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통화기금(IMF)이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사스)·신종플루·에볼라 등 2000년 이후 발생한 5차례의 전염병 대유행(팬데믹)에 따른 경제적 영향을 분석한 결과, 발병 이후 5년에 걸쳐 불평등지수인 지니계수가 1.5% 상승하고, 교육 수준이 낮은 노동자의 일자리가 5% 이상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제통화기금은 이런 결과를 근거로 코로나19에 대응하기 위해선 사회 지원 시스템 확대와 공공 근로 프로그램 활성화 등 ‘뉴딜 정책’이 필요하다고 권고했다.
국제통화기금은 12일(한국시각) 자체 누리집에 다비데 푸르체리 연구위원과 프라카시 라운가니 부연구위원, 조너선 오스트리 아시아태평양국 부국장 등이 함께 작성한 ‘팬데믹은 가난한 사람을 얼마나 더 뒤처지게 하는가’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이들은 코로나19로 촉발된 위기는 1930년대 대공황 이후 가장 큰 경제 재앙이며, 특히 취약계층에 큰 타격을 줘 불평등을 악화시킬 것이라고 밝혔다.
연구진은 사스(2003년)·신종플루(2009년)·메르스(2012년)·에볼라(2014년)·지카(2016년) 등 5가지 과거 팬데믹 사례가 여러 나라에서 소득과 고용에 미친 영향을 살폈다. 우선 불평등도 측정의 대표 지수인 지니계수(0∼1 사이의 값으로 숫자가 클수록 불평등 정도가 높음)의 경우 팬데믹 발생 시점부터 서서히 높아져 5년 뒤에는 1.5% 가까이 상승했다. 이는 175개국을 대상으로 순소득 기준으로 조사한 결과다. 연구진은 “정부가 전염병의 영향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소득재분배를 통한 불평등 완화 조처를 취했음에도 오랜 기간에 걸쳐 불평등이 악화되는 결과가 나타났다”며 “실업과 소득 감소, 고용 전망 위축 등이 원인”이라고 밝혔다.
팬데믹으로 인한 고용 타격은 교육 수준에 따라 차이가 났다. 76개국의 팬데믹 발생 뒤 고용 변화를 살핀 결과, 교육 수준이 높은 사람들은 거의 영향을 받지 않았지만, 기본 교육 정도만 받은 사람의 고용은 서서히 나빠져 5년 뒤에는 5% 이상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이번 조사 결과는 팬데믹의 분배 악화 영향에 대한 우려를 뒷받침한다”고 평가했다.
국제통화기금은 코로나19로 인한 불평등 악화를 예방하기 위해 정부가 취약계층을 위한 사회 지원 시스템 확대 등의 정책을 적극적으로 펼칠 것을 조언했다. 연구진은 “전염병이 사회의 거의 모든 계층에 영향을 미치지만, 정부 정책은 사회에서 가장 혜택을 받지 못하는 계층의 장기적 피해를 예방하는 데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며 “적극적이고 표적화된 노력이 없다면, 국제통화기금 총재가 말한 이미 ‘글로벌 경제에서 가장 복잡하고 골치 아픈 도전 가운데 하나’가 된 불평등을 확대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구체적인 정책도 소개했다. 연구진은 “비정규직이나 자영업자가 많은 경제에서는 이른바 ‘뉴딜정책’이 중요하다”며 △사회 지원 시스템 확대 △공공 근로 프로그램 활성화 △고용 유지 지원금 △‘사회연대를 위한 추가세’ 같은 진보적인 세금 조처 등이 도움이 된다고 꼽았다. 또 연구진은 “정책당국은 기후변화 등 미래 충격이 예견될 때 사회가 취약계층을 좀 더 보호할 수 있는 사회구조를 갖도록 근본적인 변화를 꾀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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