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디타·임신부 살해 이어 ‘이샤키 총격’ 비디오까지
‘학살의 땅’ 이라크의 참상이 본격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지난해 11월 미군 해병대의 이라크 하디타 마을 민간인 학살 사건과 지난달 31일 임신부 살해에 이어, 미군이 지난 3월에도 이라크 민간인들을 고의적으로 살해했다는 의혹을 보여주는 새 비디오 테이프가 공개됐다. 영국 〈비비시〉는 2일 미군 병사들이 지난 3월15일 이라크 북부 이샤키 마을에서 어린이 5명과 여성 4명 등 주민 11명을 총으로 살해한 것으로 보이는 장면을 담은 비디오를 방송했다. 이 사건은 지난 3월 영국 〈가디언〉 등에 보도(〈한겨레〉 3월22일치 9면)됐지만, 진상을 보여주는 화면이 공개된 것은 처음이다.
미군은 당시 “마을에서 교전이 벌어져 총격을 받은 건물 일부가 붕괴돼 알카에다 용의자 1명과 여자 2명, 어린이 1명이 숨졌다”고 발표했지만, 이라크 경찰은 조사 보고서에서 “미군이 주민들을 건물로 몰아넣은 뒤 고의로 총격을 가해 살해했다”고 밝혔다. 〈비비시〉는 여러 명의 어린이와 성인들이 숨져 있는 사건 현장 화면을 분석한 결과 희생자들이 총에 맞은 것이 분명하다고 전했다. 미군 대변인은 “사건을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일련의 학살사건과 관련해 누르 알말리키 이라크 총리는 1일, 하디타 학살은 “가증스런 범죄”라고 강한 어조로 비판했다. 그는 “미군이 이라크인들을 존중하지 않고, 의심이 간다는 이유만으로 살해하고 있다”며, 하디타 사건 조사 결과를 내놓으라고 미국에 요구했다. 미국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처지인 알말리키 총리마저도 미군 범죄를 비난하는 민심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이라크 서부 안바르주 히트 마을의 한 주민은 1일 〈비비시〉 인터뷰에서 미군의 민간인 공격이 일상화됐다고 전했다. “1년 전 미군이 테러리스트들를 소탕하고 들어왔을 때 미군을 환영하는 주민들도 많았지만, 지난 1년 동안 마을주민 100여명이 미군에 목숨을 잃었다. 순찰을 도는 동안 폭탄이 터지자 미군은 근처 가게주인에게 총을 쐈다. 무더위 때문에 밤에 농사일을 해야 하는데, 밤에 밖에 나갔다가는 미군의 총격을 받는다. 물고기를 잡으러 강에 갔던 주민들이 총을 맞기도 했다.”
2004년 11월 미군 1만2천명이 동원된 팔루자 대공세에선 도시 전체가 초토화됐고, 구호단체와 의료진들은 주민 2천~4천명이 희생됐다고 추산한다. 미군이 저항세력 거점으로 지목한 서부지역에서는 미군의 결혼식장 오폭, 민가 습격 사건 등이 이어졌다.
비정부기구 ‘이라크 바디 카운트’는 지금까지 이라크 민간인 4만2434명이 숨졌다고 집계했다.
박민희 기자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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