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TV시장 국가별 점유율 추이
[동아시아 기업의 진화]
5. 한국: 디스카운트에서 프리미엄으로
5. 한국: 디스카운트에서 프리미엄으로
TV·자동차·반도체·조선 등
금융위기서 약진 두드러져
“IMF 사태 등서 내성 키워”
“수출 포트폴리오도 안정적” 최근 일본의 자동차업체 도요타가 각국의 딜러들에게 자사 제품인 캠리가 현대 자동차 쏘나타보다 성능이 뛰어나다는 내용의 설명자료를 일제히 배포해 눈길을 끌었다. 현대차 제품만을 콕 집어 비교대상으로 삼은 것은 그만큼 현대차를 위협적인 경쟁자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방증이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계기로 국내 대표기업들의 약진이 거세다. 주력업종인 자동차와 반도체, 조선, 철강 등은 이미 사실상 ‘글로벌 챔피언’ 자리에 오른 상태다. 위기의 여파로 원-달러 환율이 크게 상승한 덕을 본 것도 사실이지만, 무엇보다 국내 업체들의 품질 경쟁력이 예전보다 한단계 업그레이드된 영향이 크다는 지적이 많다. 국내 기업들 앞에 으레 따라붙던 ‘코리아 디스카운트’란 수식어가 이제 ‘프리미엄’으로 뒤바뀐 것이다. 실제로 대표적인 내구소비재라 할 수 있는 티브이(TV)와 자동차시장에서 국내 업체들이 거둔 성적표는 눈부시다. 1일 시장조사기관인 디스플레이 서치 자료를 보면, 올해 1분기 세계 티브이 시장에서 삼성전자와 엘지전자는 각각 점유율 18.2%, 16.5%를 차지해 나란히 1,2위에 올랐다. 두 업체를 합친 점유율(34.7%)은 1년 새 1.6%포인트나 늘어났다. 특히 엘지전자는 핵심품목인 엘시디(LCD) 티브이 시장에서 일본의 소니를 앞지르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자동차 시장도 마찬가지다. 이른바 ‘빅3’로 꼽히던 미국의 지엠(GM), 포드, 크라이슬러가 심각한 경영난을 겪고 최고의 품질을 자랑하던 일본의 도요타가 휘청이는 사이, 국내 대표주자인 현대·기아차는 ‘톱 클래스’ 브랜드로 자리매김하는 데 성공했다. 지난 2008년 1분기 중 현대차의 미국시장 점유율은 2.7%였지만, 올해 1분기엔 4.4%로 2년만에 1.7%포인트나 뛰어올랐다. 이처럼 한껏 드높아진 국내 대표기업의 위상은 기술력을 앞세운 일본과 가격경쟁력을 앞세운 중국에 밀려 고스란히‘샌드위치’ 신세로 전락하고 말 것이라던 국내외 전문가들의 애초 예상과는 크게 다른 모습이다. 이와 관련해 ‘불리한 여건’을 오히려 성공적으로 극복한 비밀을 되돌아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안수웅 엘아이지(LIG)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우리 기업들은 외환위기와 카드사태, 그리고 2005년 이후 지속된 원화 상승이라는 ‘힘든 시기’를 남보다 먼저 겪으면서 위기에서 발빠르게 살아남는 치열한 생존 경쟁력을 키워왔다”며, “특히 90년대 내내 디플레이션에 시달리며 축소지향 경영을 되풀이하던 일본 기업과는 달리, 우리 기업들은 위기 뒤에는 반드시 호황기가 찾아온다는 판단 아래 공격적으로 투자를 늘린 것도 한 배경”이라고 말했다. 안 센터장은 특히 “위기시 엔화 가치가 상승하는 일본과는 달리, 우리의 경우엔 원-달러 환율이 상승하는 경향이 있어 국내경제와 세계경제가 서로 완충작용을 할 수 있다는 점도 우리만의 독특한 배경”이라 덧붙였다. 수출주도형인 우리 경제의 ‘시장 포트폴리오’가 현재 안정적인 구조로 짜여 있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일찌감치 선진시장(북미와 유럽)과 신흥시장으로 골고루 다변화를 이룬 탓에, 선진시장의 회복세가 다소 더디더라도 상대적으로 빠른 회복세를 보이는 신흥시장의 완충작용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박복영 대외경제정책연구원 거시금융실장은 “위기 이후 전세계적으로 지역화(경제블록) 경향이 강해지고 있는데, 우리에겐 가장 빠른 성장세를 보이는 중국 등 거대규모의 신흥시장이 바로 인접해 있다는 확실한 장점이 있다”며, “당분간 세계경제 성장세를 이들 신흥시장이 앞장서 이끌 수밖에 없다는 점도 우리 경제엔 유리한 여건”이라 내다봤다.
김경락 기자 sp9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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