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호 전국경제인연합회 전무가 22일 오전 서울 여의도 케이티(KT) 빌딩에서 상법 개정안에 대한 전국경제인연합회와 대한상공회의소 등 19개 경제단체 명의의 반대 입장 건의문을 발표하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재계 ‘상법 개정안’ 무력화 총력전
‘경영권 위협·경쟁력 약화’ 명분
외국자본 기업사냥 등 과장·왜곡 총수 배임·횡령 잇단 실형에도
‘무소불위 경영권’ 계속 보장 요구 정부, 경제살리기 빌미 수용 태세
박대통령 ‘신뢰 정치’ 스스로 부정 재계가 22일 재벌 총수의 전횡을 견제하려는 상법 개정에 집단으로 반발하고 나선 것은 최근 주요 재벌 총수들이 배임, 횡령, 탈세 등의 혐의로 잇달아 구속 내지 실형선고를 받고 있는 현실에 비춰볼 때 명분이 약하다는 지적이 많다. 또 박근혜 정부가 ‘경제 살리기’를 명분으로 상법 개정안 완화를 추진하는 것은 경제민주화가 기업의 투자활동을 저해한다는 재벌의 논리에 사실상 굴복하는 것이고, 박 대통령이 경제민주화 일환으로 상법 개정을 대선공약과 국정과제로 약속한 것을 스스로 부정하는 모습으로 비칠 수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등 19개 경제단체들이 상법 개정안에 반대하는 논거는 세가지다. 먼저 기업들에 획일적인 지배구조를 강요하는 것으로, 글로벌 경쟁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외국계 펀드나 경쟁기업들에 의해 경영권이 위협받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박찬호 전경련 전무는 “세계 어느 나라도 상법 개정안처럼 특정의 지배구조를 강요하지는 않는다. 지금과 같은 글로벌 경제전쟁 시대에 국내 기업의 손과 발을 묶고 해외 유수의 기업들과 경쟁하라는 것은 해당 기업의 경쟁력은 물론 국가경제에도 심각한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전경련은 특히 이사회의 감사위원을 맡는 이사를 다른 이사와 분리해서 선출하고, 대주주의 의결권을 최대 3%까지만 허용하는 방안을 우려한다. 박 전무는 “경영진 선임에 있어 대주주의 영향력은 대폭 줄고, 2~4대 주주들이 경영권을 장악하거나 회사 경영에 심대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며, 과거 외국계인 소버린과 칼 아이컨이 에스케이와 케이티앤지의 경영권을 간섭한 사례를 거론했다. 하지만 재계의 이런 주장은 상당부분 왜곡·과장된 것이다. 우리나라에 투자하는 외국계 펀드는 경영권을 노리는 대신 주식투자로 배당이익이나 시세차익을 얻고자 하는 뮤추얼펀드가 대부분이다. 또 국내 상위 43개 재벌의 경우, 총수일가와 계열사를 합친 내부 지분율이 평균 54.8%에 달해 외부의 적대적 인수합병 목표가 될 가능성이 희박하다. 경제개혁연구소 채이배 연구위원은 “대기업의 경우, 기관투자가들이 독립적 이사 한 명을 선임하는 것도 쉽지 않은데, 일반주주에게 경영 참여의 길을 열어주려는 시도조차 경영권 위협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지나치다”고 비판했다. 재벌들이 상법 개정안에 반대하는 것은 결국 재벌 총수에게 견제받지 않는 무소불위의 경영권을 보장해 달라는 요구인 셈이다. 상법 개정안의 취지는 대주주와 경영진의 전횡을 견제하고 소수주주를 보호하는 것이다. 최근 재계 3위인 에스케이그룹의 최태원 회장, 10위인 한화그룹의 김승연 회장, 14위인 씨제이그룹의 이재현 회장 등 재벌 총수들이 불법행위 혐의로 줄줄이 구속되거나 1·2심에서 실형 선고를 받았다. 재벌 총수들이 수천억원 규모의 배임, 횡령, 탈세를 저지르는 동안 회사의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이사회가 아무런 견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거수기’로 전락한 것은 독립성이 없기 때문이다. 