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간
재건 방치·무고한 민간인 희생이 반군 키워
다국적군 고전…26년전 소련 침공과 닮은꼴
다국적군 고전…26년전 소련 침공과 닮은꼴
아프가니스탄의 슬픈 역사가 얄궂게 되풀이되는가?
2001년 10월7일, 미국과 영국군이 첫 ‘테러와의 전쟁’으로 벌인 아프간 침공의 5년이 흐른 지금 아프간은 여전히 혼란과 가난에 뒤덮여 있다. 쫓겨났던 탈레반은 더욱 강력한 세력으로 변신해 파키스탄 국경의 남동부 지역으로 돌아왔다. 9·11 동시테러의 주모자 오사마 빈 라덴과 그를 후원한 탈레반 정권으로부터 아프간을 해방시키겠다는 명분으로 시작한 미국의 아프간 침공이 실패로 돌아가고 있다는 소식이 미국과 영국 언론의 최대 화두가 됐다.
탈레반 덫에 걸린 다국적군=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군과 미군은 6주째 탈레반과 혈전을 벌이고 있지만, 병사 37명이 숨지고 전투기가 추락하는 등 고전하고 있다. 지난 7월 남부지역 관할권을 넘겨받은 나토군의 제임스 존스 사령관은 최근 회원국들한테 2500명의 병력 증원을 호소했지만, 폴란드만 내년에 1천명을 보내기로 했을 뿐 냉담한 반응이라고 <비비시>(BBC) 등이 보도했다. 탈레반은 이제 도시와 마을을 점령한 채 다국적군과 과감한 전면전을 벌이고 있다고 <워싱턴포스트>가 13일 보도했다. 탈레반 사령관 물라 다둘라는 1만2천명의 병력을 거느리고 있다고 주장한다. 탈레반의 자살폭탄테러와 암살로 올 들어 아프간인과 다국적군 173명이 사망했다.
점령은 왜 실패하고 있나=미국이 세운 하미드 카르자이 대통령의 아프간 친미 정부는 수도 카불 밖의 지방들을 거의 통제하지 못하고 있다. 남동부에는 돌아온 탈레반이, 다른 지역에선 과거의 군벌들이 할거한다. 이 속에서 미군은 폐허 속에 버려진 아프간의 재건이나 빈곤 문제를 외면한다는 원망을 사고 있을 뿐이라고 <비비시>는 보도했다. 전문가들은 이라크에만 신경을 쓴 미국이 탈레반의 주력인 파슈투족 근거지인 남부 지역을 방치해, 탈레반이 재건됐다고 지적한다. 빈 라덴 소탕작전은 오폭과 무리한 공격으로 민간인들을 희생시키며 원성을 샀다. 미국과 선진국들이 아프간 재건 자금으로 내놓은 돈은 유고슬라비아나 동티모르보다도 훨씬 못미쳤다. 주민들은 생존을 위해 아편 재배로 몰렸고, 이들이 의존할 수 있는 세력은 마약업자들과 군벌, 탈레반이었다. 생계대책 없이 경작지에 강제로 고엽제를 살포하는 미국의 마약 소탕작전은 오히려 반발을 일으켰다. 26년 전 소련군 침공 때와 비슷=아프간의 현재는 26년 전 소련의 아프간 침공과 깊이 얽혀 있는, 닮은꼴이다.
1979년 12월25일, 소련군 10만여명이 아프간 국경을 넘었다. 70년대 초부터 중앙아시아 지역의 안전판을 확보하기 위해 아프간의 공산 정부를 지원했던 소련은 당시 아프간 공산정권의 내분과 반정부 세력 강화로 상황이 통제되지 않자 직접 침공에 나섰다. 소련도 당시 아프가니스탄 마르크스주의 인민민주당(PDPA)의 바브라크 카르말 총리를 내세워 친소련 괴뢰정부를 세웠다. 소련군은 89년 2월2일 철수 때까지 9년 동안 아프간을 점령했으나, 친소 정부는 수도 카불 외의 지역들은 장악하지 못했다. 소련과 정부군의 저항세력 소탕작전에서 아프간인 100만여명이 목숨을 잃고, 난민 수백만명이 파키스탄 등 주변국으로 도망쳤다. 전 이슬람권에서 무자헤딘(성전전사)들이 소련군을 몰아내겠다며 아프간으로 몰려들었다. 소련은 늘어나는 사망자, 밑빠진 독에 퍼붓는 전비, 국내외의 비판을 버티지 못하고 철수했다. 이는 91년 소련의 해체로 이어진 결정타가 됐다.
