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윤석기|대구지하철참사희생자대책위원회 위원장
서울을 비롯한 전국 주요 도시철도 노동조합들이 9월14일 총파업을 예고했다. 김부겸 국무총리는 “지친 시민의 발임을 잊지 말라”며 자제를 촉구했다. 무엇이 문제이고 어떻게 하는 것이 순리일까?
2003년 대구지하철 참사를 돌이켜보면, 참사의 근본적 원인에 노동자 잘못이 큰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불쏘시개 전동차를 만들게 방치한 정부의 규제 완화와 90년대 후반 경제 위기 이후 이어진 대규모 공공부문 구조조정이 더 큰 몫을 차지했다. 그러니 시너와 라이터를 들고 뛰어든 한 시민의 사회에 대한 적대감이 무고한 사람들을 향한 화마로 돌변했을 때, 진화는 이미 무리였던 것이다.
사실, 지금은 이렇게 말하지만, 사고 직후 우리 유가족들에게 지하철의 모든 관계자들은 악마 같았다. 그들이 내 가족을 죽였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진실을 가리려는 자와 우리와 함께 싸우는 자가 나눠졌다. 지금 참사 이후 진정한 추모 사업을 위해, 옆에는 노동자들이, 반대편에는 대구시와 손 놓고 바라보는 정부가 있다. 당신이라면 누구의 목소리를 듣겠는가?
노동자들은 지금 두가지를 말하고 있다.
첫째, 중앙정부는 노인, 장애인 등 취약계층에 대한 무임수송의 의무와 책임을 분명히 하고 직접 수행하라는 것이다.
서울 지하철 노동자들이 파업에 나서게 된 현실적인 이유는 서울시가 밝힌 경영합리화를 빙자한 2천명에 달하는 인력 감축과 안전 업무 등의 외주화와 맞닿아 있다. 노동자들의 주장은 적자의 주요 원인이 65살 이상 무임수송 등 교통복지정책이고, 이는 중앙정부의 책임과 의무이니 중앙정부가 책임지라는 것이다.
노동자의 항변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1980년대 도시철도가 정부 소유일 때 정해진 교통복지정책인데, 지방자치제 실시와 함께 중앙정부가 도시철도에 관한 의무와 책임을 지자체에 떠넘긴 것이 문제의 본질이니 교통복지비용을 지원하든가 도시철도의 운영을 중앙정부가 맡든가 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본다. 마침 철도산업발전기본법(32조의 공익서비스비용의 부담)에 따라 철도의 경우는 정부예산으로 지원하고 있으니 노동자의 요구처럼 하는 것이 형평성에도 맞는 것 아닌가?
둘째, 위험의 외주화를 금지하고 안전업무를 공사가 직접 수행하라는 것이다.
서울시 등은 대규모 인력 감축 이후 안전관리 업무의 외주화를 염두에 두고 있다고 한다. 우리는 구의역 참사를 기억한다. 2016년 5월28일 19살 청년이 밥 먹을 시간도 챙기지 못할 정도로 열악한 환경 속에서 혼자 스크린도어를 정비하다가 죽임을 당한. 일상의 편안함을 누군가의 목숨으로 담보해선 안 된다. 2인1조 근무수칙을 누가 어기도록 시켰나? 시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킬 현장 노동자의 생명을 누가 위협하고 있는가?
올해 초 중대재해처벌법이 제정되었다. 이 법이 지향하는 취지는 위험의 외주화를 막자는 것이다. 사업주에게 책임을 직접 물을 때 현장의 안전이 보장되고 현장 노동자가 안심하고 일할 수 있을 때 시민 사회의 안전도 보장되는 것이다. 수많은 재해참사 뉴스를 통해 거의 대다수 참사 현장에서 불법 하도급, 외주화로 노동자들의 희생이 강요당하고 있음을 보고 있지 않은가? 정부나 지자체가 노동자들의 인력 감축을 논하기에 앞서 철도, 지하철의 공공성을 명확히 하고 필수인력에 대한 기준을 정립하여야 한다. 특히, 외주화를 손쉬운 경영개선책으로 삼아선 안 된다고 본다. 노동자들이 출근길에 죽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시달려서야 제대로 된 고객서비스를 할 수 있겠는가?
2003년 대구지하철 참사가 발생한 지 18년이 지났다. 우리 유가족들에게는 하루만 같다. 그 시간이 지난 뒤 달라진 것이 얼마나 있었나. 우리의 처지만 보면, 먼저 간 가족들의 무덤가에 “추모”라는 말 대신 “테마파크”라는 푯말을 두고 볼 수밖에 없다. 해마다 2월18일 추모행사를 하려 해도 시의 무관심, 지역 상인들의 반발로 아물지 않았던 상처가 후벼 파진다. 18년간 유족들의 피눈물이 마를 날 없는 것이다. 이런 아픔을 겪지 않고자 한다면, 누구의 말을 들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