전경련도 이런 상법 개정안의 취지에는 공감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전경련이 아무런 대안 제시 없이 상법 개정안 내용에 모두 반대하는 것을 볼 때 진정성이 약해 보인다. 총수가 불법행위로 구속되거나 유죄판결을 받은 에스케이, 한화, 씨제이 등은 모두 전경련의 회원사다. 또 최태원 에스케이 회장과 김승연 한화 회장은 전경련 회장단의 일원이기도 하다. 전경련은 지금까지 이들 사건에 대해 국민에게 사과하거나, 불법행위를 한 회원사를 제재한 적이 단 한번도 없다. 4대 그룹의 한 고위임원은 “전경련이 올해 초 국민의 신뢰를 받는 기관으로 거듭나겠다고 약속했었는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박근혜 정부가 경제살리기를 내세워 상법 개정안 완화 움직임을 보이는 것은 대선공약과 국정과제 약속의 파기로 비칠 수 있다. 경제민주화를 주관하는 노대래 공정위원장이 최근 “경제민주화와 경제살리기는 서로 상충되지 않는다”는 입장을 일관되게 밝혀온 것과도 상충된다. 상법 개정안 수정 논의에 참여하고 있는 경제부처의 한 고위간부는 “경제살리기 주장도 무시할 수 없지만, 상법 개정안 완화가 자칫 경제민주화 후퇴와 국정과제 파기로 비칠 경우 박근혜 대통령의 ‘신뢰정치’에도 부담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경제개혁연대는 “상법 개정안을 포함한 경제민주화 법안이 제대로 마련돼야 공정한 시장경제질서가 확립돼 재벌의 반칙경영이 바로잡히고, 중소기업과 영세자영업자도 살 수 있는 등 진정한 경제살리기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곽정수 선임기자 jskwak@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 동양그룹 금융계열사는 그룹의 ‘마이너스 통장’
■ ‘폭소 유발’ 자동번역기, “맥주 싸게싸게 마셔라” 결과는?
■ 에로영화는 ‘찍는 과정’도 에로영화?
■ [화보] 28년만에 베일 벗은 전두환 일가의 청남대 생활
■ [화보] 서울내기 잡아 끈 담장 없는 시골 마당집
외국자본 기업사냥 등 과장·왜곡 총수 배임·횡령 잇단 실형에도
‘무소불위 경영권’ 계속 보장 요구 정부, 경제살리기 빌미 수용 태세
박대통령 ‘신뢰 정치’ 스스로 부정 재계가 22일 재벌 총수의 전횡을 견제하려는 상법 개정에 집단으로 반발하고 나선 것은 최근 주요 재벌 총수들이 배임, 횡령, 탈세 등의 혐의로 잇달아 구속 내지 실형선고를 받고 있는 현실에 비춰볼 때 명분이 약하다는 지적이 많다. 또 박근혜 정부가 ‘경제 살리기’를 명분으로 상법 개정안 완화를 추진하는 것은 경제민주화가 기업의 투자활동을 저해한다는 재벌의 논리에 사실상 굴복하는 것이고, 박 대통령이 경제민주화 일환으로 상법 개정을 대선공약과 국정과제로 약속한 것을 스스로 부정하는 모습으로 비칠 수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등 19개 경제단체들이 상법 개정안에 반대하는 논거는 세가지다. 먼저 기업들에 획일적인 지배구조를 강요하는 것으로, 글로벌 경쟁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외국계 펀드나 경쟁기업들에 의해 경영권이 위협받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박찬호 전경련 전무는 “세계 어느 나라도 상법 개정안처럼 특정의 지배구조를 강요하지는 않는다. 지금과 같은 글로벌 경제전쟁 시대에 국내 기업의 손과 발을 묶고 해외 유수의 기업들과 경쟁하라는 것은 해당 기업의 경쟁력은 물론 국가경제에도 심각한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전경련은 특히 이사회의 감사위원을 맡는 이사를 다른 이사와 분리해서 선출하고, 대주주의 의결권을 최대 3%까지만 허용하는 방안을 우려한다. 