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산둥성 칭다오 청양구의 한 한국 장신구 제조업체에서 26일 오전 중국인 노동자들이 해외로 수출할 장신구를 만들고 있다. 이 업체에선 500여명의 중국인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다.
중 산둥성 ‘기업환경 급변’ 한국기업 생사 갈림길
인건비 상승 토지세·보험비 부담…200곳 짐싸
‘위기는 기회’ 고부가가치 업종 새 도전도 급증 25일 중국 산둥성 옌타이. 칭다오 주재 한국총영사관과 옌타이 시정부 간부들이 굳은 표정으로 마주앉았다. 지난 12일 한국인 회장을 비롯한 임직원들이 훌쩍 떠나버린 세강섬유 사태를 논의하기 위해서였다. 중국인 노동자 1200여명은 가동을 멈춘 공장에 출근을 계속하며 하루 아침에 생계를 잃은 울분을 토로하고 있다. 춘제(설)가 다가오는데도 고향으로 돌아갈 차비 한 푼 없다며 발을 구르는 이들도 적지 않다.
26일 칭다오의 장신구 제조업체 도남공예품유한공사. 500여명의 중국인 노동자들이 미국과 유럽으로 수출할 각종 장신구를 만드느라 여념이 없다. 올해로 중국 진출 11년째를 맞은 이 업체는 올해 매출목표를 5천만달러로 잡고 연일 공장을 풀가동하고 있다. 해마다 17%가 넘는 성장세를 기록한 탓인지 임직원들의 표정에는 자신감이 서렸다. 점심시간이 되자 직원들이 떼를 지어 식당에 들어서는 소리가 시끌벅적하다.
산둥성에 진출한 한국 중소기업들 사이에 생사의 명암이 엇갈리고 있다. 한쪽에선 경영난을 견디다 못해 쓰러진 잔해가 즐비하고, 다른 한쪽에선 생산을 독려하는 구호가 요란하다. 이제 이곳에선 기업 못해먹겠다는 아우성과 새로운 기회를 잡으려 체력을 다지는 소리가 교차한다. 한국 기업들의 거대한 생존 게임이 마침내 승부를 향해 치닫고 있는 듯하다.
일부 중소기업들은 이미 ‘백기’를 들었다. 칭다오에 진출한 600여 장신구 제조업체들의 모임인 한국공예품협회는 요즘 줄초상을 맞은 분위기다. 인건비와 원자재값이 치솟는 상황에서 토지사용세 납부 및 사회보험 가입 등 새로운 비용이 돌출하면서 영세업체들이 속절없이 무너지고 있기 때문이다. 설규종 한국공예품협회 회장은 “중국의 기업환경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영세기업들의 피해가 심각하다”고 말했다.
이른바 ‘야반도주’라는 비정상적인 철수도 횡행하고 있다. 2005년 이후 이런 식으로 칭다오를 떠난 중소기업이 200곳을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지난해에만 80여곳이 도망치듯 짐보따리를 쌌다. 세강섬유의 경우, 180만위안의 체불임금과 3000만위안의 채무를 옌타이에 고스란히 남겼다. 2006년엔 신일피혁과 신오피혁이 각각 300여명의 노동자들을 길거리로 내몰았다. 유의상 칭다오 부총영사는 “한국 기업의 무단철수가 낳은 가장 큰 피해자는 중국인 노동자들”이라며 “기업주가 이들의 임금만은 책임지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바람에 한국 기업들을 보는 중국인들의 눈길도 싸늘해졌다. 어떤 기업이 철수를 고려한다는 소문이 돌면 갑자기 전기와 수도가 끊긴다. 한국인 사장이 서울행 비행기표를 끊으면, 야반도주를 하려는 게 아니냐는 의심으로 번진다. 이 과정에서 물리적 폭력이 가해지기도 한다. 24일 칭다오에선 한 한국인 사장이 중국인 채권자들에게 감금돼 폭행을 당했다. 한국인 사장은 감시를 피해 옆집으로 몸을 피한 뒤 가까스로 경찰에 도움을 청했다.