자신이 만든 덫에 걸린 미국=아프간 침공에서 소련과 미국이 다른 점이 있다면 다른 강대국의 개입 여부다. 소련의 아프간 침공에 미국은 적극 개입했으나, 미국의 아프간 침공에는 러시아나 중국 등의 개입이 없다. 하지만 미국은 소련의 아프간 침공에 개입하며 뿌린 씨앗 때문에 아프간을 침공했고, 지금 발목이 잡혀 있다. 당시 미국 중앙정보국(CIA)은 비밀작전을 통해 무자헤딘들을 지원하며 끊임없이 소련을 괴롭혔다. 카터 행정부의 안보보좌관이었던 즈비그뉴 브레진스키는 “미국의 비밀작전이 소련을 ‘소련판 베트남전’인 아프간으로 끌어들였다”고 나중에 자랑하기도 했다. 로버트 게이츠 당시 중앙정보국장은 “소련 침공 6개월 전부터 우리가 이미 아프간 반정부 세력을 지원하기 시작했다”고 회고했다. 지금 미국을 괴롭히는 이슬람 무장세력의 뿌리가 바로 20여년 전 미국이 지원했던 그 무자헤딘이다. 당시 미국과 사우디 왕가의 지원으로 급성장한 무자헤딘 영웅이 오사마 빈 라덴이다. 이후 벌어진 아프간 내전에서 미국의 지지를 받으며 등장한 탈레반 정부가 미국과 원수로 된 것도 얄궂게 그 빈 라덴 때문이었다. 그는 91년 걸프전에서 미군의 사우디 주둔에 반발해 반미성전을 선언한 뒤 아프간에 근거지를 마련했다. 미국은 빈 라덴 문제로 결국 탈레반에 등을 돌렸다. 아프간이 다시 26년 전 소련군 침공 상황을 닮아가고 있는 지금, 미국과 영국도 26년 전 소련의 처지로 돌아가고 있다. 박민희 기자 minggu@hani.co.kr
1979년 소련의 아프간 침공
점령은 왜 실패하고 있나=미국이 세운 하미드 카르자이 대통령의 아프간 친미 정부는 수도 카불 밖의 지방들을 거의 통제하지 못하고 있다. 남동부에는 돌아온 탈레반이, 다른 지역에선 과거의 군벌들이 할거한다. 이 속에서 미군은 폐허 속에 버려진 아프간의 재건이나 빈곤 문제를 외면한다는 원망을 사고 있을 뿐이라고 <비비시>는 보도했다. 전문가들은 이라크에만 신경을 쓴 미국이 탈레반의 주력인 파슈투족 근거지인 남부 지역을 방치해, 탈레반이 재건됐다고 지적한다. 빈 라덴 소탕작전은 오폭과 무리한 공격으로 민간인들을 희생시키며 원성을 샀다. 미국과 선진국들이 아프간 재건 자금으로 내놓은 돈은 유고슬라비아나 동티모르보다도 훨씬 못미쳤다. 주민들은 생존을 위해 아편 재배로 몰렸고, 이들이 의존할 수 있는 세력은 마약업자들과 군벌, 탈레반이었다. 생계대책 없이 경작지에 강제로 고엽제를 살포하는 미국의 마약 소탕작전은 오히려 반발을 일으켰다. 26년 전 소련군 침공 때와 비슷=아프간의 현재는 26년 전 소련의 아프간 침공과 깊이 얽혀 있는, 닮은꼴이다.
1979년 12월25일, 소련군 10만여명이 아프간 국경을 넘었다. 70년대 초부터 중앙아시아 지역의 안전판을 확보하기 위해 아프간의 공산 정부를 지원했던 소련은 당시 아프간 공산정권의 내분과 반정부 세력 강화로 상황이 통제되지 않자 직접 침공에 나섰다. 소련도 당시 아프가니스탄 마르크스주의 인민민주당(PDPA)의 바브라크 카르말 총리를 내세워 친소련 괴뢰정부를 세웠다. 소련군은 89년 2월2일 철수 때까지 9년 동안 아프간을 점령했으나, 친소 정부는 수도 카불 외의 지역들은 장악하지 못했다. 소련과 정부군의 저항세력 소탕작전에서 아프간인 100만여명이 목숨을 잃고, 난민 수백만명이 파키스탄 등 주변국으로 도망쳤다. 전 이슬람권에서 무자헤딘(성전전사)들이 소련군을 몰아내겠다며 아프간으로 몰려들었다. 소련은 늘어나는 사망자, 밑빠진 독에 퍼붓는 전비, 국내외의 비판을 버티지 못하고 철수했다. 이는 91년 소련의 해체로 이어진 결정타가 됐다.
2001년 미국 아프간 침공
자신이 만든 덫에 걸린 미국=아프간 침공에서 소련과 미국이 다른 점이 있다면 다른 강대국의 개입 여부다. 소련의 아프간 침공에 미국은 적극 개입했으나, 미국의 아프간 침공에는 러시아나 중국 등의 개입이 없다. 하지만 미국은 소련의 아프간 침공에 개입하며 뿌린 씨앗 때문에 아프간을 침공했고, 지금 발목이 잡혀 있다. 당시 미국 중앙정보국(CIA)은 비밀작전을 통해 무자헤딘들을 지원하며 끊임없이 소련을 괴롭혔다. 카터 행정부의 안보보좌관이었던 즈비그뉴 브레진스키는 “미국의 비밀작전이 소련을 ‘소련판 베트남전’인 아프간으로 끌어들였다”고 나중에 자랑하기도 했다. 로버트 게이츠 당시 중앙정보국장은 “소련 침공 6개월 전부터 우리가 이미 아프간 반정부 세력을 지원하기 시작했다”고 회고했다. 지금 미국을 괴롭히는 이슬람 무장세력의 뿌리가 바로 20여년 전 미국이 지원했던 그 무자헤딘이다. 당시 미국과 사우디 왕가의 지원으로 급성장한 무자헤딘 영웅이 오사마 빈 라덴이다. 이후 벌어진 아프간 내전에서 미국의 지지를 받으며 등장한 탈레반 정부가 미국과 원수로 된 것도 얄궂게 그 빈 라덴 때문이었다. 그는 91년 걸프전에서 미군의 사우디 주둔에 반발해 반미성전을 선언한 뒤 아프간에 근거지를 마련했다. 미국은 빈 라덴 문제로 결국 탈레반에 등을 돌렸다. 아프간이 다시 26년 전 소련군 침공 상황을 닮아가고 있는 지금, 미국과 영국도 26년 전 소련의 처지로 돌아가고 있다. 박민희 기자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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