박 전무는 “경영진 선임에 있어 대주주의 영향력은 대폭 줄고, 2~4대 주주들이 경영권을 장악하거나 회사 경영에 심대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며, 과거 외국계인 소버린과 칼 아이컨이 에스케이와 케이티앤지의 경영권을 간섭한 사례를 거론했다. 하지만 재계의 이런 주장은 상당부분 왜곡·과장된 것이다. 우리나라에 투자하는 외국계 펀드는 경영권을 노리는 대신 주식투자로 배당이익이나 시세차익을 얻고자 하는 뮤추얼펀드가 대부분이다. 또 국내 상위 43개 재벌의 경우, 총수일가와 계열사를 합친 내부 지분율이 평균 54.8%에 달해 외부의 적대적 인수합병 목표가 될 가능성이 희박하다. 경제개혁연구소 채이배 연구위원은 “대기업의 경우, 기관투자가들이 독립적 이사 한 명을 선임하는 것도 쉽지 않은데, 일반주주에게 경영 참여의 길을 열어주려는 시도조차 경영권 위협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지나치다”고 비판했다. 재벌들이 상법 개정안에 반대하는 것은 결국 재벌 총수에게 견제받지 않는 무소불위의 경영권을 보장해 달라는 요구인 셈이다. 상법 개정안의 취지는 대주주와 경영진의 전횡을 견제하고 소수주주를 보호하는 것이다. 최근 재계 3위인 에스케이그룹의 최태원 회장, 10위인 한화그룹의 김승연 회장, 14위인 씨제이그룹의 이재현 회장 등 재벌 총수들이 불법행위 혐의로 줄줄이 구속되거나 1·2심에서 실형 선고를 받았다. 재벌 총수들이 수천억원 규모의 배임, 횡령, 탈세를 저지르는 동안 회사의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이사회가 아무런 견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거수기’로 전락한 것은 독립성이 없기 때문이다. 전경련도 이런 상법 개정안의 취지에는 공감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전경련이 아무런 대안 제시 없이 상법 개정안 내용에 모두 반대하는 것을 볼 때 진정성이 약해 보인다. 총수가 불법행위로 구속되거나 유죄판결을 받은 에스케이, 한화, 씨제이 등은 모두 전경련의 회원사다. 또 최태원 에스케이 회장과 김승연 한화 회장은 전경련 회장단의 일원이기도 하다. 전경련은 지금까지 이들 사건에 대해 국민에게 사과하거나, 불법행위를 한 회원사를 제재한 적이 단 한번도 없다. 4대 그룹의 한 고위임원은 “전경련이 올해 초 국민의 신뢰를 받는 기관으로 거듭나겠다고 약속했었는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박근혜 정부가 경제살리기를 내세워 상법 개정안 완화 움직임을 보이는 것은 대선공약과 국정과제 약속의 파기로 비칠 수 있다. 경제민주화를 주관하는 노대래 공정위원장이 최근 “경제민주화와 경제살리기는 서로 상충되지 않는다”는 입장을 일관되게 밝혀온 것과도 상충된다. 상법 개정안 수정 논의에 참여하고 있는 경제부처의 한 고위간부는 “경제살리기 주장도 무시할 수 없지만, 상법 개정안 완화가 자칫 경제민주화 후퇴와 국정과제 파기로 비칠 경우 박근혜 대통령의 ‘신뢰정치’에도 부담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경제개혁연대는 “상법 개정안을 포함한 경제민주화 법안이 제대로 마련돼야 공정한 시장경제질서가 확립돼 재벌의 반칙경영이 바로잡히고, 중소기업과 영세자영업자도 살 수 있는 등 진정한 경제살리기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곽정수 선임기자 jskwak@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 동양그룹 금융계열사는 그룹의 ‘마이너스 통장’
■ ‘폭소 유발’ 자동번역기, “맥주 싸게싸게 마셔라” 결과는?
■ 에로영화는 ‘찍는 과정’도 에로영화?
■ [화보] 28년만에 베일 벗은 전두환 일가의 청남대 생활
■ [화보] 서울내기 잡아 끈 담장 없는 시골 마당집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