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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중동·아프리카

압승한 ‘하마스’, 유연노선으로 선회하나?

등록 2006-01-27 17:15수정 2006-01-27 18:38

세계의 눈이 팔레스타인 이슬람주의 무장단체 하마스에 쏠려 있다. 팔레스타인 총선에서 하마스가 전체 의석 132개중 76석을 휩쓰는 압승을 거두면서 하마스의 정책은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중동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됐다.

우선 며칠 안에 하마스가 정부 구성, 이스라엘·서방과의 관계 등에 대해 어떤 정책을 내놓을지가 ‘하마스 시대’의 방향을 알려주는 ‘나침반’이 될 것이다. 하마스 지도부는 26일 선거결과가 나오자마자 파타에 연립정부 구성을 제안했지만, 파타 지도부는 “야당으로 남겠다”며 즉각 거부의 뜻을 밝혔다.

지난 40년 동안 팔레스타인 정치를 주도해온 파타 지도부는 고작 43석을 얻으면서 참패했다. 이들이 연립정부 구성을 거부하는 것은 팔레스타인 내부에 균열을 일으키는 불안 요소가 되고 있다.

하마스의 유연한 변화? = 전문가들은 하마스가 최근 이스라엘과의 휴전 등 유연한 변화를 시도해 왔으며 정부를 책임지게 되면 “이스라엘 파괴” 같은 ‘강령’보다는 훨씬 실용적인 노선을 취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한다. 하마스 지도자 이스마일 하니야는 <비비시> 인터뷰에서 “걱정말아라, 하마스는 현실을 아는 성숙한 단체다. 팔레스타인 내부는 물론 이슬람 세계, 국제정치 무대에서도 개방적인 태도를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선거의 국제감시단원으로 현지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한국외대 홍미정 교수는 “하마스는 2003년께부터 ‘이스라엘과 공존하는 팔레스타인 국가수립’을 1차목표로 설정하는 등 현실적 대안을 찾는 모습을 보여왔으며, 최근에는 이스라엘과 협상 가능성도 내비쳐 왔다”고 지적한다. 중동정치 전문가인 유달승 한국외대 이란어과 교수도 “87년 하마스 설립 당시 팔레스타인 상황에선 하마스가 무장투쟁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지만, 현재 변화된 상황에서는 과거 노선만 고집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마스 우산 아래 출마한 후보와 지지자들 가운데는 이슬람주의 외에 다양한 세력들이 있으며, 하마스를 ‘이슬람주의’라는 잣대로만 보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한다.

높은 외부의 벽 = 하마스의 변신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외부의 반응은 차갑다. 특히 서방과 아랍 정부들이 이슬람주의 세력 강화를 초조하게 바라보고 있는데다 3월 이스라엘 총선이 다가오는 민감한 상황에서 하마스가 팔레스타인 정치를 좌우하게 되면서 현실에선 긴장이 고조될 가능성이 크다.

당장 이스라엘 안에서는 팔레스타인 총선 결과에 대한 공방이 벌어지면서 우익 정당 리쿠드당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리쿠드당의 베냐민 네타냐후 전 총리는 가자철수 등 정부의 양보정책 때문에 하마스가 승리하게 됐다며 “이란의 대리정권인 하마스국가(Hamastan)가 탄생했다”고 주장했다. <뉴욕타임스>는 이번 선거 결과의 영향으로 리쿠드당 승리 가능성이 커졌다며, 이스라엘 정부는 하마스와의 협상을 거부하면서, 일방적으로 팔레스타인과의 국경선을 획정하고 분리장벽을 계속 확장해갈 것이라고 예상했다.

최근 이집트와 팔레스타인 등 중동 전역에서 이슬람주의 목소리가 강화되는 것을 우려하는 미국도 강경하다.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은 26일 하마스와 대화할 수 없다고 강조하면서, “아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이 계속 수반직에 머물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선거를 통해 선출된 하마스 정부 대신 파타를 지원하는 듯한 미국의 이런 태도는 결과적으로 하마스와 파타 사이의 갈등을 유발하게 될 것이라는 지적이 많다.

미국 언론들은 미국 정부가 올해 1억5천만달러에 달하는 팔레스타인 원조자금 중단을 검토할 것이라고 보도했으며, 미 의회에서도 이같은 내용의 결의안이 추진되고 있다. 그렇지만 이들 서방 국가들 역시 원조를 중단할 경우 하마스가 이란과 밀착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어 이를 강행하기도 쉽지 않다고 <인디펜던트>는 전망했다.

또한, 자국내 이슬람주의 야당 세력의 약진으로 고심해온 요르단과 이집트 등 주변 아랍국 정부들도 이 지역 이슬람 정치세력화의 대표자로 떠오른 새 팔레스타인 정부를 편안히 바라보기는 힘든 상황이다.

팔레스타인 내부 엇갈리는 목소리 = 팔레스타인 내 일부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는 게 사실이다. <에이피(AP)통신>은 빈곤층과 거리의 행상 등 지지자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녹색 하마스 깃발을 흔들며 허공에 총을 쏘고 행진을 하며 기뻐했지만 경찰 등 공무원이나 부유층들은 걱정스러운 표정이라고 전했다. 하마스가 파타가 주도해온 자치정부내 10만여 관리들과 어떻게 유기적으로 결합할 수 있을지도 딜레마다.

가자시티의 경찰 라파트 아유브는 “파타의 참패는 맏을 수 없는 충격이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하마스와 파타의 충돌을 우려했다. 가자의 의류상인 아야드 알에질은 “하마스는 아직 정치를 할 준비가 돼 있지 않다”며 “팔레스타인 상인 대부분이 이스라엘과 교역을 하는 데 하마스가 유대인과 협상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고 불안해 했다.

박민희 기자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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