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쪽 개성공단에서 북쪽 노동자들이 지난달 29일 아침 6시30분께 통근버스에서 내려 사업장으로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개성공단의 출근 모습은 직장인들로 빽빽한 남쪽의 공단 풍경과 엇비슷했다. 일부 젊은 여성 노동자들은 서로 팔짱을 낀 채 이야기를 나누며 걷고 있다. 개성/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개성공단 3박4일 첫 숙박취재]①그들의 24시
개성공단은 한반도의 정세를 재는 온도계다. 지난해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으로 고사 직전까지 몰렸으나, 올해는 2·13 합의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바람을 타고 힘찬 기지개를 펴고 있다.
특히, 자유무역협정 협상은 개성공단을 세계적인 관심지역으로 만들었다. 두 나라는 협정에서 조건부이긴 하나 개성산 제품의 미국 수출 가능성을 열어놨다. 개성공단이 남북경협을 넘어 한반도 및 동북아 평화의 진원지가 될지는 지금부터 하기 나름이다.
<한겨레>는 중대한 실험장으로 떠오른 개성공단을 국내외 언론 사상 처음으로 지난달 27일부터 30일까지 3박4일 동안 ‘숙박 취재’를 했다. 개성공단 남북 노동자들의 열정과 희망, 애환과 보람, 그리고 상생의 현장을 네 차례에 걸쳐 싣는다.
“어서와요” 남 법인장이 공단정문서 북 노동자 반겨
본드칠 서툰 기자에 “처음엔 야단 좀 맞아야지요” 3월29일 아침 6시45분=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시각, 개성공단의 새벽을 깨우는 ‘출근전쟁’이 시작됐다. 시범단지와 본단지를 가르는 네거리의 버스정류장에서 ‘개성공업지구’라는 표지판을 단 버스 서너 대가 멈춰 서더니 북쪽 노동자들을 쏟아냈다. 버스 한 대에 대략 노동자 80~100명이 타고 있었다. 가동된 지 2년여 만에 언론에 처음 공개되는 개성공단의 출근은 직장인들로 빽빽한 서울 지하철 2호선의 아침 풍경과 비슷했다. 80~100명 탄 ‘콩나물 버스’…화사한 ‘유채색’ 풍경 20~40대 여성이 대부분인 북쪽 노동자들의 옷차림은 지난해 10월 방문했던 평양 사람들에 견줘 손색이 없었다. 일부는 남쪽에서 유행하는 긴코트를 입고 있었다. 황토색, 분홍색, 바둑판 등 색깔과 무늬도 다양했다. 화장을 한 얼굴과 팔짱을 끼고 걸으며 웃는 표정이 봄꽃처럼 화사했다. 거리와 건물도 더없이 깔끔했다. 90년대 초 서울 구로공단의 모습이 무채색이었다면, 개성공단은 유채색이었다. 시범단지에 입주한 공장 열다섯 곳을 비롯해, 본단지 1차 입주업체 7곳, 건설 현장 등에 근무하고 있는 북쪽 노동자는 모두 1만2천명 정도다. 이들의 90%는 버스로 출퇴근한다. 조업 시간인 아침 7시10분이 가까워 오면서 인도를 넘어 차도까지 ‘점령한’ 200~300여 노동자들이 개성마이크로·제씨콤·용인전자·신원·문창기업 등 입주업체 속으로 미끄러지듯 들어갔다. 종종걸음이지만 가뿐해 보였다. 신원에벤에셀(신원) 개성공장 정문에서는 황우승(46) 법인장을 포함해 남쪽 직원 4명이 북쪽 노동자들에게 “어서 와요!” “반갑습니다!”라며 출근 인사를 건넸다. 그동안 한 번도 빠짐없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새벽 인사를 나눴다고 한다. 황우승 법인장은 “북쪽 책임자가 끝까지 정문을 지켜줘서 고맙다는 말을 할 때가 가장 기뻤다”고 말했다. 남북 차이를 넘어 ‘진정성’이 통한 것이다. 내년 상반기엔 7만~10만명 출근전쟁…새벽4시30분에 잠 깨야 그러나 1단계 잔여 터 53만평 분양이 코앞에 다가오면서, 출퇴근 문제가 개성공단의 새로운 고민거리로 떠오르고 있다. ‘1단계 프로젝트’가 마무리되는 내년 상반기에는 지금보다 몇 배나 많은 7만~10만명이 출퇴근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현재 다니는 버스 49대만으로는, 아침 7시10분과 8시10분 조업시간에 맞춰 1만여명이 넘는 노동자들을 나르는 것은 무리다. 특히, 7시10분 조기 조업을 시작하는 업체 여성 노동자들은 집에서 아침끼니를 준비해 놓고 개성시내 버스 정류장까지 20여분 정도 걸어나와, 다시 버스를 20~30여분 타고 공단까지 오려면 새벽 4시30분에서 5시 사이에 일어나야 한다고 한다.
