제는 투자·서비스·지적재산권 등 생산요소의 이동이 자유무역협정에 포함되는 등 ‘포괄적 자유무역협정’이 체결되면서 이러한 구분은 큰 의미가 없어졌다. 유럽연합도 높은 수준의 자유무역협정으로 볼 수 있다. 때문에 세계무역기구는 자유무역협정 대신 지역무역협정(RTA)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유럽연합은 최근 칠레·멕시코 등과 맺은 포괄적 자유무역협정을 공식적으로는 ‘연합협정’(Association Agreement)로 부른다. 세계은행은 2005년 연례보고서 ‘글로벌 경제전망’에서 자유무역협정을 체결 주체별로 △미국이 주도하는 미국식 △유럽연합이 맺고 있는 유럽식 △개발도상국간에 체결하는 남-남식으로 구분했다. 보고서를 보면 남-남식은 상품 교역에 치중하지만, 미국과 유럽식은 서비스·투자·지재권 분야에도 많은 관심을 갖는다. 남-남식은 회원국간 인력의 자유로운 이동을 요구하지만, 미국식과 유럽식은 쿼터 등을 통해 엄격히 제한하려 한다. 미국식과 유럽식에도 차이가 있다. 서비스시장의 경우 유럽식은 협정문에 열거한 품목만 개방을 허용하고 있다. 미국식은 모두 허용하는 것이 원칙이되 일부 품목의 예외를 인정하는 수준이다. 투자자한테 현지인 고용과 현지 부품 사용 등의 의무를 지우는 것을 미국식은 금지하지만, 유럽식은 관련 규정이 없다. 미국식은 유럽식과 달리 투자자가 투자 유치국 정부를 제소할 수 있다. 반면에 미국식에는 지속가능한 발전, 시민사회, 인권, 협력기금같은 조항이나 개념이 없다. 자유무역협정은 정해진 모델이 없다. 미국식 모델 뿐 아니라 다른 모델의 장점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송창석 기자 number3@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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