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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아시아·태평양

주민들 힘모아 재건한 학교…내전 상처 딛고 취학률 100%

등록 2014-01-05 20:25수정 2014-01-06 16:31

지난달 3일 오후 네팔 중부 바글룽주 아르갈의 실레초등학교 1학년 어린이들이 수업을 마친 뒤 밝은 표정으로 집으로 향하고 있다. 머리에 두른 ‘띠’는 가방끈이다.
지난달 3일 오후 네팔 중부 바글룽주 아르갈의 실레초등학교 1학년 어린이들이 수업을 마친 뒤 밝은 표정으로 집으로 향하고 있다. 머리에 두른 ‘띠’는 가방끈이다.
2014 기획
[분쟁의 땅, 희망의 교실] ③ 온 마을이 아이를 키운다
산은 높고, 저녁은 일찍 찾아왔다. 지난달 2일 네팔 중부 바그룽주 주도 바그룽바자르에 어둠이 깔리자, 밤 하늘에 별이 떴다.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많은 별이 검은 하늘을 뒤덮었다. 별은 산에도 떴다. 작은 도시를 둘러싼 저 높은 산 언저리마다 사람의 별이 떴다. 칠흙같은 어둠에 갇힌 산 사람들이 밝힌 전깃불이다. 산 위에서도, 산 아래만큼이나 많은 이들이 살고 있었다.

이튿날 이른 아침 바그룽바자르에서 출발한 자동차가 아르갈 읍내에 도착한 것은 점심 때가 다 돼서다. 30km 남짓한 거리를 4시간 가까이나 달렸다. 네팔 산악지역의 자동차 평균 시속은 10km 남짓, 딱히 길이랄 것도 없었다.

“27년 전 부임했다. 교사는 단 1명이었고, 30명 남짓한 학생이 건물도 없이 야외에서 수업을 했다. 하늘 아래가 그냥 교실이던 시절이다.” 아르갈의 실레초등학교에서 만나 파르마난다 가우탐(61) 교장은 “학교 참 많이 좋아졌다”는 말을 연방 입에 올렸다. 건물도 2동을 올렸고, 교사는 5명이나 된단다. 1학년부터 5학년까지 학생도 102명까지 늘었다. 흐뭇해할 만했다.

“어떤 정치단체도 교육 활동에 방해가 되는 행동을 할 수 없다. 학교에 대한 어떤 형태의 정치적 간섭도 배제한다. 카스트나 성별 등에 따른 어떤 차별도 금지한다. 체벌을 금하고, 평화 유지에 앞장선다.”

교무실로 들어서니, 한쪽 벽면에 대형 포스터가 걸려있다. 네팔 교육기자협회와 ‘학교평화지역’(SZOP) 전국 캠페인, 국제 구호개발 엔지오 세이브더칠드런이 주축이 돼 만든 정치인들의 ‘학교평화지역 선언문’이다. 네팔 주요 정당 지도자 대부분이 선언문에 서명을 했단다. 지난해 11월 총선에서 제1당이 된 국민회의당의 수실 퀘이랄라 대표는 “교육기관뿐 아니라 네팔 전역을 평화지역으로 선포하자”고 적었다.

네팔 마오주의 반군 근거지 바그룽
내전 뒤 학교를 평화지역으로 선포
정치적 간섭·차별 일체 없애려 노력
하층계급·소수종족에게도 교육혜택

학교 개선 위한 동네주민 참여 열성
시설보수에 일손 돕고 집 공간 내줘
취학전 어린이집·연계교육 덕분에
공부 습관 붙고 학업 성취도 높아져

동서로 길게 뻗어 있는 네팔은 △서부 평원 지역(토라이) △중부 구릉 지역(파하디) △동부 고산 지역(히말리) 등 크게 3개 권력으로 나뉜다. 8000m급 고봉(히말)이 즐비한 동부에 견줄 건 못되지만, 바그룽주가 속한 중부 일대도 1000~2000m급 산은 ‘구릉’(파할)으로 불릴 정도로 산세가 깊다. 1996년부터 10년 세월 이어진 내전 당시 마오주의 반군이 바그룽을 주요 활동무대로 삼은 것도 이런 지형에 기댄 바 크다.

