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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정치일반

“안정적 직장 8%뿐…‘불안한 92%’ 위한 대책 없어”

등록 2011-03-06 21:31수정 2011-03-21 15:29

10대~40대 여성들이 지난 2일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에서 진행된 ‘한국사회 미래를 말하다’ 마무리 좌담회에 참석해 이야기를 하고 있다. 오른쪽부터 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42), 청소년인권활동가 둠코(인터넷 활동명·18), 신혜정(29) 한국여성노동자회 교육부장, 배우 김여진(37)씨. 맨 왼쪽은 사회를 맡은 박주현 변호사.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10대~40대 여성들이 지난 2일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에서 진행된 ‘한국사회 미래를 말하다’ 마무리 좌담회에 참석해 이야기를 하고 있다. 오른쪽부터 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42), 청소년인권활동가 둠코(인터넷 활동명·18), 신혜정(29) 한국여성노동자회 교육부장, 배우 김여진(37)씨. 맨 왼쪽은 사회를 맡은 박주현 변호사.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10~40대 여성들 ‘발랄 좌담’
4부: 결국 정치에 달렸다
③ 기획 총결산 <끝>

지난해 5월부터 연재해온 ‘한국사회 미래를 말하다’(<한겨레> 창간 22돌 기획)를 마무리하면서 좌담회를 마련했다. 그동안 진보, 보수 진영 대표적 인사들의 대담과 복지, 교육, 경제, 정치 등 분야별로 우리 사회의 나아갈 방향을 진단하면서 숱한 인사들이 지면에 등장했지만 여성이 없었다는 ‘반성’에서 여성들만의 좌담회로 했다. 여성의 시각에서 한국사회의 미래를 자유롭게 짚어보자는 취지다. 좌담엔 10대~40대 여성 4명이 참여했고 사회도 시민경제사회연구소 소장으로 있는 박주현 변호사가 맡았다. 좌담은 3월2일 오전 한겨레신문 6층 회의실에서 2시간 남짓 진행됐다.

■ 좌담 참석자

사회 박주현(48·시민경제사회연구소 소장)
둠코(인터넷 활동명·18·청소년인권활동가)
신혜정(29·한국여성노동자회 교육부장)
김여진(39·배우)
이정희(42·민주노동당 대표)


박주현(이하 박) 시리즈를 마무리하는 좌담인 만큼, 전방위적으로 떠들어야 한다. 사실기획, 아쉬움이 있다. 지금까지 등장한 전문가 중에 여자가 없었다는 거.

김여진(이하 김) 막판에 모아놓고 한번에 끝내자? 이거 규탄해야겠구만.(일동 웃음)

10대부터 40대까지 세대별로 나왔으니, 돌아가면서 고민을 말해보자.

둠코(이하 둠) 나처럼 청소년단체 활동하는 친구들 고민은 한결같다. 대학 안 가고 이거 해도 먹고살 수 있을까? 아르바이트로는 생활 해결이 안 되니까. 근데 대학 가도 어떻게 살지 막막한 건 마찬가지 아닌가?

신혜정(이하 신) 대학생 네 명 중 한 명이 등록금 때문에 빚을 지고 산다. 운 좋게 취업해도 두 명 중 하나는 150만원도 못 받는 소규모 사업장서 일하고, 그들 대부분은 비정규직이다. 저출산이니 뭐니 해도, 열에 여섯은 결혼하고 애 낳고 싶어한다. 그런데 비정규직은 일과 가사를 병행할 형편이 안 된다.

나는 배우다. 게다가 아이까지 없으니 세대를 대표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다만 아이 낳아 키우는 게 정말 힘들다는 걸 느낀다. 동생들 봐도 위태롭다. 둘 다 결혼을 해 직장인 남편이 있지만, 늘 구조조정 위협에 시달린다. 막내는 아예 부부가 비정규직이다. 아이를 키우면서는 더 불안해하는 게 느껴진다. 안정된 직장과 경제력을 갖춘 친구들 역시 부부·고부갈등에 권태와 허무…. 말 못할 고통이 많다.

둠코
경쟁방법 익히라는게
국가가 말하는 해결책

모든 어려움에서 일거에 벗어나는 방법은 결국 싱글로 사는 거네?

동의 못한다. 우리 세대는 위장결혼이라도 해서 임대 아파트 좀 얻자고 한다.(일동 웃음)

이정희(이하 이) 40대 여자로서, 올해 벌인 중요한 일이 대파와 쪽파를 사서 화분에 심은 거다. 채소값이 굉장히 올라서. 요즘 열심히 물주며 키워 먹고 있다. 가장 어려운 건 아이 키우기다. 경제적 차원을 떠나 사교육을 얼마나 시켜야 할지, 나중에 아이한테 ‘왜 남들 다 하는 거 난 안 시켜줬어?’ 원망듣진 않을지 불안하기도 하고. 아이들 키우고 나면 부모님이 아프시고…. 모든 세대 여자들이 몸무게 이상의 짐을 지고 산다.

외환위기 이후 저성장과 구조조정이 겹치면서 사회가 불안과 과당경쟁으로 내몰리고 있다.상황에 맞는 국가 시스템이나 해결책이 만들어져야 하는데 그것도 안 됐다. 대체 우리 사회는 어떻게 변해야 할까.

