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제유가가 가파르게 상승한 것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벌어진 ‘피의 숙청’ 사태가 원인으로 지목된다. 국제유가는 지난 세달 간 배럴당 50달러대에서 안정적으로 움직여 왔다. 6월 40달러대 저점을 찍은 뒤 수요가 회복되며 7월 들어 약간의 상승세를 보였다. 정유업계와 전문가들은 미국의 셰일가스 대량 개발과 생산이 계속돼, 국제유가가 40∼60달러 안에서 안정적으로 움직일 것으로 내다봤다.
석유수출국기구(OPEC·오펙) 내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의 왕가에서 일어난 대규모 숙청 사태는 이런 예상을 뒤엎었다. 숙청을 주도한 모하메드 빈 살만 왕세자는 강도 높은 감산 정책을 밀어붙여온 인사다. 이는 사우디 최대 석유회사 아람코의 내년 기업공개(IPO)를 앞두고 아람코의 가치를 높이기 위한 행보로 해석된다. 빈 살만 왕세자는 지난달 27일 “유가를 지지하기 위해 무엇이든 할 것”이라는 강한 의지를 표명하기도 했다.
정유업계에선 국제유가가 머지않아 70달러선을 돌파할 것이란 전망을 조심스레 내놓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한 번 불이 댕겨진 유가가 60∼70달러대에서 다시 설정될 가능성이 있다”며 “적어도 아람코의 기업공개가 예고된 내년 상반기까지는 계속 상승할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증권 심혜진 분석가도 “내년 석유 수요 증가분은 올해 수준을 상회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앞으로 1년간 국제유가 범위는 50~70달러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뱅크오브아메리카·메릴린치 분석가들이 ‘단기간 내 브렌트유 75달러까지 상승 예상’한다는 소식을 전하기도 했다.
정유업계에 호재다. 제품가격과 원유가격의 차이인 정제마진도 높게 형성돼 있다. 저유가의 장기화로 정유업체들이 정제설비 투자를 늦춰 석유제품 공급량이 수요량을 못 따라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8월 허리케인 하비가 미국 정제시설이 밀집한 텍사스를 덮쳐 정제마진을 높였다. 한 정유업체 관계자는 “유가 상승을 예단할 수는 없지만 급격히 상승할 경우 수익이 더 좋아질 수 있다”고 말했다.
유가 상승이 원유 채굴이나 운송을 활성화시켜 국내 조선·플랜트·철강업체로까지 호재로 작용할 것인지는 더 두고 봐야 한다. 한 철강업계 관계자는 “기대를 갖고 유가 동향을 지켜보고는 있다”며 “그러나 손뼉을 치기엔 이르다”고 말했다. 반면, 항공·해운업계는 유가가 오르면 수익성이 나빠져 촉각을 곤두세우는 중이다. 소비자 물가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당장 기름값은 연일 상승 중이다. 휘발유 가격은 14주 연속 상승해 7일 기준 리터당 1512.06원을 기록했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도 “저유가로 어려웠던 업종이 수혜를 입기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것”이라며 “단기적으로 물가와 석유제품 가격 상승이 일단 뒤따를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유가 상승이 단기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에스케이(SK)증권 손지우 분석가는 “2018년 상반기 정도까지는 상승할 가능성이 있어 70달러를 한 번 터치할 수는 있다”며 “하지만 국제 원유시장의 펀더멘탈(시장의 수요공급 등 기초여건)이 변한 것이 아니고 중동지역의 정치적 상황이 유가상승으로 이어진 터라 장기적으로는 국제유가가 40달러대로 회복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 “국내 산업에 이번 국제유가 상승이 미치는 영향은 굉장히 제한적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최하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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