하르카 마하도르(50) 실레초등학교 학교운영위원장은 “전쟁 땐 살기도 힘들고 위험해 선뜻 아이들을 학교에 보낼 생각을 못했다. 평화가 찾아온 뒤에야 아이들이 점차 학교로 돌아오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2006년 휴전을 전후로 ‘학교평화지역’ 선포 운동이 네팔 전역에서 활발하게 벌어진 이유다. 네팔 정부는 2012년 전국의 모든 학교를 ‘평화지역’으로 공식 선포했다.

좁다란 학교 앞마당 한 귀퉁이에선 마을 주민 30여명이 몰려나와 돌을 나르고 있었다. 산 중턱에 지어진 학교 터의 한쪽을 떠받치던 석축이 지난 우기 때 유실된 탓이다. 딸(1학년)과 아들(3학년)이 실레초등학교에 다닌다는 푸르나칼리 로카 마고르(35)는 “돈이 없으니, 힘이라도 보태야지” 하며 웃었다. 막내가 2학년이라는 미나 샤프로카(35)는 “학부모들이 3개조로 나눠 돌아가며 일손을 돕고 있다. 학교 일에는 마을 모두가 나선다”고 말했다. 언덕 아래 자그맣게 들어선 신축 교사도 외부 단체의 지원금과 학부모의 노고가 합쳐져 세워졌단다.

최근 몇 년 새 실레초등학교에는 ‘경사’가 겹쳤다. 학교 시설과 교구만 좋아진 게 아니다. 내전이 한창일 때 40%대에 머물던 취학률은 2011년부터 100%를 유지하고 있다. 성적도 전국 평균치를 웃돈다. 과학·영어 과목을 맡은 교사 빔 카르티(40)는 “5년 전에는 48점이던 학업 성취도 평가 성적이 올해는 54점까지 올랐다. 전국 평균치는 여전히 40점대 후반이다. 교사 연수 등으로 교육 프로그램이 나아진데다, 각종 연계 교육으로 교육의 질이 높아졌다”고 말했다.

그가 말한 ‘연계교육’은 크게 두가지다. 먼저 ‘어린이 조기개발 센터’(ECD)로 불리는 어린이집이다. 실레초등학교 1학년 19명 가운데 12명이 취학 전에 1년 넘게 어린이집 생활을 한 경험이 있다. 1학년 담임인 툴쉬 칸델(30) 교사는 “어린이집 생활을 한 아이들은 수업에도 적극적이고, 친구들과도 잘 어울린다”며 “아이들이 연필 쥐는 모습만 봐도 유치원에 다녔는지를 알 수 있을 정도”라고 말했다.

지난달 5일 이른 아침 네팔 중부 바글룽주 타라의 팔림 독서캠프에서 어린이들이 마룻바닥에 머리를 파묻고 교사가 불러주는 단어를 공책에 쓰고 있다.
지난달 5일 이른 아침 네팔 중부 바글룽주 타라의 팔림 독서캠프에서 어린이들이 마룻바닥에 머리를 파묻고 교사가 불러주는 단어를 공책에 쓰고 있다.

“집에서 흙이나 만지며 놀았는데, 뭔가 배워오는 게 대견하다. 혼자 씻는 버릇까지 생겼다. 벌써 시계도 볼 줄 알고,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까지 이름 쓰는 법도 배울 거다. 내가 클 때와는 전혀 다르다.” 마을 어린이집에서 만난 학부모 간가 비케이(20)는 큰아들 굴산(4) 자랑을 하며 흐뭇하게 웃었다. 이름에 붙은 ‘비케이’는 그가 이른바 ‘달릿’(불가촉천민) 출신임을 뜻하는 주홍글씨다. 간가는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했단다.

2008년에야 왕정이 무너진 네팔에선 헌법으로 카스트 제도를 금했다. 하지만 일상에 뿌리내린 고대의 제도는 쉽게 사라지지 않고 있다. 세이브더칠드런의 후원을 받아 바그룽 일대에서 교육지원사업을 주도하고 있는 가자청년클럽(GYC) 활동가 디나나스 아카리아(30)는 “기존 교육 체계에서 소외된 아이들을 집중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바그룽 지역에서 어린이집에 다니는 아이들 절반 이상은 달릿 또는 ‘자나자티’(소수 종족) 출신”이라고 말했다.

