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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윤석인의 왜냐면에 부쳐: 시대착오적 시장도매인제 논쟁 이제 끝내자 / 양승룡

등록 2020-11-25 18:50수정 2020-11-26 02:38

양승룡 ㅣ 고려대학교 식품자원경제학과 교수

농산물 기준가격을 정하는 가락시장에서 가격결정 방식을 두고 20년째 납득하기 어려운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시장도매인제라는 양자거래 방식이 경매제보다 우월하다는 억지 주장으로 농업계를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 이 논란은 소수 이해집단에서 시작해 시장관리공사와 일부 정치권이 가세해 본격적인 진흙탕 싸움으로 번질 태세다. 시장도매인제는 시대착오적일 뿐만 아니라, 경매제의 근간을 흔들어 우리 농업에 치명적 비효율을 가져올 것으로 우려된다.

네덜란드 알스메이르 화훼시장은 매일 전세계에서 공수되는 8천여종의 꽃을 거래하는 세계 최대 경매시장이다. 한해 매출이 2조원이며, 거래량의 85%는 수출된다. 이 시장의 경쟁력은 효율적인 경매시스템에서 나온다. 판매자와 구매자 간 직거래가 더 우월하다면 왜 그 많은 거래가 경매를 통해 이루어질까? 네덜란드뿐 아니라 유럽이나 아프리카, 남미에서까지 왜 경매를 통해 자기 상품 가격을 결정하고 구매자를 찾기 위해 알스메이르로 몰려들까?

시장에서 거래되는 모든 상품은 가격을 매개로 하며, 따라서 적정가격을 결정하는 것이 시장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다. 시장이 얼마나 효율적인가를 판단하는 기준은 크게 두가지다. 하나는 상품이 유통되는 데 소요되는 거래비용의 크기이고, 또 다른 하나는 가격이 시장에 유입되는 모든 정보를 얼마나 신속하게 반영하는가이다. 1991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코스에 의하면 거래비용에는 신뢰할 만한 거래 상대방과 적정가격을 찾는 탐색비용, 계약을 체결하는 데 드는 협상비용, 계약이행을 담보하는 감시비용 등 암묵적 비용이 모두 포함된다. 시장도매인제를 주장하는 쪽은 경매절차를 생략해 경매수수료 등 유통비용이 덜 든다고 한다. 이는 사실이 아니다. 출하자 입장에서 경매수수료는 거래 상대방과 적정가격을 찾고, 계약절차를 대행하며, 계약불이행을 원천봉쇄한 정산시스템을 운영하는 비용에 해당한다. 만약 출하자가 시장도매인에게 출하하면 모든 거래비용을 거의 직접 감당해야 한다. 필자의 연구에 의하면 출하자가 인식하는 시장도매인제의 암묵적 거래비용은 13%가 넘는다. 가락시장의 경매수수료는 4%다.

시장효율성의 두번째 기준인 가격효율성은 비용효율성보다 훨씬 중요한 개념이다. 2013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파마에 의하면 시장의 모든 정보를 신속하고 충분히 반영한 효율적 가격은 모든 거래의 객관적이고 공정한 지표가 된다. 만약 어떤 가격이 산지나 소비지 정보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는 의심이 들면 시장참가자들은 적정한 가격을 찾기 위해 많은 탐색비용을 들여야 한다. 시장참가자들의 이런 혼란은 가격변동성으로 나타나고, 이는 곧 생산 및 소비 의사결정의 실패와 자원배분의 비효율로 이어진다. 출하자와 도매인 간 거래정보가 전세계에 즉시 공개되는 경매제가 둘 사이의 양자거래인 시장도매인제에 비해 가격효율성을 높이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오늘날 전세계 금융 및 상품 시장들이 정형화된 거래소에서 경매를 통해 가격을 결정하는 것이 이런 이유다.

혹자는 강서시장 시장도매인제 거래량이 경매제에 비해 많은 것을 들어 경쟁력이 높다고 주장한다. 이는 다른 시장에 비해 월등히 높은 수입농산물 취급 비중을 논외로 하더라도, 경매제와 시장도매인제를 동시에 운영하는 강서시장의 문제점을 시사한다. 경매물량과 경락가격 등 공개 정보를 아무런 대가 없이 일방적으로 사용해 얻은 불공정경쟁의 결과이다. 서울에 위치한 강서시장의 경락가격이 전국 공영도매시장 중 최하위라는 사실은 강서시장 경매제가 불공정거래의 희생양임을 함의한다. 시대를 역행하는 소모적 논쟁보다 미래를 향한 발전적 해법을 찾는 데 합심하기를 소망한다.

(▶관련 기사: [왜냐면] 가락시장의 ‘직거래 도매상제’ 도입 왜 외면하나 / 윤석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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