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프랑크푸르트 중심가에 위치한 유럽중앙은행(ECB) 앞에 세워진 대형 유로화 상징물 밑으로 시민들이 지나가고 있다.
달러 위협하는 통화로 ‘우뚝’
“귀찮게 환전할 필요가 없어 너무 편하다.”
유럽 현지에서 ‘유럽연합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가장 많이 들은 답이다. 독일인 요한 사프 역시 지난 여름 스페인에 가면서 “유럽을 하나로 묶어주는 유로화의 위력을 실감했다”고 말했다.
가장 많이 돌아오는 불만 역시 유로화 문제였다. 벨기에인 재글링 정커는 “유로화 때문에 택시비 등 물가가 너무 올랐다”고 말했다.
유로화는 오늘날 유럽 통합의 상징이자, 최대의 성과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1993년 관세장벽을 허물고 단일시장을 이뤄낸 이후 2002년 1월 유로화가 유통되기까지 유럽연합의 역사는 경제통합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로화를 기초로 한 경제통합은 정치적 통합으로 발전해 가고 있다. 유로화는 27개 회원국 가운데 13개 나라가 채택해 사용하고 있다.
유로화의 성장은 눈부시다. 시장에 유통된 지 5년 만에 달러화를 위협하는 세계 2대 통화로 자리잡았다. 13개 나라 3억1500만명이 공식화폐로 사용하고 있다. 유로화는 유로존 밖에서도 실질적으로 기능한다. 폴란드는 공식화폐로 유로화를 채택하지 않았다. 하지만 북부도시 체친에 가서 택시기사에게 유로화를 내놓으니 아무 문제가 없었다.
유럽중앙은행 자료를 보면, 유로화의 시중 유통량은 2002년 3320억유로(약 413조6820억원)에서 지난해 말 5780억유로로 늘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유로화의 시중 유통량이 지난해 10월 달러화를 추월했다고 추산했다. 유로화가 세계 기축통화의 자리를 넘보고 있는 것이다.
25일 유럽연합 50돌을 기념해 27개국 정상들이 채택한 ‘베를린 선언’은 유로화로 상징되는 경제통합에 대한 자신감이 짙게 배어 있다. 선언은 “공동시장과 유로화는 우리를 강하게 만들었다”며 “우리는 세계경제의 상호의존성이 증가하고 세계시장에서 갈수록 경쟁이 심해지는 상황에서 우리의 가치를 만들어갈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벨기에 유럽정책연구소 마이클 에머슨 박사는 “유로화의 발전은 유럽통합의 가속화를 나타내는 상징”이라며 “유로화는 회원국간의 경제적 차이를 극복하고 통합을 더욱 가속화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세계 기축통화를 넘보는 유로화의 힘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그것은 국경없는 단일시장,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한 높은 경쟁력에서 비롯됐다. 통합된 단일시장에서 모든 상품과 서비스는 치열한 경쟁을 펼쳐야 한다. 또 통합은 수송에 필요한 비용과 시간을 줄이고, 소비자에게는 더 다양한 상품의 선택이 가능하도록 했다. 유로화의 성공에 힘입어 유럽연합은 역내 소비자 4억9천여만명을 거느리며 세계 수출입의 18%를 차지하는 세계 최대 단일시장으로 발돋움했다. 전체 무역의 60%에 달하는 회원국간 역내 무역도 서로에게 이익을 주고 있다. 독일 외무부 유럽연합국 하디 버클러 부국장은 “우리는 유럽연합이라는 도구를 통해 세계무역기구(WTO) 등 경제분야에서 공동의 이익을 얻고 있다”고 말했다. 국제통화기금(IMF) 자료를 보면, 지난해 유럽연합 25개 회원국의 국내총생산(GDP)은 14조2천억달러였다. 이는 미국의 13조3천억달러를 뛰어넘은 것이다. 같은 해 회원국 평균 경제성장률은 2.9%로 2000년 이래 최고를 기록했다. 실업률은 지난해 12월 7.6%로 8년 만에 최저치로 떨어졌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유로존의 올해 경제성장률을 2.5%로, 미국의 2% 보다 높게 내다봤다. 서울대 국제대학원 문우식 교수(유럽경제)는 “유로화는 외환보유고를 늘리며 외환위기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점만으로도 안정적인 거시경제 운용 면에서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유로화의 미래가 밝은 것만은 아니다. 당장 유럽인들이 피부로 느끼는 물가불안 등 체감경기는 좋지 않다. 최근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물가가 진짜 올랐나’라는 책자를 내어 유럽인들 달래기에 나섰다. 집행위는 책자에서 “물가상승률이 유로화 도입 뒤 연평균 2.4%를 넘은 적이 없다”며 유럽인들의 ‘오해’를 털어내기에 바빴다. ‘유럽연합이 내 삶에 도움이 된다’는 지지는 정치·사회적 통합을 가속화시킬 수 있는 원천이다. 때문에 체감경기는 중요하다.
