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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일본

초고령사회 일본, 늙음과 죽음을 마주하는 시도 알리고 싶었다

등록 2020-04-18 09:37수정 2020-04-18 18:47

[토요판] 조기원의 100세 시대 일본
16 마지막 회–에필로그

숫자 얘기로만 보였던 초고령사회
치매 문제부터 우리 일이란 체감
치매 당사자 목소리 가장 중요해

누구도 늙음과 죽음 외면 못해
‘마주한다’ 수없이 들었던 1년
진솔한 얘기 해준 이들에게 감사
2019년 1월25일 일본 사이타마현 미요시초에 있는 인지증 전문 데이케어센터 ‘게야키노이에’(‘느티나무의 집’이라는 뜻)에서 인지증 환자가 아이들의 저녁식사를 만들기 위해서 마 껍질을 까고 있다.
2019년 1월25일 일본 사이타마현 미요시초에 있는 인지증 전문 데이케어센터 ‘게야키노이에’(‘느티나무의 집’이라는 뜻)에서 인지증 환자가 아이들의 저녁식사를 만들기 위해서 마 껍질을 까고 있다.
“그러니까 과립성 인지증(일본에서 치매가 모욕적인 표현이라는 이유로 변경한 명칭)이란 말이죠.”

일본 인지증 치료 일인자이면서 자신도 인지증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공개한 하세가와 가즈오(92) 박사를 지난 2018년 11월에 만났을 때의 일이다. 하세가와 박사는 노트에 그림을 그려가면서, 과립성 인지증이 뇌에서 어떤 작용을 거쳐 인지증을 일으키는지에 대해서 설명을 한참 했다. 인지증 원인은 알츠하이머성이 대표적이지만 알코올성, 혈관성 등 수십 가지다. 한국어로 들어도 무슨 말인지 잘 이해가 되지 않는 의학적 설명을 일본어로 듣고 있자니 당황스러웠는데, 결론은 비교적 간단했다. 하세가와 박사는 자신이 걸린 인지증 종류가 “나이가 들면 걸리기 쉬운 질환”이라고 말했다. 장년층 인지증(65살 이하일 때 발병한 인지증. 한국에서는 ‘초로기 치매’라고 부름)도 사회문제가 되고 있지만, 인지증 자체는 노화와 깊은 관련이 있다고 그는 설명했다. 화투를 치거나 사회생활을 활발히 하면 도움이 된다는 이야기는 있지만 확실한 예방법은 존재하지 않고, 근본적인 치료약도 없다는 것이다. 하세가와 박사는 치료약에 대해서는 “어떤 부작용이 생길지 알 수 없다”며 부정적인 생각을 밝혔다.

일본 인지증 치료 일인자로 꼽히는 하세가와 가즈오 박사
일본 인지증 치료 일인자로 꼽히는 하세가와 가즈오 박사

한-일 인지증 대응의 차이와 공통점

‘100세 시대 일본’ 연재의 마지막 회에 이 이야기를 먼저 꺼내는 이유는 이 연재의 중요한 모티브가 인지증이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특파원 생활을 하면서 초고령사회 일본을 통계로 나타내는 기사를 작성할 일이 자주 있었다. 하지만 이를 나 개인의 일로는 느끼지 못했다. 다만 인지증은 달랐다. 우리의 미래이기도 하고, 우리 부모의 현재 모습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일본에서 최근 소수이지만 인지증에 걸린 당사자들이 목소리를 낸다는 점이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일본 도요타자동차 계열사 사원인 단노 도모후미(46)는 ‘장년층 인지증’을 앓고 있다. 그는 자신을 인지증 환자가 아니라 당사자로 표현해달라고 했다. 그동안의 인지증 대책이 가족과 주변인들 위주라며 당사자의 관점을 강조했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이야기였다. 가족의 부담이 크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지만 병에 걸린 사람은 결국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단노는 2018년 서울에서 열린 한-일 공동 치매 대회에 참가해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했는데, 당시 행사에서 “(한국 쪽은) 가족이 힘들다는 이야기만 많았다”고 했다.

한국에서 열린 대회에서 왜 당사자 목소리를 찾기 어려웠는지는 짐작이 간다. 일본 시민단체인 ‘인지증의 사람과 가족회’가 1980년부터 활동해왔는데 초기에는 인지증에 걸린 사람을 돌보는 가족을 위한 단체였다. 현재는 인지증 당사자가 같은 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과 교류할 수 있는 창구 구실도 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당사자들이 상담을 받거나 쉴 수 있는 ‘인지증 카페’ 개설 지원 사업을 하는데, 일본 전역 인지증 카페는 2016년 기준 4627곳에 이른다. 단노는 행정적 지원 성격이 강한 ‘인지증 카페’에 대해 “재미가 전혀 없는 곳”이라고 말했지만, 이런 물적·인적 토대가 풍부한지 여부가 큰 차이로 이어진다. 아직 한국은 토대가 부족해 가족의 부담이 너무나 큰 상태이고, 당사자의 목소리를 듣는 데까지 나가기 어려웠을 것이다.

