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31일 오후 2시 네이버 실시간 인기검색어인 ‘블랙베리’ 검색결과. 언론사들이 페이지뷰를 높이기 위해 같은 기사를 여러번 재전송하거나 기사내용과 상관없는 다른 인기검색어를 기사 가운데 삽입하는 일이 훨씬 줄었다.
네이버, ‘언론사 검색교란 모니터한다’에 검색어장사 확 사라져
“포털 근본적 해결없이 언론사 길들이려 해” 일부 불만도
“포털 근본적 해결없이 언론사 길들이려 해” 일부 불만도
‘언론의 본령을 저버린 함량미달의 기사로, 낚시질 이제 그만해주세요. 언론사 여러분~’
포털사이트 네이버가 언론사들의 ‘검색결과 교란’에 대해, ‘경고’ 겸 ‘협조요청’을 했다. 사회의 공기(公器)를 자임하며, 비판의 소리를 내오던 언론사에 대해 “상거래 질서를 어지럽히지 말아주세요”라는 ‘용감한 부탁’을 포털이 하고 나선 것이다.
“검색 어뷰징 모니터링을 실시하겠다.-네이버”
지난해 12월 네이버가 뉴스검색 아웃링크제를 도입한 이후 언론사들이 포털을 통한 유입자를 늘리기 위해 앞다투어 생산하고 전송한 ‘검색어 기사’가 심각한 ‘검색 어뷰징’(검색 결과의 왜곡)결과를 낳자, 네이버가 ‘대책’을 발표한 것이다. 네이버 뉴스팀은 28일 언론사에 메일을 보내 그간 네이버가 조사한 검색 어뷰징 유형을 공개하며, ‘대책’이 필요함을 설명했다. 검색 시장 점유율이 70%를 넘는 네이버로선 언론사의 ‘검색결과 교란’ 기사들로 인해 킬러 콘텐츠인 ‘검색’의 신뢰도에 문제가 생긴다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문제다. 이번 모니터링 결과의 공개도 사실상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네이버의 1차경고로 보인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언론사들의 ‘검색어 장사’ 기사는 그동안 <미디어오늘>과 <기자협회보>를 통해 강도높은 비판을 받은 바 있다. 〈한겨레〉도 “언론사들 ‘꼼수기사’에 누리꾼들 ‘낚시하지마’”https://www.hani.co.kr/arti/society/media/189131.html, “‘오보마저 베껴’…언론사 검색어장사 ‘도를 넘었다’” https://www.hani.co.kr/arti/society/media/199334.html 기사를 통해 언론사들의 ‘검색 장사’를 비판해 왔다.
<한겨레>는 클릭 수를 높이기 위해, 종합일간지가 공익성과 뉴스로서의 가치가 거의없는 단순 검색어 소개 기사를 만들어내는 것은 검색결과를 왜곡할 뿐만 아니라, 장기적으로 언론에 대한 시민의 신뢰도를 훼손하고 ‘공익적 가치’를 보도기준으로 삼는 기자로서의 직업적 긍지를 허물어뜨리는 중대한 문제라고 보기 때문이다.
네이버 “한 언론사 기사 2개 쓴 후 기계적으로 재전송” 검색결과 교란 실태 보고
네이버 미디어서비스팀이 작성한 이번 보고서는 언론사의 실명을 공개하지 않았지만, 그간 언론사들이 검색어 장사를 위해 쓴 ‘꼼수’들이 대부분 열거되어 있다. 보고서는 ‘인기 키워드 어뷰징’이란 말을 “자사 기사가 최상단에 보일 수 있도록 비슷한 유형의 기사를 하루 2건 이상 보내거나 내용과 무관한 인기검색어를 넣어서 기사를 전송하는 경우”라고 못박았다. 사실상 그간 지적되어 왔던, 검색어 소개 기사들이 대부분 여기에 해당된다.
미디어오늘은 “이번에 지적된 언론사는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국일보> <매일경제> <한국경제> 인터넷판과 <데일리서프라이즈> <오마이뉴스> <스타뉴스> 등인 것으로 알려졌다”고 문제의 언론사를 지목했다.
네이버 보고서에 따르면 이러한 어뷰징의 유형은 크게 3가지로 나뉜다. △단순 재전송 △인기 검색어 브리핑형 △기사수 늘리기형이 그것이다.
단순 재전송은 지속적으로 동일한 기사를 재전송해 자사의 기사를 상단에 노출시키기 위한 꼼수다. 네이버는 한 언론사의 경우 기사 2개를 써넣고 기계적으로 재전송하는 것으로 의심된다고 판단했다.
인기 검색어 브리핑형은 ‘검색어 동향’(데일리서프라이즈), ‘만화경’(조선닷컴) 등의 고정코너를 만들어 인기 검색어를 단순 소개하거나 인기검색어를 한 기사에 몰아넣어 기사 본문과 무관한 검색어를 삽입하는 경우를 말한다.
기사수 늘리기형은 인기 키워드와 관련해 주제를 바꿔가며 기사를 쓰는 것을 말한다. 이 경우 기사 내용은 차이가 없고, 제목에서만 약간의 변화가 보인다.