국가가 던져주는 해결책이란 게 고작 열심히 경쟁하는 방법이나 익히라는 거다. 주변을 봐도 중학교 때까지는 하고싶은 것 다 하면서 살겠다던 친구들이 고등학생 되더니 내신과 대학을 얘기한다. 대학을 가도 뾰족한 수가 없다는 건 알겠는데, 거기조차 못 가는 게 불안한 거다.

이정희
보통사람들 변화에 소극적
자기주변부터 바꿔나가야

요즘 학교에선 공부 못하면 노숙자 된다고 겁준다며?

우리 땐 공순이 된다고 했는데.

요즘은 대학 안 나오면 공순이로도 안 써준다고 한다.

사실 대기업, 공공기관 등 모두가 선망하는 안정적 직장은 8%밖에 안 된다. 나머지 92%는 중소기업에 가거나 비정규직이 돼야 하고, 그도 안 되면 자영업을 하거나 실업자로 살아야 한다.현실을 정확히 얘기해주면서 92%에 대한 대책을 마련해야 하는데, 노력만 하면 8%가 될 수 있는 것처럼 속인다.

안 그러면 8%의 우월함이 유지될 수 없으니까.(일동 감탄)

사실 8%에 포함되는 게 환상이란 건 다 안다. 게다가 그 8%도 결코 행복하지 않다. 8%를 20%, 30%로 만들어달라고 요구할 게 아니라, 아예 깡그리 무시해버려야 한다.

김여진
루저보다는 날라리 되어
대안적 삶도 찾아봐야

우린 8%에 대한 환상 자체가 없다. 뒤처지면 끝이라는 생각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뛰어드는 거다.

모두가 8%처럼 살면 지구는 망하지 않나? 지금 필요한 건 사방으로 흩어지는 거다. 제발 ‘불안해요, 길이 없어요’ 징징대지 말자. 대안이 없으면 만들어야 한다.

20대들이 더이상 8%를 바라보지 않는다는 건 그 세대에 ‘루저’ 문화가 형성돼서 그렇다. 문제는 그 문화 역시 별로 다양하지 못하다는 거다. 예컨대 루저끼리 가족을 만들어 살아가는 모습은 왜 상상하지 못하는가.

난 ‘위너’의 반대인 루저란 말보다 ‘날라리’를 선호한다. 날라리들은 ‘범생’한테 당당하게 얘기한다. ‘니들은 재미없게 살아. 우린 이렇게 놀다 죽을래.’ 이게 멋있어 보이면 사람들이 모이고 뭔가 생겨난다. 지금 세계가 그리 가고 있다. 작은 아이디어도 공유하는 세계, 소셜네트워크로 혁명하는 시대. 날라리들의 독창성이면 대안적 삶을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다.

내 주변에도 있다. 학교 그만둔 아이들끼리 한 집에 모여 살면서 먹고 놀고, 청소년 활동하고. 생활비는 알바로 충당한다.

그런 공동체 꽤 된다. 혼자서는 집 구할 형편이 안 되니 여럿이 옥탑에 방 구하고, 한 달에 10만원씩 쓰면서 버틴다.(일동 놀람) 가능하다. 모여서 살면.

신혜정
실패해도 낙오하지 않게
새 사회시스템 만들 필요

날라리로, 대안적 삶을 추구하며 사는 것, 실험으로는 굉장히 중요하다. 하지만 다수가 머리에 꽃을 꽂고 살기란 어려운 일이다. 최고은 작가는 돈을 못 받으니 밥도 굶고, 아파도 치료받을 상황이 안 됐다. 꿈을 좇아 새로운 삶을 개척하려는 친구들이 맞닥뜨리는 현실이 그렇다. 이들처럼 새로운 시도를 못 하는 대부분의 젊은이는 비정규직을 전전한다. 기륭전자 여성 노동자들이 그러더라. 결혼을 안 하면 계약기간이 6개월, 하면 3개월.

우리한테 진짜 필요한 건 ‘독립’이다. 근데 독립하고 싶어도 돈이 없다.

돈 달라고 요구해라. 지금 국가예산이 300조다. 6조 정도는 얼마든지 청년 독립자금으로 투입할 수 있다. 김여진씨가 홍대 청소노동자 문제로 싸울 때, ‘과연 될까?’ 했다. 그런데 반향을 일으키면서 해결되잖아.

박주현
300조 국가예산 중 6조청년
독립자금으로 요구를

그래서 ‘학생들에게 임금을 달라’ 요구하고 있다. 학교라는 데가 사회화 기관 아닌가. ‘당신들이 원하는대로 사회화돼줄테니 돈 달라’ 이거다.

뭔가 요구하려면, 얘기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돼야 하는데, 10대들은 그게 어렵다. 얘기하려면 학교를 뛰쳐나와야 하고. 고민이 많을 거다. 10대들이 자기 진로를 생각하고 얘기할 수 있는 공간이 열리면….

남성이든 자본이든 국가든, 거기 대고 우리들 고통이 어쩌구, 징징대봐야 나오지 않는다. 그들은 기득권자들이니까. 대신 ‘너희도 될 수 있다’는 환상만 주입한다. 이들 논리를 받쳐주는 게 운동권들이다. 그 사람들 요구란 게 8%를 10%, 20%로 만들자는 것 아닌가. 우리는 새 방식을 찾아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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