개성공업지구 관리위원회(관리위원회)는 출퇴근 문제 해결책 마련을 서두르고 있다. 일단, 공단 안에 숙소를 지어 개성시내 바깥의 2만~4만명은 걸어서 출퇴근하도록 할 계획이다. 또 남북 당국 합의로 철도가 개통되면 개성역~판문역까지 열차로 출퇴근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버스를 더 구입하거나 자전거 이용을 늘리는 대책도 입주업체들과 협의하고 있다.
3월28일 오전 10시=관리위원회가 부산스러워졌다.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 일행이 1~2분 뒤 도착할 것이라는 무전 연락이 온 것이다. 일행들과 마주치지 않으려 기자의 체험 노동이 예정된 구두 생산 업체 ‘평화제화’로 서둘러 차를 몰았다.
구두 속창에 ‘풀’(본드)을 칠하는 1층 ‘저부투입조’에는 7명의 북쪽 노동자들이 한창 작업에 열중하고 있었다.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소매에 토시를 덧끼웠다. 김경순(45) 조장을 비롯해 조원들 모두 지난해 10월에 공장이 가동되면서 새로 들어온 사람들이란다.
체험노동 기자에 말문 트이자 신나게 ‘신참 교육’
기자도, 북쪽 노동자들도 말을 걸 구실을 찾고자 궁리하는 사이,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옆자리 북쪽 노동자들의 작업 모습을 슬쩍 곁눈질한 뒤, 솔에 풀을 듬뿍 묻혔다. 흘러내리는 접착제를 감당하지 못하고 당황해하자, 오른쪽에 앉아 있던 김경순 조장이 그제야 웃으며 말문을 열었다. “쉬워 보이지만 어려워요. 처음엔 야단 좀 맞아야지요.” 김 조장은 솔 잡는 법, 솔에 묻히는 접착제의 양, 접착제를 바닥에 칠하는 방법 등을 ‘신참’에게 자세하게 설명했다. 선생이 된 듯 그는 신나는 표정이었다.
30분 정도 지나자 솔이 뻑뻑했다. 속도가 느려지자 왼쪽의 북쪽 노동자가 눈치를 채고 새 솔로 바꿔줬다. “칫솔이 나빠서 일을 못한 것 같다”며 너스레를 떨자 웃음보를 터뜨렸다. “남자 친구가 있느냐”는 질문에 “벌써 결혼을 하냐”며 놀라는 표정을 짓던 조정희(19), 김은경(19)씨의 얼굴에도 처음으로 보조개가 피었다.
아들 자랑도 재잘재잘…좀 진중한 질문엔 ‘모범답안’만
분위기가 무르익자 김경순 조장은 아들 자랑을 늘어놓았다. 올해 스무살 큰아들은 군대에 복무하고 있고, 18살 둘째는 평산 광산대학교에 다니는데 공부를 잘한단다. 아들들도 김 조장이 개성공단에 근무한다는 것을 알고 있고, ‘좋은 일 한다’고 격려하고 있다고 했다. 아주 어렵사리 “지금 월급으로 사는 데 불편하거나 지장은 없느냐”는 질문을 던졌다. 김 조장은 “돈보다도 남북이 함께 일하는 데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한다. ‘모범 답안’이기는 하지만 내심 기대했던 ‘돌발 답변’은 없었다. 낮 12시 점심 시간을 알리는 벨 소리가 울리자, 북쪽 노동자들은 첫 대면의 부담을 털어버린 듯 “기자 선생을 우리 명예 조원으로 삼아야겠다”, “자주 오라”며 손을 꼭 잡았다.
3월28일 낮 열두시 =평화제화에서 남쪽 직원들과 함께 파김치, 김치 따위의 마른 반찬 위주로 점심을 먹고, 1층 북쪽 노동자 식당으로 살짝 내려가 봤다. 반찬 가짓수는 많지 않았지만 도시락 가득 쌀밥이었다. 회사에서는 이날 동태국을 제공했다.
도시락 가득 쌀밥…회사서는 국 제공
밥은 노동자들이 각자 준비하고, 입주업체들은 국을 내놓는 게 개성공단의 관례로 굳어졌다. 대개 만두국·동태국·미역국 등이 나온다. 처음엔 쌀밥을 싸 오는 노동자들이 많지 않아 남쪽 직원들이 식당에 오는 것을 꺼렸다. 그러나 지금은 몇 달만 지나면 스스럼없이 도시락을 보여준다고 입주업체 남쪽 직원들은 전했다.