제도적 측면을 보면 한-일 간 차이는 두드러지지 않는다. 인지증을 포함한 노인 돌봄 관련 사회보장제도로 일본에서는 ‘개호(간병) 보험’ 제도가 있다. 그 내용을 보면, 한국의 ‘장기요양보험’과 큰 틀에서 차이를 찾기 어렵다. 실질적 차이는 고령자와 그 가족이 집 근처에서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 기반의 차이에서 나오는 만큼 한국의 서비스 기반 확충이 절실하다.

한국에 일본의 사례가 상당한 시사점이 되는 다른 이유는 두 나라의 사회·문화적 유사성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쓰도메 마사토시 리쓰메이칸대 산업사회학부 교수는 지난해 12월 도쿄에서 열린 제2회 한-일 치매 공동 심포지엄에서 “일본은 사회보장 분야에서 가족에게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에도 맞는 지적이다. 일본 고령자 문제 대책은 초기 가족에게 부담을 전가하는 방향에서 시설 입소형 대책으로 갔다가 지역사회 공존을 모색하는 단계로 넘어가고 있다. 한국이 모색하는 길이기도 하다. 고령자와 공존하는 지역공동체 활성화가 필요한데, 이것도 한국의 과제다.

다마 뉴타운을 자세히 봤으면…

아쉬운 부분도 있다. 초고령사회 축소판 같은 일본의 아파트 단지 문제를 좀 더 들여다봤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한국에서 집값 하락 사례로 널리 알려진 도쿄 서남부 ‘다마 뉴타운’에 있는 나가야마 단지에 찾아갔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상가 3분의 1이 셔터를 내린 채 문을 굳게 닫은 모습이었다. 나가야마 단지는 다마 뉴타운에서도 1971년 가장 먼저 입주가 시작돼 ‘올드 타운’을 상징하는 곳이다. 이곳에서 고령자들을 위한 카페인 ‘후쿠시테이’를 운영하는 데라다 미에코(72) 이사장은 “시골의 지역 공동체와 같을 수는 없지만 도시에 적합한 지연(地緣)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도쿄 서남부 다마 뉴타운에서 고령자 카페 ‘후쿠시테이’를 운영하는 데라다 미에코 이사장.
도쿄 서남부 다마 뉴타운에서 고령자 카페 ‘후쿠시테이’를 운영하는 데라다 미에코 이사장.
신도시였던 다마 뉴타운은 입주 초기부터 주민들이 공동육아 사업을 하는 등 공동체 조성 작업이 활발했다. 데라다도 그런 주민 중 한명이었다. 입주 초기 어린아이를 둔 젊은 세대였던 입주민들은 지금은 백발이 성성한 고령자가 됐다. 데라다는 뉴타운이 올드타운이 된 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올드타운이 된 뉴타운에서 어떻게 살아갈지를 이들은 모색하고 있었다. 수도권인 사이타마현 가와구치시의 시바조노 아파트 단지는 5천명 가까운 아파트 단지 주민의 절반가량이 외국인으로 유명하다. 원주민인 일본 고령자와 외국인 대부분을 차지하는 젊은 중국인들 사이에 갈등은 많이 잦아들었지만 아직 떨떠름한 감정은 남아 있다. 시바조노 단지 주민자치회 임원인 오카자키 히로키(39)는 “일본인과 중국인 주민이 공존은 하고 있지만 공생까지는 도달하지 않은 상태”라고 진단했다. 시바조노 단지가 전국적으로 가장 유명하지만 일본 전체로 보면 도요타자동차 본사가 있는 아이치현 등에서도 비슷한 사례를 찾을 수 있다.

아이치현 나고야시 단지에서는 60대 일본계 브라질인 두 명이 지난해 고독사한 사건이 있었다. 일본은 일본에서 브라질로 이민 갔던 일본인의 자손을 노동력으로 받아들였다. 숨진 채 발견된 60대 남성들은 일본에 온 지 30여년이 지나 브라질과의 끈이 엷어지며 브라질로 돌아가기는 어려운 상태였다. 육체노동도 더는 감당하기 어렵게 되면서 이들은 생의 마지막을 거의 고립된 상태로 지냈다. 이렇게 외국인 고령자 문제가 아파트 단지에서 먼저 상징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한국과 일본의 주택 소유 및 임대 구조가 다르기 때문에 한국 아파트 단지 일부가 일본과 같은 길을 걷는다고 단선적으로 비교하기는 어렵다. 다만, 사람이 나이가 들듯이 공간도 늙는다. 늙어버린 거주 공간에서 공동체를 어떻게 유지해나갈지에 대한 모색이 우리에게도 필요하다.

