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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자금 스캔들 조사받아
10년전 지지율 83%→26%
5월 퇴진방안 논의 ‘망신’
10년전 지지율 83%→26%
5월 퇴진방안 논의 ‘망신’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의 집권 10년이 불명예로 얼룩져 가고 있다. 1997년 40대의 최연소 총리로 취임한 뒤, 역대 최고의 노동당 당수로 평가되던 그가 오는 5월 취임 10년을 앞두고 거센 조기퇴진 압력에 시달리고 있다.
조지 부시 대통령과 함께 앞장선 이라크 전쟁은 지난 4년간 그의 인기를 갉아먹었다. 최근에는 그를 전범으로 표현한 텔레비전 풍자극까지 등장했다. 각료들의 부정 및 그의 10년 장기집권에 따른 ‘지겨움’도 인기를 떨어뜨렸다. 교육, 의료 같은 공공서비스 등 정치·경제 개혁을 과감히 추진했다는 평가도 점점 퇴색하고 있다.
최근의 정치자금 추문은 치명적인 타격을 줬다. 그는 지난달 26일 두 번째 경찰조사를 받았다. 영국에서 현직 총리가 두 번씩이나 경찰 조사를 받기는 처음이다. 집권 노동당이 2005년 총선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1400만 파운드(약 260억원)의 정치자금을 비밀리에 대출받은 뒤, 그 대가로 상원의원 후보로 지명해줬다는 게 추문의 핵심이다.
이런 추문은 그의 지난 10년간 화려한 발자취를 빛바래게 하고 있다. 전통적 좌파노선 대신 중도좌파 ‘제3의 길’을 내걸어 18년 보수당 장기집권을 끝내고, 3회 연속 총선 승리를 일군 신화도 빛을 잃고 있다. 집권 노동당은 이미 2005년 총선과 2006년 지방선거에서 타격을 입었다. 이 때문에 블레어 총리는 임기를 3년여 남겨놓고서 오는 7월께 물러날 계획이었다. 지난 9월 “1년 안에 물러나겠다”고 밝힌 뒤 사실상 ‘레임덕’에 시달렸다.
정치자금 추문 등 최근의 상황은 블레어의 운명을 더욱 불투명하게 만들고 있다. 보수당의 데이비드 캐머런 당수는 1일 “국익을 위해 지금 당장 총리직에서 물러나야 한다”고 요구했다. 전체 정치권과 영국의 대외 이미지를 실추시킨다는 것이다. <선데이익스프레스>가 4일 발표한 여론조사에서는 영국인 56%가 당장 블레어 총리가 물러나야 한다고 대답했다. 1997년 취임 때 83%까지 올랐던 지지율은 26%까지 떨어졌다.
노동당 안에서도 조기퇴진 주장이 불거지고 있다. <업저버>는 노동당 내에서 5월3일 치러지는 지방선거 이전에 블레어 총리가 퇴진 날짜를 발표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고 전했다.
조기퇴진을 반대하는 목소리도 만만찮다. 퍼트리샤 휴잇 보건장관은 “경찰 조사가 명예를 실추시키고 있지만, 총리가 물러날 사안은 아니다”라고 옹호했다. 블레어 총리도 2일 “조사 결론이 나기 전에 물러나는 것은 옳지 않다. 좀더 참고 기다려야 한다”고 조기퇴진 주장을 일축했다.
하지만 총리 본인은 물론 기금 모금자 등 측근이 기소될 경우, 조기퇴진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비비시>(BBC)는 “블레어 총리가 지금은 퇴임 시기를 선택할 수 있지만, 상황이 나빠지면 다른 사람들이 퇴진 일정을 결정할 수 있다는 점을 깨닫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순배 기자 marcos@hani.co.kr
김순배 기자 marco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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