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부산 영도구 한진중공업 조선소에서 한 사내하청 노동자가 작업을 하고 있다.
위기의 조선산업 (상)
상선 15% 보유 그리스 재정난에 위기 증폭
수주량 줄어 중소업체 9곳 워크아웃 신청
상선 15% 보유 그리스 재정난에 위기 증폭
수주량 줄어 중소업체 9곳 워크아웃 신청
세계 최대조선소에까지 ‘불황의 그늘’이 드리우기 시작했다. 세계 조선경기 침체로 지난해부터 중소 조선소와 조선기자재업체 등이 휘청거리더니 올 들어선 대형 조선소에까지 위기 징후가 뚜렷하다. 위기에 놓인 한국 조선업 현장을 살펴보고 위기 극복 방안을 두 차례에 걸쳐 싣는다.
“고통이 한국 조선소들을 기다리고 있다. 2012년까지 고용감소와 재정난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지난 연말 미국 경제 일간 <월스트리트 저널>(WSJ)의 경고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 중소 조선업체들이 줄줄이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에 들어간 데 이어, 올 들어선 중·대형 업체들까지 구조조정 압박에 놓였다.
이런 위기가 미칠 파장은 만만치 않다. 한국은 세계시장 점유율 1위의 조선강국이다. 세계 10위권 조선업체 가운데 7곳이 한국업체다. 국내에선 2008~2009년 수출 1위 품목을 차지할 만큼 ‘효자 산업’이다. 중대형 조선업체에 고용된 인원만 13만여명이 넘는다. 한국 조선업의 향방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이유다.
위기가 닥친 표면적인 이유는 세계경기 침체다. 그러나 국내 조선업계가 위기를 자초한 측면도 있다. 호-불황이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조선시장의 특성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국내 업계는 무분별하게 설비확장 경쟁을 해왔다. 대우조선해양의 한 임원은 “호황기 땐 도크만 새로 판다고 해도 일감이 저절로 몰려들었다”며 “당시 생산설비를 대대적으로 증설하고 잇따라 선박건조에 뛰어든 중소 조선소들이 최근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21세기조선 등 9곳이 워크아웃을 신청했고, 이 가운데 광성조선 등 3곳은 워크아웃이 중단돼 임금을 몇 달째 지불하지 못할 정도로 고사 직전에 이르렀다. 지식경제부 관계자는 “신규수주가 거의 없는데다, 중소 조선소들은 중국과 가격경쟁이 안 돼 위기를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건조능력 확충을 위한 몸집 불리기는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 등 이른바 ‘빅3’도 마찬가지였다. 기술교육 등 인력의 숙련도를 높이기보다는 고용조정이 용이한 사내하청인력만 기하급수적으로 늘렸고, 선박 대형화 추세에 맞춰 대형 도크 또는 새로운 조선 부지 확보에 경쟁적으로 나섰다. 한 대형 조선업체의 간부는 “영업이익률이 10%가 넘을 때 기술개발 투자에는 상대적으로 소홀했다”고 꼬집었다. 대형 조선소들의 지난해 수주량은 전년보다 80%나 줄었고, 자금흐름이 여의치 않아 7~8년 만에 처음으로 회사채도 발행했다. 여전히 2~3년치 일감이 남아 있다고는 해도, 올해마저 수주실적이 부진하면 내년 후반기쯤부턴 일감이 사라지기 시작한다. 이런 우려 때문에 이미 몇몇 대형 조선업체들은 저가수주에 나서는 등 ‘출혈경쟁’ 양상도 보인다.
선박 수주환경은 올해도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지난 연말 ‘반짝’ 회복세인 듯했다가 1월에는 전세계서 발주된 선박이 고작 34척(62만4285CGT)밖에 되지 않을 정도로 다시 움츠러들었다. 한국조선협회 유병세 경영지원본부장은 “지난해보다 다소 발주가 늘더라도 올해도 조선업계 어려움은 계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전세계 상선의 15%가량을 보유한 그리스가 최근 재정위기를 맞으면서 전망은 더 어두워지고 있다. 지난해 세계 3위 해운회사인 프랑스 시엠에이-시지엠(CMA-CGM)이 파산위기에 몰린 뒤, 이미 국내 조선업계엔 선박 인도와 결제 지연 같은 불똥이 튄 상태다. 대형 조선소 앞바다에는 주인이 찾아가지 않은 배가 여러 척 둥둥 떠 있고, 한진중공업은 넉달이 지나도록 가져가지 않은 선박을 제3자에게 팔아버리기까지 했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내년 조선시황이 회복될 때까지 저가수주를 하지 않고 기다리는 쪽이 ‘위너’(winner)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지만, 이제 마냥 버티기만 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정부는 11일 “조선사 위기 현황을 파악중”이라며 “조만간 종합대책을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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