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배리어프리(barrier-free) 보장을 위한 공동행동’(서배공) 배리어프리맵 팀원들이 지난해 8월 휠체어를 이용해 서울시 봉천구 인근 가게들의 편의시설 유무를 조사하고 있다. 서배공 제공
이주언 | 사단법인 두루 변호사
2살 아이를 유아차에 태우고 다니면서 턱이나 계단이 있는 음식점, 카페, 편의점 앞에서 좌절을 겪는다. 휠체어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매일이 그렇다. 모임이라면 내가 불편을 주는 것 같아 눈치가 보인다.
‘공중’이용시설은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카페, 편의점, 음식점 같은 곳을 뜻한다. 사전에는 그렇게 나오지만 실제로는 대부분 ‘제한’이용시설이다. 법이 이상하게 되어 있어서 그렇다. 우리나라에는 장애인, 노인, 임산부 등 이동이나 시설 이용에서 불편을 느끼는 사람들을 위해 경사로와 같은 편의시설을 설치해야 한다는 법이 있다. 하지만 그 법은 바닥면적 300㎡(약 90평) 이상인 곳에만 효력이 있다. 우리 다섯 식구는 방 3칸짜리 30평 빌라에 사는데, 우리 집의 3배가 넘는 카페와 편의점, 음식점은 주변에서 찾기 어렵다.
법이 이렇다 보니, 1층에 있는 편의점, 카페, 음식점 입구에도 턱이나 계단이 버젓이 놓여 있다. 대다수 사람들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넘어가는 구조물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사회적인 집단 따돌림의 시작이다. 그 턱과 계단을 넘지 못하면 단순히 커피 한잔, 밥 한끼를 못 먹는 것이 아니다. 커피 한잔, 밥 한끼 같이 하면서 나눌 수 있는 일상의 수다, 회의를 포함한 업무 대화에서 ‘배제’되는 것이다. 사소한 턱과 계단이 누군가에게는 넘을 수 없는 장벽이고 쌓이고 쌓인 상처다.
최근 이 상처를 이해하고 위로해주는 판결을 받았다. 편의점을 운영하는 기업과 정부를 상대로 이동약자들의 시설 접근권 개선을 요구한 소송에서 우리의 청구가 일부 받아들여진 것이다. 법원은 90평 이상인 편의점에만 편의시설을 설치하도록 한 시행령이 ‘장애인의 행복추구권을 침해하고 헌법상의 평등원칙에 위배되어 무효’라고 했다. 판결문에 좋은 문구가 많은데 지면에 다 담을 수가 없어서 아쉽다. 그래도 이 내용은 소개하고 싶다.
“장애는 개인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사회적인 것이다. 장애인들의 모든 생활 영역에 대한 접근권이 보장될 때 자기결정권이 비로소 실현될 수 있고 사회 참여를 위한 물리적 장벽이 제거될 수 있다. (중략) 피고 대한민국은 정당한 편의 제공 의무가 사회 전반에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충분한 예산을 확보하여 경제적, 행정적, 기술적 지원을 하여야 함과 동시에 우리 사회의 경제적, 문화적 성숙도에 부합하도록 장애인의 시설 등 접근권 확대를 위한 제도 개선을 적극적으로 모색할 필요가 있다.” 시행령을 개정해야 하는 정부가 바닥면적 기준을 축소하는 식으로 꼼수를 부리지 말라는 뜻이다.
법원은 편의점을 운영하는 기업에는 경사로 등 편의시설 설치를 원칙으로 하되, 설치가 어렵다면 이동식 경사로나 호출벨 설치와 같은 구매보조서비스를 제공하라고 판결했다. 해당 기업은 ‘판결의 취지에 공감’한다고 하면서 호출벨 설치를 확대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호출벨은 경사로 설치가 안 될 때 아주 예외적으로만 설치되어야 한다. ‘투 플러스 원’(2+1) 행사 물품도 알지 못한 채 밖에서 대충 고르고 신용카드를 점원에게 맡겨야 하는, 불충분하고 위험한 서비스가 일반화되는 것은 이제 막 고객으로 인정받기 시작한 장애인에게 또 다른 차별이다. 이에 더해 계산대 앞에서 점원을 기다려야 하는 비장애인 고객의 비난과 불편함이 담긴 시선까지 감수해야 한다.
제발 그러지 말자.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면, ‘유니버설 디자인’을 키워드로 공부하고 찾아봐야 한다. 가까운 일본의 편의점부터 가보면 도움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