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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50대 시민의 임차인 기억: ‘임차인 윤희숙 의원’에 대하여

등록 2020-08-03 18:40수정 2020-08-04 02:09

윤희숙 미래통합당 의원이 지난달 30일 국회 본회의에서 주택임대차보호법 통과를 비판하는 자유발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희숙 미래통합당 의원이 지난달 30일 국회 본회의에서 주택임대차보호법 통과를 비판하는 자유발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아무개│대구광역시 북구

갈 곳이 없는 절박한 임차인인 줄 알았습니다.

어린 시절 부모님을 따라 이리저리 이사하던 기억이 떠오르네요. 시골에서 도시로 이사 와 30년 정도의 도시생활에 열 번 정도 이사를 한 부모님의 절박한 심정인 줄 알았습니다. 주민등록증 뒤 변동사항 기입란이 없을 정도로 이사를 했으니 참 많이도 하셨네요. 저희 부모님만이 아닌, 어려운 시절 많은 우리의 아버지 어머니들이 지금과 같은 보호장치도 없이 이리저리 집을 찾아 헤매던 모습을 한동안 잊고 살았습니다. 아니 잊고 싶었을지도. 2000년대 초 결혼하고 두 번의 이사 후 지방에 아파트를 장만했습니다. 물론 전세로 시작했습니다. 두 번의 이사 뒤 아내와 전세를 이리저리 구하러 다니기가 싫어 대출을 끼고 20평대 아파트를 샀습니다. 어린 시절 이사에 대한 나쁜 기억 탓도 있었겠지요. 2008년쯤 1억4천만원을 줬고 지금은 2억원대 초반이 되었으니, 윤 의원님의 4억~5억원짜리 전세면 지금 제가 살고 있는 아파트를 두 채는 살 수 있겠습니다. 서울과 지방이 이렇게 큰 차이가 나네요.

집을 사고 아버님이 처음 오신 날 당신은 15층을 세어보시더니 “이 높은 걸 니가 우에 다 샀노?” 자식을 축하해주는 것이 아니라, 혹여나 부정하게 돈을 벌었으면 하는 걱정을 하고 계셨습니다. 당신은 아파트 개별 한 채가 아니라 건물 통째로 매매가 되는 줄로만 알고 계셨습니다. 속으로 부정하게 돈을 벌더라도 이 아파트를 전부 제가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당신은 정직하게만 돈을 벌려고 하니 평생 집 한 채 없는 거라 생각했습니다. 당신의 정직함이 부끄러웠던 제가 부끄럽습니다.

내 집 마련 후 처음 한 일은 장남이라 이사한 집에서 다가오는 제사를 지내는 일이었습니다. 제사를 지내기 전 모인 친척들에게 자랑을 하려던 것인지 그동안 집 없는 설움의 한탄인지 어머님이 불쑥 한마디 하십니다. “거실 있는 집에서 제사를 지내니 조상들이 못 찾아오면 우야노?” 평생 당신의 집 한 채 없이 세상을 떠나신 아버님의 게으름 탓인 줄로만 알았습니다. 주택보급률 100%를 향해 갈 때 그 많은 집들 중에 당신의 집 한 채 없는 것이 당신의 탓인 줄로만 알았습니다.

가난한 사람도 대한민국 국민입니다. 부자도 대한민국 국민입니다. 자신의 노력으로 돈을 번 부자들의 노력을 존중해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부동산으로 부자가 된다면 한 번쯤 생각을 해보아야겠지요. 불로소득이어서가 아니라 누군가에게 돌아가야 할 집이기 때문입니다. 이리저리 이사해야 하는 고달픈 사람들의 둥지를 빼앗은 것만이 아닙니다. 그 둥지 속에 싹트고 있는 많은 희망을 빼앗는 것입니다. 어쩌면 미래 대한민국의 싹 말입니다.

4년 후 전세 걱정을 하는 임차인과 4년 후 꼭 내 집 장만을 하고 싶은 서민의 마음은 다르겠죠.

※실명으로 투고한 필자는 “답답해 글을 보내긴 했는데 막상 보내고 고민이 많이 됐다”며 “가난을 이렇게 밝히는 게 부끄러워서 익명으로 해줬으면 한다”고 요청해왔습니다. 투고자 사진도 생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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