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지수가 1900선을 넘어선 12일 오후 서울 목동의 한 증권사 객장을 가득 메운 투자자들이 시세판을 주시하고 있다. 이날 주가가 오른 종목이 많아 시세판이 ‘붉은색’(주가 상승을 뜻함)으로 물들어 있다. 장철규 기자 chang21@hani.co.kr
콜금리 0.25%p 올려…한은 “경기회복 뒷받침 수준”
주가는 1900돌파…유동성 넘쳐 정책당국 힘 못써
주가는 1900돌파…유동성 넘쳐 정책당국 힘 못써
거침없는 하이킥!
조정을 받을 거라던 전문가들의 예상을 비웃듯 12일 코스피지수가 1900을 훌쩍 넘어 2000을 눈앞에 뒀다. 이날 주가 급등은 한국은행이 11개월 만에 콜금리를 인상한 가운데 이뤄진 것이어서 그 의미가 색다르다. 시장의 힘이 그만큼 커지고, 정책당국의 영향력이 현저히 약화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것이다.
한은 금융통화위원회는 이날 콜금리 목표치를 현재의 연 4.50%에서 4.75%로 0.25%포인트 인상했다. 이와 함께 유동성조절 대출금리와 총액한도 대출금리도 각각 0.25%포인트 올렸다.
한은이 이례적으로 유동성 위축을 가져올 수 있는 세 가지 금리를 한꺼번에 인상했지만 주가는 이를 무시하고 급등했다. 코스피지수는 전날보다 19.79(1.05%) 상승한 1909.75를 기록했다. 지난 4월9일 1500을 돌파한 뒤 석 달 여 만에 400이 올랐다. 코스닥지수도 8.20 오르며 828.22로 마감했다. 2002년 4월19일 이후 5년 3개월 만에 최고치다. 윤세욱 메리츠증권 센터장은 “지금처럼 펀드 자금이 물밀듯 들어오면 늦어도 8월 안에 2000 돌파가 가능하다고 본다”고 예상했다.
이날 주가 급등은 ‘금리를 올리면 주가는 떨어진다’는 상식이 무너지고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이성태 한은 총재는 “주가를 움직이는 요인은 다양하다”며 “금리보다 더 큰 요인이 작용하면 금리 인상의 효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올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한은 스스로 금리정책의 한계를 인정한 셈이다.
최근 주가 급등의 배경에는 풍부한 유동성과 세계적인 경기 호황이 자리잡고 있다. 지난 5월 말 광의의 유동성이 1900조원을 넘어섰다. 5월 중 하루에 평균 1조원이 늘어났다. 문제는 유동성 장세로 주식시장의 위험이 높아가는데도 한은의 금리정책만으론 별 효과가 없다는 것이다. 손상호 금융연구원 부원장은 “유동성이 워낙 풍부하기 때문에 한은이 콜금리를 조금 올려서는 유동성 위축이 일어나지 않는 이른바 ‘유동성 함정’에 빠진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국내로 물밀듯 들어오고 있는 단기외채를 줄여 주가와 환율을 안정시키겠다는 정부의 의도도 먹혀들지 않고 있다. 권오규 경제부총리는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내년 1월부터 외국은행 지점의 본점 차입 이자에 대한 손금 인정 비율 한도를 현행 자본금의 여섯 배에서 세 배로 축소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렇게 되면 외채를 들여올 때 이자 부담이 늘어나 단기외채 차입 규모가 줄어든다. 하지만 이런 대책 발표도 주가 급등과 환율 하락을 막지 못했다. 이날 원-달러 환율은 사흘째 떨어지며 918.30원으로 거래를 마쳤다.
금리정책을 통해 경기를 조절할 수 있다는 전통적인 논리도 현실에서는 거의 힘을 잃고 있다. 조원동 재정경제부 차관보는 “전체 경기 회복세가 탄탄하기 때문에 이번 콜금리 인상 영향을 별로 받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은도 이번에 인상된 콜금리 수준이 “여전히 경기 회복을 뒷받침하는 수준”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금리를 통해 선제적으로 경기를 조절하기보다는 경기 회복에 뒤따라가면서 금리 수준을 맞춰 가는 모양새다.
결국 이번 콜금리 인상은 주가, 환율, 유동성, 실물경기 어느 것에도 별 영향을 끼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이성태 총재는 이날 콜금리 추가 인상 가능성을 강하게 시사했다. 시장에서도 벌써부터 추가 인상 시기와 횟수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한은이 앞으로 돈줄을 얼마나 더 죄어야 금리정책의 실효성이 나타날지 관심거리다. 정석구 선임기자 twin86@hani.co.kr
결국 이번 콜금리 인상은 주가, 환율, 유동성, 실물경기 어느 것에도 별 영향을 끼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이성태 총재는 이날 콜금리 추가 인상 가능성을 강하게 시사했다. 시장에서도 벌써부터 추가 인상 시기와 횟수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한은이 앞으로 돈줄을 얼마나 더 죄어야 금리정책의 실효성이 나타날지 관심거리다. 정석구 선임기자 twin86@hani.co.kr
콜금리 목표치 변경 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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