“이름달기 낯부끄러워 기자 이름도 없고, 자사 사이트에서도 주요하게 편집안하면서…”
이런 어뷰징 기사의 경우 대부분 기자명이 없고 온라인뉴스부, 디지털뉴스팀 등의 부서 이름을 달고 출고가 된다. 보고서는 “자사 사이트에서도 주요 기사로 편집 안하는 기사가 있다”고 꼬집었다. 기사실명제에 따라 거의 대부분의 기사가 작성 기자의 이름과 이메일을 표기하게 되어 있지만, 이들 ‘검색어 장사’ 기사들의 경우는 대개 바이라인(작성 기자의 이름을 적는 기사끄트머리)에 기자의 이름이 없다. 대신 부서의 이름을 달고 있다. 또한 이들 기사는 실시간 인기검색어 동향에 맞춰 촌각을 다투며 긴급하게 만들어지만, 정작 기사를 만든 언론사 사이트에서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이에 대해 한 일간신문의 기자는 “이들 ‘검색어 장사’ 기사가 포털로 보내 검색 유발을 하기 위한 게 주 목적이고 뉴스가치가 거의 없기 때문”이라며 “언론사의 이름을 달고 주요한 ‘기사’로 취급하기에는 ‘낯부끄러운’ 기사라는 것도 알기 때문에 자사 사이트에서는 숨겨 놓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네이버 보고서는 ‘20~30분에 하나씩 주기적으로 재전송하는 매체가 4개였으며, 한 매체는 1시간에 10회 이상 기사를 보낸 곳도 있다’고 밝혔다. 어떤 매체는 인기 키워드를 계속 조금씩 보강하면서 재전송한 곳도 있었다. 보고서는 일간지 3곳, 경제지 2곳, 인터넷신문 3곳, 연예전문지 1곳이 특히 어뷰징이 심하다고 지적했다.
“지속될 때는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고 결과 공개하겠다”
네이버는 이러한 어뷰징 기사로 인해 “동일하고 유사한 기사가 검색결과 상위에 랭크돼 다른 좋은 기사들이 묻히는 역효과를 낳고 있다”며 “기사의 DB방식을 개선하고, 전반적인 네이버 뉴스 서비스의 검색 개편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밝혔다. 그리고 또한, 기사 어뷰징을 방지하기 위한 3가지 가이드 라인을 제시했다.
네이버 보고서는 “어뷰징 방지 가이드를 지키지 않는 사례에 대한 모니터링을 실시해 그 결과를 공개하겠다”며 끝을 맺었다. 사실상 언론의 ‘꼼수’에 대해 포털이 감시를 하겠다는 것인데, 포털을 견제하고 감시해야 할 책무가 있는 언론사의 입장으로선 단단히 ‘창피’를 당한 셈이다.
이름을 밝히지 말아달라고 한 네이버의 관계자는 “뉴스 검색에 있어서 중요한 속보성을 악용해서 속보의 가치를 훼손하는 경우가 많아 개선하기 위한 작업으로 이번 보고서를 작성하게 됐다”며 “현재 단순 시간순 나열 검색결과를 보완해 속보성과 정확성을 모두 확보할 수 있는 시스템을 준비중에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모니터링을 해서 해당 언론사의 실명을 공개할 것인지에 대해선 아직 결정된 바 없다”고 덧붙였다.
“포털 근본적 해결없이 언론사 길들이려 해” 일부 불만도
이번 네이버의 ‘가이드라인’ 제시에 대해 언론사들의 시각은 곱지 않다. “검색어 장사 기사를 만들게 한 원인을 제공하면서 적반하장격으로 감시를 하겠다니 말이 되느냐”는 불만이다. 최진순 한경미디어연구소 기자는 “인터넷 미디어 문제의 근원이 되고 있는 댓글 시스템이나, 인기 검색어에 대해서 개선방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포털이 아웃링크를 적용할 때부터 충분히 예견되었던 문제에 대해 구조적인 해결을 하려 하기보다 단순히 언론사들을 포털 입맛에 맞게 길들이려고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최 기자는 “최근 검색어 기사를 통한 언론사의 행태를 보면 포털뉴스를 뛰어넘는 수준있는 온라인 저널리즘을 만드려는 의식이 부족했다”고 언론사의 행태에 대해서도 꼬집었다.
한편 29일 오전 한 중앙일간지의 인터넷 뉴스룸에선 네이버의 가이드라인을 두고 데스크와 일선 기자사이에 언쟁이 벌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네이버의 가이드라인을 지키며 어떻게 기사를 작성하느냐”는 게 언쟁의 내용이다. 이를 두고 한 일간지의 기자는 “어쩌다가 언론사가 네이버의 감시를 받는 상황이 됐는지 모르겠다”며 혀를 찼다.
네이버의 가이드라인이 발표된 후 29일 언론사들의 검색어 기사 생산에는 약간의 변화가 있었다. 〈조선일보〉의 경우 ‘만화경’이란 고정꼭지를 쓰지 않고, 검색어 하나당 기사 하나를 작성하여 포털에 전송하고 있다. 〈중앙일보〉, 〈매일경제〉, 〈한국일보〉등도 눈에 띄게 검색어 기사 전송의 횟수가 줄어들었다. 예전 같으면 인기 검색어를 클릭했을 때 수 개의 기사가 한꺼번에 노출 됐지만, 한 언론사당 하나의 기사만이 보이고 있다.
이에 대해 한 블로거는 “미디어오늘을 비롯해 여타 검색어 맞춤 글에 대한 비판에도 미동도 하지 않던 이들이 네이버의 한마디 경고에 바로 정자세로 앉아 검색어 맞춤형 글을 쏟아내고 있지 않다”며 “훌륭한 자세이긴 하지만 씁쓸하다”고 꼬집었다.
〈한겨레〉온라인뉴스팀 이정국 기자 jg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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