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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공론조사 창안자 “원전 공론화, 시민에 충분한 정보량이 관건”

등록 2017-08-20 17:01수정 2017-08-20 21:59

한겨레·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공동기획
공론화, 성공의 로드맵을 짜자 ④한국형 공론화 모델 만들자

공론조사 만든 제임스 피시킨 교수
“정치인은 토론보다 다음 선거 승리에 관심…
정보 충분하면 대중이 더 책임감있는 의사결정
쉽고 균형잡힌 자료와 유능한 토론진행자 중요
지난 6일 오후(현지시각) 미국 캘리포니아주 팰로앨토에 있는 스탠퍼드대 연구실에서 제임스 피시킨 스탠퍼드대 교수가 공론조사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팰로앨토(미국)/이철호 통신원
지난 6일 오후(현지시각) 미국 캘리포니아주 팰로앨토에 있는 스탠퍼드대 연구실에서 제임스 피시킨 스탠퍼드대 교수가 공론조사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팰로앨토(미국)/이철호 통신원
“어려운 선택을 하는데 시민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는 건 높은 수준의 민주주의다. 그들(한국 정부)이 반드시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공론조사’(deliberative polling)라는 사회조사 방식을 고안해 낸 이 분야의 권위자 제임스 피시킨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커뮤니케이션학·정치학)는 한국 정부가 신고리 핵발전소 5·6호기의 공사 중단 여부에 대한 공론화 결과를 조건 없이 수용하기로 했다는 내용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6일 오후(현지시각) 미국 캘리포니아주 팰로앨토에 있는 스탠퍼드대 연구실에서 만난 피시킨 교수는 한국이 공론화를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3개월이라는 공론화 기간이 ‘걸림돌’이 되진 않겠지만, 시민들에게 제공할 자료와 참가자 표본 추출을 얼마나 충실하게 준비하느냐가 공론화의 성패를 좌우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공론조사는 좀더 정확한 여론 파악 위한 수단”

피시킨 교수가 특정한 표본을 통해 뽑은 참가자가 토론과 자료를 통해 충분한 생각을 한 뒤 의견을 밝히는 ‘공론조사’의 개념을 처음 제시한 건 1988년 발표한 대통령 경선 제도에 대한 논문이었다. 그 뒤 1991년 <민주주의와 공론조사>를 통해 다듬어진 공론조사는 앞서 1970년대 미국·독일 등에서 사용하던 ‘시민배심원 제도’와 1980년대 덴마크에서 시작한 ‘합의회의’와 달리 좀 더 많은 참가자로부터 의견의 변화 과정을 본다는 점에서 영국·미국·오스트레일리아(호주) 등 여러 나라에서 정책 판단의 잣대로 활용돼 왔다.

현재 피시킨 교수가 이끌고 있는 스탠퍼드대 숙의민주주의 센터(The Center for Deliberative Democracy)가 직간접적인 설계와 조언을 진행한 민·관 주도의 공론조사만 27개국 103건에 이른다. 일본 정부가 2012년 진행한 ‘에너지·환경의 선택지에 대한 토론형 여론조사’와 우리나라에서 2011년 서울대 언론정보연구소 등이 진행한 ‘북한과 통일’ 공론조사, 그리고 2015년 ‘사용후핵연료 공론화 공론조사’도 이들의 도움을 받았다.

김지형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장은 지난달 24일 “(피시킨 교수가 제안한 공론조사 방식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기에 취약점은 혹시 없는지, 갈등 관리나 이런 측면에서 조금 더 보완하면서 설계할 것은 없는지 살펴보려고 한다”고 밝힌 바 있다.

피시킨 교수는 ‘좀 더 정확한 여론 파악’을 위해 공론조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공공정책에 관심이 없다. 첨예한 대립을 벌이는 사안이 생길 때 가짜뉴스나 사회관계망(SNS) 등에서 보듯이 정치적 목적을 위한 정보나 여론을 조작하는 경우가 흔하다”며 “공론조사는 ‘만약 대중이 좋은 환경 아래에서 정책과 정치적 이슈를 살피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라는 질문에서 출발한 개념이다”라고 설명했다.

특히, 그는 대의민주주의 제도에서 공론조사가 더 필요하다는 점도 강조했다. “전세계의 정당과 정치인을 보면, 대부분 사회적 토론에서 이기는 것보다 다음 선거에서 이기는 데 관심이 있다. 그런 탓에 충분한 정보를 통한 정책이 어렵다. 그러나 다음 선거를 신경 쓰지 않는 대중에게 숙의 과정을 통한 의사결정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공론조사 참가자 책임감 높아…몽골·일본 사례 주목해야”

그는 공론화를 진행하고 있는 한국이 몽골·일본의 공론조사 사례를 참고해야 한다고 말했다. 몽골 정부는 지난 4월 헌법 개정안에 대한 의견을 묻는 공론조사를 진행했다. 피시킨 교수는 “정부가 공론조사가 필요하다는 내용을 법률에 명시한 최초의 사례였는데, 2박3일 동안의 토론이 잘 진행됐으며, 그 결과도 좋았다”며 “기존에 정당이 주장해온 내용과 전혀 다른 토론 결과가 나와 정치권에 충격을 줬는데, 조사 결과가 모두 헌법 개정에 반영됐다”고 설명했다.

