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세법 개정안의 밑그림을 그리는 조세재정연구원이 17일로 예정된 연구 보고서 제출 기한을 6월 말로 연기했다. 검토가 더 필요하다는 이유에서인데, 주류업계의 다양한 입장을 반영하는 데 애를 먹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14일 기획재정부와 조세재정연구원의 설명을 종합하면, 최근 조세재정연구원은 17일로 예정된 ‘종량세 전환 방안’ 연구용역보고서 제출을 6월 말까지 연기한다고 기재부에 공문을 보냈다. 연기 이유는 ‘검토할 사항이 더 필요하다’는 것이다. 현재 기재부가 밝힌 주세법 개정안의 조건은 △소주·맥주 가격 인상 없고 △세수 증가가 없고(세수 중립) △소주·전통주·막걸리 등 업계 의견을 수렴하는 것이다. 조세재정연구원 관계자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여러 가지(조건)를 다 만족하게 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주세법 개정 논의는 국내 맥주업계에서 ‘수입 맥주와 역차별’을 주장하며 본격화됐다. 현행 주세는 가격에 세금을 매기는 ‘종가세’ 방식이다. 수입 신고가에 세금이 붙는 수입 맥주는 제조원가에 세금을 매기는 국산 맥주와 달리 홍보·판촉비용에 세금을 내지 않는다. 국산 맥주 업계는 이 세금 차이로 수입 맥주가 ‘4캔에 1만원’ 같은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치며 시장 점유율을 잠식하고 있다고 하소연해왔다. 이런 역차별을 해소하기 위해 ‘알코올 도수나 양’에 세금을 매기는 ‘종량세’ 방식으로 바꾸자고 주장한 것이다.
맥주 업계의 요구가 높던 지난해 7월 김동연 당시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이 “전 주종의 형평성을 고려해 주세법 개정을 재검토한다”고 밝혔다. 조세재정연구원도 토론회를 열고 맥주만 종량세로 바꾸는 방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막상 추진하는 과정에서 여러 업계의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풀지 못하고 있다. 종량세로 바꾸면 국산 맥주는 이익을 보지만, 알코올 도수가 높은 소주는 세금이 더 붙어 가격이 오를 수 있다. 고급 와인은 세금이 줄고 도수가 높은 전통주는 세금이 오를 수 있다. 맥주만 종량세로 바꾸더라도 소주 등 다른 주종과 맥주의 상대가격(교환가치)이 달라지는 문제도 간단치 않다.
게다가 조세재정연구원은 2년 전 ‘소규모과세 특례 등 주세법령 개선방안’ 보고서를 통해 “세수 중립을 전제로 한 종량세 전환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밝힌 바 있다. 당시 보고서는 종량세로 바꾸려면 세수를 확 늘려야 의미 있다는 취지였다. 그랬던 연구원이 세수 중립을 조건으로 개편 방안을 짜내고 있는 것이다.
고차방정식을 풀겠다고 ‘용감하게’ 덤볐던 기재부는 발표 시기를 계속 늦춰오고 있다. 지난해 11월 “내년 3월까지 개편안을 제출하겠다”고 했다가, 홍남기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이 지난 2월 “5월 초에 개정안을 발표하겠다”고 말했다. 지난 7일 기재부는 다시 발표 시점을 연기한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일각에서는 주세법 개정 자체를 하지 않는 것도 검토한다는 말도 나온다. 이에 대해 기재부는 “최대한 하려고 노력한다”며 전면 부정하지는 않고 있다. 반면 기재부가 주세법 개정 의지는 여전하지만 최근 소주·맥주 가격 인상 탓에 자칫 주세법 개정으로 가격이 인상됐다는 오해를 살까 봐 발표 시기를 늦춘다는 해석도 있다.
이경미 기자
km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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