3월28일 오후 5시 신원 노동자들이 퇴근을 서둘렀다. 공장 한 구석에는 하루를 마치고 그날 생산목표와 달성치를 점검하는 ‘총화’가 한창이었다. 북쪽 노동자들끼리 하루에 2~3분이라도 점검하는 게 몸에 배어 있다고 했다. 평상복으로 갈아 입은 노동자들이 건물 들머리에 마련된 단말기에 인사카드를 대자, 사진과 인적 사항이 바로 모니터에 떴다. 연장 근무를 하는 노동자들은 오후 6시에 식당에 모여 라면과 밥으로 간단히 요기를 했다.
작업 끝나면 그들끼리 점검 ‘총화’…절반이 연장 근무
저녁 7시, 땅거미가 내리고 있는 개성공단의 야경이 다이아몬드처럼 빛났다. 거의 모든 공장이 불을 환하게 밝히고 있고, 3월6일 점화된 가로등 불빛이 은은하게 그 주변을 감쌌다. 29일 연장 근무자는 6천여명으로 북쪽 노동자의 거의 절반에 이르렀다.
개성공단/글 이용인, 사진 김봉규 기자 yy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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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드칠 서툰 기자에 “처음엔 야단 좀 맞아야지요” 3월29일 아침 6시45분=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시각, 개성공단의 새벽을 깨우는 ‘출근전쟁’이 시작됐다. 시범단지와 본단지를 가르는 네거리의 버스정류장에서 ‘개성공업지구’라는 표지판을 단 버스 서너 대가 멈춰 서더니 북쪽 노동자들을 쏟아냈다. 버스 한 대에 대략 노동자 80~100명이 타고 있었다. 가동된 지 2년여 만에 언론에 처음 공개되는 개성공단의 출근은 직장인들로 빽빽한 서울 지하철 2호선의 아침 풍경과 비슷했다. 80~100명 탄 ‘콩나물 버스’…화사한 ‘유채색’ 풍경 20~40대 여성이 대부분인 북쪽 노동자들의 옷차림은 지난해 10월 방문했던 평양 사람들에 견줘 손색이 없었다. 일부는 남쪽에서 유행하는 긴코트를 입고 있었다. 황토색, 분홍색, 바둑판 등 색깔과 무늬도 다양했다. 화장을 한 얼굴과 팔짱을 끼고 걸으며 웃는 표정이 봄꽃처럼 화사했다. 거리와 건물도 더없이 깔끔했다. 90년대 초 서울 구로공단의 모습이 무채색이었다면, 개성공단은 유채색이었다. 시범단지에 입주한 공장 열다섯 곳을 비롯해, 본단지 1차 입주업체 7곳, 건설 현장 등에 근무하고 있는 북쪽 노동자는 모두 1만2천명 정도다. 이들의 90%는 버스로 출퇴근한다. 조업 시간인 아침 7시10분이 가까워 오면서 인도를 넘어 차도까지 ‘점령한’ 200~300여 노동자들이 개성마이크로·제씨콤·용인전자·신원·문창기업 등 입주업체 속으로 미끄러지듯 들어갔다. 종종걸음이지만 가뿐해 보였다. 신원에벤에셀(신원) 개성공장 정문에서는 황우승(46) 법인장을 포함해 남쪽 직원 4명이 북쪽 노동자들에게 “어서 와요!” “반갑습니다!”라며 출근 인사를 건넸다. 그동안 한 번도 빠짐없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새벽 인사를 나눴다고 한다. 황우승 법인장은 “북쪽 책임자가 끝까지 정문을 지켜줘서 고맙다는 말을 할 때가 가장 기뻤다”고 말했다. 남북 차이를 넘어 ‘진정성’이 통한 것이다. 내년 상반기엔 7만~10만명 출근전쟁…새벽4시30분에 잠 깨야 그러나 1단계 잔여 터 53만평 분양이 코앞에 다가오면서, 출퇴근 문제가 개성공단의 새로운 고민거리로 떠오르고 있다. ‘1단계 프로젝트’가 마무리되는 내년 상반기에는 지금보다 몇 배나 많은 7만~10만명이 출퇴근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현재 다니는 버스 49대만으로는, 아침 7시10분과 8시10분 조업시간에 맞춰 1만여명이 넘는 노동자들을 나르는 것은 무리다. 특히, 7시10분 조기 조업을 시작하는 업체 여성 노동자들은 집에서 아침끼니를 준비해 놓고 개성시내 버스 정류장까지 20여분 정도 걸어나와, 다시 버스를 20~30여분 타고 공단까지 오려면 새벽 4시30분에서 5시 사이에 일어나야 한다고 한다.
지난달 29일 오후 북한 개성공업지구 정·배수장 건설현장에서 북쪽 노동자들이 비를 맞으며 콘크리트 타설 공사를 하고 있다. 개성/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북쪽 근로자 연령대별 분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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