피시킨 교수는 일본 정부가 진행한 2011년 연금제도 개정과 2012년의 핵발전소 운영에 관한 공론조사에 대한 자문도 했는데 “이 사례들 모두 성공적이었다”고 평가했다. 그는 “일본 핵발전소 사례의 경우, 시민들이 정부가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에 대한) 정보를 제대로 제공하지 않아 불신이 팽배한 상태에서 진행했다. 당시 정부는 국민의 의견을 듣고 의사를 수렴하려는 의지가 있어서 공론조사를 실시하고 그 결과를 수용했다. 물론 그 뒤에 아베 총리가 집권하면서 정책 반영이 무산됐지만, (당시 일본 정부처럼) 정부가 국민의 의견을 듣고자 하는 자세는 매우 중요한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지난 4월 몽골 정부가 진행한 헌법 개정안 공론조사 과정에서 자문을 위해 몽골을 방문한 제임스 피시킨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가 공론조사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제임스 피시킨 교수 제공
지난 4월 몽골 정부가 진행한 헌법 개정안 공론조사 과정에서 자문을 위해 몽골을 방문한 제임스 피시킨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가 공론조사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제임스 피시킨 교수 제공
실제로 공론조사 과정에 참가하는 시민이 정치인보다 나은 ‘책임감’을 보여준다는 점도 강조했다. 피시킨 교수는 1994년 영국에서 범죄 증가에 대한 대처 방안을 주제로 한 정부 차원의 첫 공론조사 경험을 소개하면서 “당시 참가자의 아내였던 한 여성이 ‘결혼생활 30년 동안 신문 한 번 읽지 않던 남편이 공론조사에 참여한 뒤부터 매일 아침마다 뉴스를 찾아본다’며 감사의 말을 전한 적도 있다”고 밝혔다.

몽골의 공론조사 과정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벌어졌다. 그는 “대중교통이 발달하지 않은 몽골에서 (2박3일의 토론합숙 과정에) 참여하는 것이 쉽지 않은데, 정부가 교통·숙박비만 제공하는데도 선택된 사람 대부분이 참여를 해 놀라웠다”며 “대부분 관심이 없던 사안이었으나 사회의 방향을 이끌 역사적 결정에 참가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시민 결정…정부의 책임 회피 아니다. 세심한 준비가 관건”

한국 정부가 신고리 5·6호기의 공론화 결과를 그대로 수용하겠다고 밝힌 데 대해 피시킨 교수는 “어려운 선택을 하는데 시민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는 건 높은 수준의 민주주의다”라며 “그들(한국 정부)이 반드시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평가했다. 그는 “공론화를 통한 정책 결정이 정부가 책임을 회피하는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며 “과거 북아일랜드의 신-구교 갈등 문제나 불가리아의 집시에 대한 차별 문제도 공론조사로 다뤄졌기 때문에 첨예한 갈등이 있는 원전 건설 문제도 충분히 공론조사를 통해 다룰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3개월 동안 진행하는 신고리 5·6호기의 공론화 기간에 대해서는 “얼마나 세심한 준비를 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공론조사는 일반적으로 6개월을 잡는데, 2006년 이탈리아 라치오주에서 진행한 보건정책·예산에 대한 공론조사는 6주 만에 끝내기도 했다”며 “3개월이라는 시간보다는 (공론조사 준비가) 얼마나 됐는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성공적인 공론조사를 하려면 일반인도 이해하기 쉬운 균형있는 토론 자료집과 공론조사 과정에 있는 집단토론을 원활하게 이끌 수 있는 진행자(모더레이터), 그리고 균형 잡힌 정보를 바탕으로 하는 전문가와 참가자의 전체토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대부분 시간이 걸리는 작업으로, 이러한 전제조건만 충족한다면 공론조사를 어떠한 민감한 사회적 이슈에도 적용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공론화를 주도하는) 팀이 여러 도전을 어떻게 수행하는지가 관건이다”라고 말했다.

현재 그는 한국 정부로부터 신고리 5·6호기의 공론화에 대한 공식적인 자문 요청 등을 받지 않은 상태다. 과거 사용후핵연료 공론화 과정에서 진행한 공론조사에 대한 자문을 했지만, 한국을 직접 방문한 적은 없다. 피시킨 교수는 “박사과정생으로 있던 제자인 한규섭 서울대 교수(언론정보학)와 같은 한국의 공론조사 연구자가 충분히 좋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그러나 도움이 필요하다면 비용과 상관없이 돕고 싶다. 중요한 프로젝트가 실패해 공론조사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쓰여지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취재 팰로앨토(미국 캘리포니아주)/이철호 통신원, 정리 김성환 기자 hwany@hani.co.kr

제임스 피시킨 교수는
△미국 예일대 정치학 박사 △영국 케임브리지대 철학 박사 △스탠퍼드대 커뮤니케이션학·정치학과 교수 △스탠퍼드대 숙의민주주의센터장 △스탠퍼드대 재닛 펙(Janet M. Peck) 국제커뮤니케이션학과장 △미국 예술과학원(AAAS) 회원 △저서: <민주주의와 공론조사>(Democracy and Deliberation. 1991), <숙의민주주의와 공공상담>(When the People Speak.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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