취학 이후의 ‘연계교육’은 읽기·쓰기 능력 향상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집집마다 방 한 켠을 ‘공부 코너’로 정해, 아이들이 평소에도 읽고 쓰기에 가까워질 수 있도록 배려했다. 학교가 쉬는 토요일에는 ‘독서 클럽’이 아이들을 기다린다. 초등학교 1~2학년생을 대상으로 읽기·쓰기의 ‘습관화’를 위해 마련된 프로그램이다.

지난달 5일 이른 아침, 아르갈 인근 타라 지역의 팔림 독서클럽을 찾았다. 너비가 2m나 될까? 가정집 2층의 비좁은 마루바닥에 어린이 19명이 빼곡하다. 빛바랜 공책과 몽당연필, 때묻은 지우개 하나씩을 앞에 둔 아이들은 이른 아침의 한기를 피하려고 모자며 숄 따위를 뒤집어 쓰고 있다. 노래와 게임으로 흥을 돋우고 나면, 낱말퀴즈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수업이 시작된다. 문장쓰기 연습이 이어지고, 옛날 이야기도 들려준다. 교과서 내용을 그림으로 그려 발표를 하고, 숙제까지 내주고 나면 2시간이 훌쩍이다.

독서클럽 공간을 내준 주민 파슈파티 칸델(65)은 “집에서 침실과 창고로 쓰던 곳이다. 집이 동네 한가운데 있어, 아이들이 오가기 편하다고 학교에서 부탁하기에 흔쾌히 수락했다. 아이들 읽는 소리를 들으면 절로 기분이 좋아진다”고 말했다. 이런 식으로 운영되는 독서클럽은 아르갈·타라 등 바그룽주 일대에서만 모두 63곳에 이른다. 현지 활동가 랄 바하두르 푸르자(27)는 “이 모든 프로그램이 ‘미래를 새로 쓰자’는 구호 아래 운영되고 있다”며 “마을 공동체가 직접 나서 아이들의 미래를 만들어 가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끝>

아르갈·타라(네팔)/글·사진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외부지원 의존보단 마을이 나서야”

교육사업 이끄는 GYC 활동가 초드리

‘가자청년클럽’(GYC) 활동가 딜 카말 초드리(29)
‘가자청년클럽’(GYC) 활동가 딜 카말 초드리(29)

“외부 지원은 언젠가는 끊긴다. 교육지원사업이 지속 가능하려면, 결국 마을 공동체가 나서야 한다.”

지난달 6일 오전 네팔 바그룽주 주도 바그룽바자르의 사무실에서 만난 ‘가자청년클럽’(GYC) 활동가 딜 카말 초드리(29·사진)는 이렇게 강조했다. 1993년 창립한 이 단체는 국제 구호개발 엔지오 세이브더칠드런의 협력단체로 바그룽주 일대 교육지원사업을 이끌고 있다.

주민 힘모아 교육기금 마련하면
후원 단체서 같은 액수 기금 내
학교운영에도 학부모 참여 보장

지역 공동체의 참여를 이끌어내려고 가자청년클럽이 택한 방법은 ‘매칭펀드’다. 마을 주민들이 노력해 만들어낸 교육기금 액수만큼 가자청년클럽도 후원금을 모아 주는 방식이다. 이를테면, 타라 지역 말라라니 마을의 초·중등학교에선 2년째 학교 터에 텃밭을 마련해 감자를 심고 있다. 초드리는 “학생과 학부모가 공동 경작해 수확한 감자를 시장에 내다 팔아 학교 기금을 모으면, 가자청년클럽도 똑같은 액수를 내놓는다”고 말했다.

학교 운영 전반에 대한 마을 공동체의 참여는 학교운영위원회(학운위)를 통해 체계적으로 이뤄진다. 3년 임기인 학운위는 모두 9명으로 구성된다. 학부모 총회에서 위원장을 선출한다. 교사 대표와 교장이 당연직으로 참여한다. 여기에 여성위원과 재정위원, 브라만부터 ‘달릿’(불가촉천민)까지 4개 카스트를 대표하는 학부모 위원을 뽑는다. 이들은 매달 회의를 열어 학교 운영 전반은 물론 재정 마련 대책을 논의한단다.