집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선택에 대해 이야기한 승려 다마오키 묘유.
집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선택에 대해 이야기한 승려 다마오키 묘유.
‘100세 시대 일본’을 연재하면서 평소보다 기사에 달린 댓글을 찬찬히 읽었다. 현실을 모르는 이야기들이 아닌가 하는 지적들이 눈에 띄었다. 일리가 있는 말이다. 집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방법에 관해서 이야기했던 승려 다마오키 묘유(54)는 일반적인 기준으로 보면 평범한 사람이 아니다. 전직 간호사인 다마오키는 암에 걸린 남편의 임종을 집에서 맞이했다. 남편이 원했던 죽음의 방식이었지만 다마오키의 의학적 지식과 강한 의지가 아니었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또한 주치의와 지속적으로 상담하면서 남편의 죽음을 집에서 맞이할 수 있도록 대비했기에 가능했다. 일본에서도 주치의와의 상담과 연락 없이 집에서 사람이 숨지면, ‘변사’로 간주돼 경찰 조사를 받을 수도 있다.

특이한 사례를 찾아내서 기사를 쓴 이유를 변명하자면, 현실의 벽을 넘어서 늙음과 죽음을 정면으로 마주하려는 시도에 대해서 소개하고 싶어서였다. 인터뷰를 수락했던 이들이 늙음과 죽음에 대해서 가장 많이 사용했던 표현도 “마주한다”였다. 다마오키는 간호사 시절 환자의 죽음을 ‘패배’라고 생각했지만, 남편의 간병 과정에서 “사람은 언젠가 죽게 돼 있기 때문에 죽음을 정면에서 마주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인지증에 걸린 어머니를 10년 가까이 집에서 돌봤던 다큐멘터리 감독 세키구치 유카(63)는 고관절 수술을 계기로 죽음을 마주하기 위해서 스위스행 비행기를 탄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는 죽음에 대한 선택지를 늘리기 위해서 스위스 바젤에 있는 안락사 단체인 ‘라이프서클 재단’에 회원가입을 했다.

인지증 어머니를 10년 가까이 집에서 돌봤던 다큐멘터리 감독 세키구치 유카는 고관절 수술을 계기로 죽음을 마주하기 위해 스위스 안락사 단체에 회원가입을 했다.
인지증 어머니를 10년 가까이 집에서 돌봤던 다큐멘터리 감독 세키구치 유카는 고관절 수술을 계기로 죽음을 마주하기 위해 스위스 안락사 단체에 회원가입을 했다.

노년이 우울하지만은 않을 것

늙음과 죽음은 ‘마주한다’는 태도 외에는 도저히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 피할 수도 없고 극복할 수도 없는 일이 아닐까. 그러니, 되도록 의식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죽음을 잊고 사는 편이 잠시는 편안하지만, 그것이 정답이 될 리 없다. 노화와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일지에 대해 정해진 답은 존재하지 않지만, 마주하고 고민하는 이들의 용기에는 늘 감탄했다. 일본이나 한국 사회 모든 곳에서 앞으로 늙음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정면으로 다루는 일이 늘어나지 않을까.

연재를 처음 시작할 때는 밝은 이야기를 많이 쓰려고 했다. 나이 들어감을 받아들이고 흰머리를 염색하지 않은 이들의 이야기를 다룬 첫 회 이야기 같은 것들 말이다. 결과적으로는 그렇게 되지는 않았다. 무겁고 심각한 이야기를 꽤 많이 다뤘다. 청춘은 나중에 뒤돌아보면 밝고 아름답게 기억되지만 실제 청춘이 반드시 그렇게 밝고 아름답지만은 않다. 노년도 그렇지 않을까. 밝고 경쾌하지만은 않겠지만, 우울하고 무겁지만은 않을 것이다.

고령사회에 관한 논의는 사회문제, 특히 경제문제로 집중될 때가 많다. 생산가능인구가 줄어 경제 사회적으로 각종 문제가 생긴다는 이야기들처럼 말이다. 물론 경제문제도 중요하지만, 앞으로는 고령자 당사자 그리고 앞으로 고령자가 될 개인의 삶으로도 좀 더 눈길을 돌렸으면 좋겠다. 끝으로 그런 개인적인 이야기를 지난 1년여 동안 낯선 외국인 기자에게 들려준 이들에게 감사인사를 드리고 싶다.

도쿄/글·사진 조기원 특파원 gard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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