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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유럽

빈곤대책 쏟아내도 아직 먼 ‘제3의 길’

등록 2007-02-26 21:23

세계는 양극화와 전쟁중 ④ 영국
보수당도 “가족붕괴 등 근본원인 없애야” 목소리 높여
정부 ‘구직유인’ 노력에도 소득차·어린이 탈선 등 심각

요즘 영국에서는 양극화 해법을 둘러싸고 공수가 뒤바뀌는 양상이 벌어지고 있다. 전통적으로 소득 격차와 빈곤 문제에 침묵을 지켜오던 보수당이 오히려 양극화 해소에 더 큰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런 변화의 중심에는 40대의 보수당 당수 데이비드 카메론이 있다. 그는 지난해 초부터 “빈곤을 해결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중요한 책임”이라며 강력한 빈곤척결 정책을 촉구하고 있다. 그는 “노동당처럼 세금과 급여를 통한 소득 재분배 정책으로는 한계가 있는 만큼 가난이 발생하는 근본원인을 제거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보수당은 빈곤의 원인을 △실업 △낮은 수준의 교육 △가족붕괴 △높은 부채와 복지의존 등으로 파악하고 있다. 실업과 교육에 중점을 둔다는 점에서는 노동당과 큰 차이가 없지만, 가족붕괴 문제를 강조하면서 빈곤에 처한 한 부모 가정에 대한 대대적인 지원을 주장하고 있다. 보수당은 최근 영국 어린이들이 주요 선진국 중 가장 열악한 처지에 놓여 있다는 유니세프(유엔아동기금)의 보고서가 나오자 “노동당이 10년 간 펼친 정책의 결과가 고작 이것이냐”고 몰아붙였다.

카메론 당수와 보수당의 이런 접근법은 진보진영과 언론을 어리둥절하게 만들고 있다. 새정책연구소 소장인 피터 캔웨이는 “카메론의 발언은 이전 세 명의 보수당 당수들에게서는 들을 수 없었던 것”이라며 “카메론이 주장하는 내용은 노동당의 정책과도 상당 부분 맥을 같이하고, 빈곤으로 인한 가족붕괴 등에 대한 정책은 오히려 더 적극적”이라고 평가했다.

 영국의 실직자들이 런던 시내에 있는 취업알선 단체인 ‘헨던 잡센터 플러스’에서 구직활동을 하고 있다. 영국 노동당 정부는 실업자들에게 적극적인 구직행위와 기초보장 급여 지원을 연계하는 등 빈곤층 대책을 마련하고 있지만, 뚜렷한 효과를 거두지는 못하고 있다. 런던/이종찬 선임기자 rhee@hani.co.kr
영국의 실직자들이 런던 시내에 있는 취업알선 단체인 ‘헨던 잡센터 플러스’에서 구직활동을 하고 있다. 영국 노동당 정부는 실업자들에게 적극적인 구직행위와 기초보장 급여 지원을 연계하는 등 빈곤층 대책을 마련하고 있지만, 뚜렷한 효과를 거두지는 못하고 있다. 런던/이종찬 선임기자 rhee@hani.co.kr

영국 사회에서 양극화 문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1979년 마거릿 대처가 정권을 잡은 이래 규제 완화와 공공부문의 민영화 등 강력한 신자유주의 정책을 펼치면서 소득 격차의 골은 깊어만 갔다. 양극화 추세는 존 메이저 전 총리 시대(1990.11~97.5)에 약간 주춤했지만, 노동당 집권 이후 정점에 달했다. 2000년대 초에 이르러 소득 격차, 그리고 그로 인한 빈곤율은 최악의 상태에 이르렀다.

토니 블레어 총리는 97년 집권한 이후 ‘제3의 길’을 주창하면서 새로운 번영과 발전을 약속했다. 하지만 집권 후 오히려 빈곤으로 붕괴하는 가정이 늘고, 어린이의 마약·섹스 등의 탈선 문제가 빈번해졌다. 당황한 노동당 정부는 2000년대 초부터 ‘반 빈곤전략(anti-poverty strategy)’이란 이름 아래 각종 대책들을 줄줄이 발표하고 있다.

이 전략의 가장 큰 특징은 빈곤에 극히 취약한 어린이와 노인 등 ‘연금 생활자’를 핵심 정책대상으로 삼는 것이다. 이들을 대상으로 세금 공제와 급여·수당의 대폭 확대가 이뤄지고 있다. 특히 어린이를 위한 교육·건강·사회적 돌봄 등을 종합적으로 제공하는 정책을 실시했다. 2004년에 발표된 ‘어린이 법(Child Act 2004)’이 대표적인 예다.


빈곤 탈출 전략의 또 다른 특징은 젊은이 등 일할 능력이 있는 사람에게는 철저하게 ‘일’을 하도록 유인하는 강력한 조처를 한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실업자가 근로를 거부해도 기초생계보장 차원에서 급여를 지원했지만, 이제는 정부가 제시하는 취업 프로그램에 적극 참여하지 않으면 급여를 아예 중단한다. ‘신고용협정(New Deal)’ 정책이 대표적이다. 장애인, 한 부모 가정, 장기 실업자, 젊은이 등을 대상으로 협약을 체결하고 적극적인 구직행위와 직업교육 참여를 요구한다. 여기에는 빈곤을 탈출하려면 무엇보다 ‘일’을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영국 정부의 철학이 깔려 있다.