아르갈·타라 등 바그룽주 전역에서 속속 ‘초등학교 취학률 100%’를 이룬 것도 학운위를 매개로 한 마을 공동체의 참여가 절대적인 구실을 하고 있다. 초드리는 “극빈 가정에서 자녀들을 학교에 보내면, 학운위와 마을 자치회에서 기금을 마련해 최소한의 식량을 지원해주는 지역이 늘고 있다”며 “타라 등지의 일부 마을에선 마을 자치회에서 아예 (초등학교) 자체무상교육을 선언하고, 교사 급여와 학용품 등에 필요한 경비를 스스로 조달하는 곳도 있다”고 전했다.

외부의 지원을 받게 되면, 네팔 정부의 교육예산은 되레 줄어든다. 가자청년클럽이 지역 별로 지방자체단체와 지역 정치인, 학부모와 교육청 등을 설득해 ‘지역별 교육재정위원회’(관식샤 바카리) 구성 작업에 매달리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위원회는 애초 22년 전 네팔 정부가 법령으로 구성을 의무화했지만, 그간 실효성이 전혀 없었단다. 초드리는 “위원회를 통해 모든 이해당사자가 나서 교육재정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려 애쓰고 있다”며 “교육은 미래를 위한 의무이자, 시민으로서 누려야 할 권리라는 인식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바그룽바자르(네팔)/글·사진 정인환 기자


왕정 끝났어도 정치 불안 여전

네팔 분쟁사

공화정 수립 외치던 마오주의자들
1996년부터 12년동안 정부와 전쟁
2008년 왕정 폐지뒤 헌법 못만들어

1768년 피리트비 나라얀이 네팔을 통일한 이래, 네팔의 샤 왕조는 두세기를 넘겨가며 군림했다. 네팔은 1990년까지도 절대왕정 국가였다. 그해 공화정을 요구하는 성난 외침이 거세지자 비렌드라 국왕은 입헌군주제를 받아들였다. 이듬해 사상 첫 의회 선거가 치러졌다.

첫 선거에서 제1당에 오른 네팔 국민회의당은 1994년 선거에서 네팔공산당(마르크스-레닌주의당)에 패배했다. 하지만 정치권에 대한 왕실의 입김은 계속됐고, 정정 불안이 장기화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좌파정당 내부가 분열하자, 1996년 2월 공산당 내 마오쩌둥주의자들이 떨어져 나와 공화정 수립을 외치며 총을 들었다. ‘인민의 전쟁’으로 불린 내전의 시작이다. 2009년 네팔 평화재건부가 집계한 자료를 보면, 2006년 11월까지 10년여 이어진 내전으로 모두 1만5000여명이 목숨을 잃었다.

내전이 한창이던 2001년 6월 왕실 행사 도중 술에 취한 디펜드라 왕자가 부왕을 비롯한 일가족을 몰살하고 자살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왕위를 이은 이는 비렌드라 국왕의 동생 갸넨드라였다. 호시탐탐 절대왕정 복원을 노리던 갸넨드라는 2005년 2월 친위쿠데타를 일으켜 의회를 해산했다.

저항의 불길이 거세졌다. 국민회의당·네팔공산당을 비롯한 7개 주요 정당은 즉각 공동전선을 구축했다. 국왕은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총을 내려놓고 정치권에 복귀한 마오주의 공산당은 2008년 4월 치러진 총선에서 일약 제1당에 올랐다. 그해 5월 네팔은 왕정을 폐지하고, 공화정을 수립했다.

그것으로 네팔의 시련이 끝난 것은 아니다. 제1당인 마오주의 공산당은 주류 정치권의 ‘왕따’ 속에 제 구실을 하지 못했다. 제헌의회는 헌법 초안 작성에 실패한 채 임기를 마쳤다. 지난 11월 말 치러진 총선에선 국민회의당이 다시 제1당에 올랐다. 장기간 이어진 정정 불안과 마오주의자의 ‘무능’이 겹치며 여론이 등을 돌린 게다. 선거를 치른 지 두달이 돼가지만, 네팔 제헌의회는 여전히 개회조차 못하고 있다.

정인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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