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섭 기자의 뒤집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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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 부가서비스 가운데 ‘발신자 전화번호 표시’(CID)라는 게 있다. 전화 건 쪽(발신자)의 전화번호를 받는 쪽(수신자) 전화기 화면에 띄워주는 것이다. 이 서비스 덕에 수신자도 통화 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됐다. 전화기 액정화면에 뜬 발신자 전화번호를 보고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전화만 골라 받을 수 있다.
전화번호 대신 ‘전화왔습니다. 발신번호 표시제한’이란 문구가 뜰 때도 있다. 발신자가 전화번호 공개를 원하지 않아 표시할 수 없다는 뜻이다. 발신자 전화번호 표시와 숨김 기능을 동시에 제공해, ‘익명’으로 전화를 걸 권리도 보장하는 것이다. 전화번호를 숨기려면 통신업체 고객센터로 신청하면 된다. 자신의 전화번호를 숨기면 걸려온 전화의 발신자 전화번호도 뜨지 않는다.
이동통신 업체들은 필요할 때만 전화번호를 숨길 수 있는 기능도 제공한다. 전화를 걸 때 ‘*23#’를 먼저 입력한 뒤 상대방 전화번호를 누르면, 수신자 전화기에 발신자 전화번호가 표시되지 않는다. 문자메시지를 보낼 때도 ‘회신번호’를 문자나 특정 숫자로 바꾸는 방법으로 발신자 전화번호를 숨길 수 있다.
1990년대 후반 이동통신 업체들이 발신자 전화번호 표시 서비스를 도입할 때는, 발신자가 자신의 전화번호를 숨길 수 있게 하는 게 중요한 권리로 다뤄졌다. 시민단체 쪽에서는 공개를 원하는 가입자 것만 표시되게 하자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반면 통신업체들은 펄쩍 뛰었다. 결국 당시 정보통신부가 통신업체 편을 들어, 모든 가입자의 전화번호를 공개하되 원하지 않는 사람 것은 표시되지 않게 하는 형태로 발신자 전화번호 표시 서비스가 도입됐다.
최근 들어 전화 발신자가 자신의 전화번호를 숨기는 행위를 이상하게 보는 분위기가 팽배해지고 있다. 전화를 나쁜 목적으로 이용하려는 행위로 매도되고 있다. 떳떳하면 왜 전화번호를 숨기냐는 것이다. 뭔가 켕기는 짓을 하려는 게 아니면 전화번호를 숨길 이유가 없단다. 얼핏 들으면 그럴 듯하다. 실제로 발신자 전화번호 숨김 기능을 이용해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효용성도 있다. 나는 ‘발신자 전화번호 표시제한’이란 문구가 뜬 전화는 꼭 받는다. 그동안의 경험에 비춰볼 때, 고위 공직자이거나 제보 전화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고위 공직자들은 전화번호를 ‘흘리지’ 않으려고 발신자 전화번호 숨김 기능을 많이 이용한다. 케이티(KT)는 업무용 전화 가입자에게는 발신자 전화번호 표시 서비스 이용료를 비싸게 받고 있다. 콜센터 컴퓨터나 전화기에 뜬 발신자 전화번호를 데이터베이스화해 사업에 활용하는 이점이 있다는 이유에서다. “휴대전화로 술집에 전화를 걸어 예약을 한 적이 있다. 그 뒤로 그 술집에서 가끔 ‘잘 모실 테니 들러 달라’는 문자메시지가 온다. 술집 손님 명단에 내 전화번호가 들어 있다는 것 아니냐. 솔직히 찝찝하다.” 한 중앙부처 팀장 말이다.
*23#를 입력한 뒤 전화번호를 누르면 이런 상황에 처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물론 자신을 반드시 숨겨야 할 경우가 아니면 이 기능을 쓰지 않는 게 좋다. 상대가 오해를 하거나 아예 전화를 받지 않을 수도 있다. jskim@hani.co.kr
*23#를 입력한 뒤 전화번호를 누르면 이런 상황에 처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물론 자신을 반드시 숨겨야 할 경우가 아니면 이 기능을 쓰지 않는 게 좋다. 상대가 오해를 하거나 아예 전화를 받지 않을 수도 있다. js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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