그러나 승자들은 새로운 기회를 노린다. 중국의 정책이 저임금에 기반한 저부가가치 산업을 도태시키려는 구조조정을 목표로 하는 만큼, 이 시기를 견뎌내면 시장질서가 한층 정비될 것이라는 기대를 품고 있다. 성정한 칭다오한국상회 사무국장은 “한국에서 이미 경험한 도태의 과정이 지금 중국에서도 진행되고 있다”며 “중국의 정책변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적응력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산둥성은 한국 중소기업의 중국 진출을 상징하는 곳이다. 섬유·봉제·피혁·완구 등 한국에서 사양길에 접어든 노동집약형 중소기업들이 살길을 찾아 너도나도 이곳으로 건너왔다. 지난해 말 현재 칭다오의 외자기업은 모두 8059곳으로, 이 가운데 한국 기업이 4081곳에 이른다. 외자기업 두 곳 가운데 하나는 한국에서 왔다는 얘기다. 산둥성은 경제 개발을 위해 이들 한국 기업을 반갑게 맞아들였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바뀌었다. 세금 감면과 대출 편의 등 각종 ‘특혜’가 줄어들고, 부가가치세 환급 폐지와 토지사용세 부과 등 ‘박해’가 늘어났다. 올해부턴 노동자들의 종신고용을 유도하고, 사회보장 가입을 강제하는 각종 규제가 발효했다. 원자재값 상승과 인건비 증가로 허덕이는 한국 중소기업들 처지에선 한꺼번에 재앙이 닥친 셈이다. 한국대사관 관계자는 한국 기업 가운데 5% 정도는 결국 정리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글·사진 칭다오/유강문 특파원 moon@hani.co.kr
‘위기는 기회’ 고부가가치 업종 새 도전도 급증 25일 중국 산둥성 옌타이. 칭다오 주재 한국총영사관과 옌타이 시정부 간부들이 굳은 표정으로 마주앉았다. 지난 12일 한국인 회장을 비롯한 임직원들이 훌쩍 떠나버린 세강섬유 사태를 논의하기 위해서였다. 중국인 노동자 1200여명은 가동을 멈춘 공장에 출근을 계속하며 하루 아침에 생계를 잃은 울분을 토로하고 있다. 춘제(설)가 다가오는데도 고향으로 돌아갈 차비 한 푼 없다며 발을 구르는 이들도 적지 않다.
중국 정부의 기업정책 변화
그러나 승자들은 새로운 기회를 노린다. 중국의 정책이 저임금에 기반한 저부가가치 산업을 도태시키려는 구조조정을 목표로 하는 만큼, 이 시기를 견뎌내면 시장질서가 한층 정비될 것이라는 기대를 품고 있다. 성정한 칭다오한국상회 사무국장은 “한국에서 이미 경험한 도태의 과정이 지금 중국에서도 진행되고 있다”며 “중국의 정책변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적응력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산둥성은 한국 중소기업의 중국 진출을 상징하는 곳이다. 섬유·봉제·피혁·완구 등 한국에서 사양길에 접어든 노동집약형 중소기업들이 살길을 찾아 너도나도 이곳으로 건너왔다. 지난해 말 현재 칭다오의 외자기업은 모두 8059곳으로, 이 가운데 한국 기업이 4081곳에 이른다. 외자기업 두 곳 가운데 하나는 한국에서 왔다는 얘기다. 산둥성은 경제 개발을 위해 이들 한국 기업을 반갑게 맞아들였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바뀌었다. 세금 감면과 대출 편의 등 각종 ‘특혜’가 줄어들고, 부가가치세 환급 폐지와 토지사용세 부과 등 ‘박해’가 늘어났다. 올해부턴 노동자들의 종신고용을 유도하고, 사회보장 가입을 강제하는 각종 규제가 발효했다. 원자재값 상승과 인건비 증가로 허덕이는 한국 중소기업들 처지에선 한꺼번에 재앙이 닥친 셈이다. 한국대사관 관계자는 한국 기업 가운데 5% 정도는 결국 정리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글·사진 칭다오/유강문 특파원 m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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