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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환란의 유산’ 시장개방·구조조정에 양극화 시름

등록 2011-01-10 08:31수정 2011-01-10 08:38

자유화의 덫 (※ 이미지를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창간 22돌 기획 대논쟁] 한국사회 미래를 말하다
3부 정책을 말하다-경제
① 덫에 걸린 한국경제-자유화의 덫
김대중-노무현정부 10년간
재벌경영·관치 손질했지만
분배 미흡한채 부작용 양산
비정규직·대외 변동성 키워

한국사회 미래를 말하다
한국사회 미래를 말하다
“미국은 ‘IMF 플러스’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정리해고제 수용, 외환관리법 전면 개정, 적대적 인수·합병 허용 등입니다.”(<김대중 자서전 2>)

외환위기로 절체절명의 순간을 맞고 있던 1997년 12월22일 김기환 대외협력특별대사는 당시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에게 아이엠에프와 맺은 협약에도 담겨 있지 않았던 것들을 요구하는 미국의 분위기를 이렇게 전했다. 김 전 대통령은 국가신인도 회복을 위해 피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노동유연화를 비롯해 외환·자본·금융 자유화와 주요 기간산업 민영화 방침을 발표했다.

이처럼 자칭 ‘진보개혁 정권’은 외환위기를 마치 천형처럼 안고 태어났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 발전’(국민의 정부), ‘성장과 분배의 조화’(참여정부)라는 경제정책 기조를 전면에 내세웠지만, 외세에 의해 강요된 ‘자유화의 덫’은 돌이킬 수 없는 상흔을 남겼다.

■ 급속한 자유화 국민의 정부는 기업·금융·공공·노동 등 이른바 4대부문 구조개혁과 대외개방을 단행했다. 참여정부도 민영화 유보 등 다른 조처들이 있었지만 큰 얼개는 이를 따랐다. 이런 처방은 외환위기의 한 요인이었던 재벌의 문어발식 과잉투자를 일부 해소하는 한편, 투명성 강화와 수익 중시 경영이 자리잡는 데는 기여했다. 관치경제에서 시장경제로 나아가기 위한 기본원리가 정착되는 과정이기도 했다.

그러나 기존의 한국식 성장시스템을 급격하게 해체시킨 반면, 이를 대체할 새로운 시스템을 정립하지 못하면서 성장 잠재력 약화와 대외 변동성 확대, 양극화 심화 등의 문제를 드러냈다. 두 정부는 중소·벤처기업을 육성하고 내수 중심 경제를 이끌려 했으나, 수출·대기업 중심의 기존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특히 양극화 심화는 진보정권의 정체성을 흔든 아킬레스건이었다. 참여정부 시절엔 환율방어와 저금리 정책의 조합으로 수출·내수산업간 격차 심화, 부동산 가격 급등과 같은 부작용이 노출되면서 양극화는 더 심화됐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자료를 보면, 소득 5분위 배율(전국가구 기준)은 1996년 4.79배에서 2006년 6.96배로 10년 새 2.17배 확대됐고, 하위 20%의 소득점유율은 같은 기간 7.9%에서 5.7%로 줄었다.


타워팰리스의 그늘에 판자촌이 자리하고 있어 ‘양극화’를 상징하는 지역으로 손꼽히는 서울 강남구 포이동 266번지에서 한 주민이 김장을 담가 이웃 주민들과 나눠 먹으려고 옮기고 있다.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타워팰리스의 그늘에 판자촌이 자리하고 있어 ‘양극화’를 상징하는 지역으로 손꼽히는 서울 강남구 포이동 266번지에서 한 주민이 김장을 담가 이웃 주민들과 나눠 먹으려고 옮기고 있다.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노동시장 유연화는 근로계층간 양극화의 핵심 기제였다. 정부의 정리해고제 수용과 근로자파견법 도입이 실제 비정규직 증가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지만, 미국식 구조조정이 ‘글로벌 스탠더드’로 받아들여지면서 사회적 분위기가 급변했다. 대기업들은 ‘명퇴’(명예퇴직)를 통해 정규직을 줄이는 대신 비정규직 비중을 늘리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비정규직은 고용노동부 집계 기준으로 2001년 364만명에서 2007년 571만명으로 급증했다. 상시적 구조조정으로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들이 자영업으로 몰려들면서 자영업은 포화상태에 빠졌다.

외환·자본·금융시장 자유화는 소국 개방경제 체제인 한국 경제의 대외 변동성을 크게 확대시켰다. 외국계 펀드가 국내 은행을 인수하고, 외국인들이 자본시장의 큰손으로 등장하면서 금융의 공공성이 약화되고, 우리 경제의 대외 변수에 대한 취약성을 키웠다.

이런 문제들로 두 정부의 ‘진보성’에 의문이 제기되기도 했다. 김기원 방송대 교수(경제학)는 “두 정부의 경제정책에는 중상주의적 개발독재, 구자유주의, 복지주의, 시장만능주의가 혼재돼 있다”며 “이는 점진적으로 진행돼온 서구의 발전 단계를 압축적으로 밟은데다 경제위기와 경기침체를 타개하는 데 급급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두 정권은 지향성 면에선 개혁·진보정권”이라면서도 “정책 실행에서는 개혁이 불철저하고 진보성도 강하게 드러내지 못했으며, 시장만능주의 정책이 취해지기도 했다”고 비판했다.

■ 더딘 안정화 “‘좌파정부’ ‘분배정부’라고 비난만 잔뜩 받았지, 과감한 분배정책을 쓰지 못했다. 예산을 더 주고 싶었지만 관련 부처에서 사업을 빨리빨리 만들어 오지 않았다. … 목표를 정해 지시하고 공무원들을 재촉하는 식으로 무식하게 했어야 했는데, 바보처럼 하고 말았다.”(노무현 자서전 <운명이다>)

김대중-노무현 정부는 분배에 신경을 많이 썼다. 국민의 정부는 국민기초생활보장제와 4대 사회보험 확대 시행 등으로 시장경제의 부작용과 폐해를 보완하고자 했다. 그러나 방대한 복지 사각지대가 존재했다. 참여정부는 복지에 대한 재원 확대를 통해 사각지대를 줄이려 했고, 복지·의료·교육 등 사회서비스 부문을 강화했다. 국내총생산 대비 복지지출 비중은 2000년 4.8%에서 2007년 7.5% 증가했다. 그러나 시장의 광폭함을 완화시키는 데는 역부족이었다.

두 정부는 재정을 통한 분배 이전에 시장에서의 불평등을 완화시키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는 데도 미흡했다. 시기를 놓치거나 방치한 경우도 있다. 비정규직 보호법은 2006년에야 통과돼 2007년부터 본격 시행됐고, 영세 자영업자 대책은 청와대에서 아이디어를 한번 제출해 본 이후 아무것도 없었다.

전병유 한신대 교수(경제학)는 “비정규직과 자영업자만 해도 전체 2400만 취업자에서 1500만에 이른다”며 “서민에 대해서는 비정규직과 자영업 문제에 대한 대응이 1순위 과제여야 했고, 중산층에서는 교육과 주거서비스 문제에 대한 현실적 해답을 제공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박현 기자 hy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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