2000년대 초부터 양극화와의 전쟁에 돌입한 영국 정부의 노력은 어느 정도 결실을 맺었을까? 지난해 말 발표된 조셉 론트리 보고서는 회의적인 평가를 내놓았다. 보고서는 “일부 개선이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소득격차가 확대되고 있다”며 “일하는 노동자 중에서도 여전히 빈곤에 허덕이는 사람의 비율이 높은 것으로 나타나 일이 빈곤의 핵심대책이라는 빈곤탈출 전략은 수정돼야 한다”고 비판했다.

이와 달리 영국 정부는 1999년부터 2005년 말까지 700만명의 어린이와 10%의 연금생활자 등이 빈곤에서 탈출하는 데 성공했다며 홍보에 열을 올렸다. 그러나 이런 홍보는 14일 발표된 유니세프 보고서로 빛을 잃었다. 유니세프 보고서는 영국 어린이들이 약물·폭력·섹스 등에 다수 노출돼 있고, 부모 및 친구들과 관계도 매우 나쁜 것으로 조사됐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를 작성한 조나던 브라더쇼 영국 요크대학 사회정책학과 교수는 “영국은 매우 불평등하고 높은 수준의 빈곤율을 보이고 있다”며 “이로 인해 많은 조사 영역에서 어린이들이 한결같이 나쁜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단순히 어린이 빈곤 대책만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복지·교육·사회적 환경 등 각종 분야에서 아직도 가야할 길이 멀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복지국가 대신 기업의 각종 규제를 풀면서 ‘경쟁국가(competition state)’로 변모를 추진해온 영국이 악화하는 양극화의 파고를 어떻게 헤쳐나갈지 지켜볼 일이다.<끝>

런던/전용호 통신원 chamgil5@hotmail.com


영국 런던 지하철 킹스크로스역에서 인도계로 보이는 노동자가 야간작업을 하고 있다. 밤을 새면서 일을 하지만 그가 받는 시급은 6.05파운드(약 11,000원)에 불과하다.
영국 런던 지하철 킹스크로스역에서 인도계로 보이는 노동자가 야간작업을 하고 있다. 밤을 새면서 일을 하지만 그가 받는 시급은 6.05파운드(약 11,000원)에 불과하다.

심각한 소득격차

살인적 물가에 허덕이는 빈곤층 19%
상위 20%계층 소득, 하위층의 16배

“주로 늦은 밤부터 청소를 시작합니다.”

캠벨(43)은 런던 지하철 역에서 청소일을 하고 있다. 3년 전부터 이 일을 시작한 그는 사람들이 퇴근한 뒤 일을 시작해 사람들이 출근하기 전 새벽에 집으로 돌아간다. 밤을 새우면서 일을 하지만 그가 받는 시급은 6.05파운드(약 1만1천원)이다. 가장 싼 지하철 일일 티켓값인 6.70파운드도 안 된다.

“시간당 6파운드로는 런던에서 살기가 너무 힘들어요. 월세 내는 것도 빠듯하죠.”

가나에서 건너온 그는 낮 시간에는 식당에서 잡일을 한다. 4명 가족의 생계를 꾸려나가느라 피곤한 모습이었다.

런던은 영국에서도 소득의 ‘빛과 그늘’이 가장 극명하게 교차하는 공간이다. 캠벨처럼 청소나 잡일 등의 일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에게 런던의 살인적 물가는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다. 반면,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시티뱅크, HSBC, 바클레이즈 등 세계적인 금융기관이 즐비한 스퀘어 마일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은 매년 급증하는 연봉에 행복한 비명을 지르고 있다고 영국 언론들은 전한다. 이들의 평균연봉은 10만파운드(약 1억8천만원)를 돌파했다.

영국은 유럽에서도 소득격차가 심하고 빈곤율이 높은 국가 중 하나다. 2005년 말 기준으로 전체 인구의 19%인 1150여만명이 빈곤에 처해 있다. 여기서 빈곤의 기준은 그해 평균 가구소득의 60%에 미치지 못하는 소득을 올리는 가구다. 영국은 폴란드·리투아니아·스페인 등과 함께 유럽에서 빈곤율 상위국가를 형성하고 있다.

유럽 국가들의 빈곤상태를 유형별로 살펴보면, 스웨덴·덴마크·핀란드 등 복지 최선진국인 ‘북부 유럽형’ 복지국가의 빈곤율이 가장 낮다. 반면 복지가 상대적으로 취약한 그리스·포르투갈·스페인 등 ‘남부 유럽형’ 국가와, 기업규제 완화에 선도적인 영국과 아일랜드 등의 ‘자유주의형’ 국가들은 높은 빈곤율을 기록하고 있다. 특히, 영국의 경우 스웨덴에 비해 두 배 가량 높은 빈곤율을 보이고 있다.

영국 통계청이 지난해 발표한 보고서를 보면, 2005년 말 기준으로 상위 20% 계층의 가구소득은 6만6300파운드(약 1억2156만원)로 하위 20% 계층의 4300파운드(약 788만원)보다 무려 16배가 많았다. 이는 세금을 공제하기 전의 원래 소득으로 정부의 조세, 복지정책 등이 반영된 세금과 각종 급여 등을 포함하면 그 격차는 4배 정도로 줄어든다. 상위계층에서 떼어낸 세금 등이 아동급여·장애인 급여·연금·소득지원 등의 다양한 형태로 저소득 계층에게 지원되면서 소득 재분배의 기능이 작동하는 것이다.

이는 수 년간 영국 정부의 노력에 의해서 일부 개선된 수준이지만, 아직도 그 격차는 심각한 수준이다. 조셉 론트리 보고서는 영국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부터 부유한 사람까지 10개의 등급으로 나누었을 때 지난 10년간 하위 10번째 계층이 전체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2%에 불과한 반면, 가장 부유한 상위 계층은 전체의 29%를 소유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런던/전용호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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