회원국들간의 불균등 발전도 문제다. 경제 격차가 큰 회원국들이 함께 묶여 있고, 유럽중앙은행에 통화정책 결정권을 넘겨줌으로써 개별 국가에 필요한 경제정책을 펴는 데 필요한 유연성이 떨어졌다는 지적도 많다. 유로존 13개 나라의 1인당 국내총생산은 늘고 있지만, 아직 미국보다 30%나 낮다.
유럽연합 50년의 역사를 경제가 이끌었듯 유럽연합의 미래 역시 경제가 좌우할 수밖에 없다. 유럽 통합의 첫 출발점이 유럽 석탄·철강공동체였다는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 2005년 프랑스의 유럽헌법 찬반 투표에서 실업률이 몇 %포인트만 낮았다면, 유럽헌법이 부결되지 않았을 것이란 말도 있다. 주간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과거 독일과 프랑스의 눈부신 성장을 비교하면 지금의 유럽 경제는 우울하다”며 “유럽연합이 50돌 생일을 넘어 더욱 번영하려면 경제에 가장 힘을 쏟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파리·브뤼셀·베를린/김순배 기자 marcos@hani.co.kr
그것은 국경없는 단일시장,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한 높은 경쟁력에서 비롯됐다. 통합된 단일시장에서 모든 상품과 서비스는 치열한 경쟁을 펼쳐야 한다. 또 통합은 수송에 필요한 비용과 시간을 줄이고, 소비자에게는 더 다양한 상품의 선택이 가능하도록 했다. 유로화의 성공에 힘입어 유럽연합은 역내 소비자 4억9천여만명을 거느리며 세계 수출입의 18%를 차지하는 세계 최대 단일시장으로 발돋움했다. 전체 무역의 60%에 달하는 회원국간 역내 무역도 서로에게 이익을 주고 있다. 독일 외무부 유럽연합국 하디 버클러 부국장은 “우리는 유럽연합이라는 도구를 통해 세계무역기구(WTO) 등 경제분야에서 공동의 이익을 얻고 있다”고 말했다. 국제통화기금(IMF) 자료를 보면, 지난해 유럽연합 25개 회원국의 국내총생산(GDP)은 14조2천억달러였다. 이는 미국의 13조3천억달러를 뛰어넘은 것이다. 같은 해 회원국 평균 경제성장률은 2.9%로 2000년 이래 최고를 기록했다. 실업률은 지난해 12월 7.6%로 8년 만에 최저치로 떨어졌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유로존의 올해 경제성장률을 2.5%로, 미국의 2% 보다 높게 내다봤다. 서울대 국제대학원 문우식 교수(유럽경제)는 “유로화는 외환보유고를 늘리며 외환위기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점만으로도 안정적인 거시경제 운용 면에서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고 평가했다.
유로화 시중 유통량 변화 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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